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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순만 칼럼] 애국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은 연약한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고 서로의 주장을 낮춰야 할 때”

[임순만 칼럼] 애국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다 기사의 사진
에른스트 리사우어(Ernst Lissauer·1882∼1937)는 세계 제1차대전 발발 당시 가장 혁혁한 독일 시인이었다. 그는 시 ‘영국인에 대한 증오의 노래(Song of hate against England)’를 통해 영국에 대한 독일인의 불타오르는 증오를 확산시켰다. 그의 시는 급속도로 독일 전역에 파급됐고, 황제 빌헬름 2세는 리사우어에게 적색 독수리 훈장을 수여했다. 셰익스피어 형식의 소네트로 구성된 그의 시는 모든 신문지상에서 다루어졌고, 교사는 학교에서 학생들에게, 장군들은 전선에서 병사들에게 그의 시를 소리 높여 읽어주었다. 프러시아인들은 모두 그의 증오를 암송하게 되었다. 그것도 모자라 이 시는 음악으로 작곡되었고 합창으로 확대되어 극장에서 상영되었다. 리사우어는 한 사람의 시인이 전쟁에서 획득할 수 있는 가장 드높은 명성을 차지할 수 있었다.

그러나 5년 후 1차대전이 끝나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국가의 모든 분야에서 영국과의 관계 회복이 필요하게 되었을 때 사람들은 영국과의 영원한 적대관계를 요구했던 이 시인에게 등을 돌렸고 히스테리의 책임을 모두 그에게 돌렸다. 그는 결국 독일에서 추방돼 잊힌 채 죽었다. 그와 동시에 야단법석을 떨었던 시끄러운 애국주의자들의 말로 역시 그와 유사했다.

격앙돼 있는 사람들에게 증오의 북을 울리는 것처럼 손쉽고 효과적인 수단은 없다. 자신에게 맞지 않는 사람들을 ‘종북 빨갱이’나 ‘일제 앞잡이’로 몰아가는 것은 유혹적일 것이다. 그러나 머지않아 그 결과는 생각보다 파괴적이며, 자기소모적이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증오로서의 열광은 친절한 여자가 금방 담근 배추겉절이처럼 맛있을지라도 그것은 비열한 전이(轉移)의 다른 이름이기 십상이다. 증오의 히스테리는 지역과 계층을 가리지 않고 확산되고 전염된다. 그렇게 되면 이성적인 대화는 불가능해지고, 논리는 일견 한 군데도 벗어나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함정 속에서 끼리끼리 등을 돌린 채 놀게 될 수밖에 없다.

지금 우리 사회는 서로들 히스테리로서의 애국심을 고취하는 데 열중한다. 많은 미디어들이 자기와는 다른 진영에 대한 일방적 설득과 증오의 분위기를 확산시키는 데 최대한으로 노력한다. 인터넷은 무기가 되어버렸다. 남을 공격하면서 그것을 ‘공동체의 이익’이라고 주장하는 것, 나를 말하기 위해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 옳은 경우는 거의 없다. 이럴 때 우리에게 우선적으로 필요한 것은 참으로 연약하여 손을 잡으면 부서질 것만 같은 그런 사람들에게 관심을 갖는 일일 것이다.

논쟁과 법리 싸움과 혈기로 문제를 푸는 것은 지극히 어렵다. 이런 싸움이 만연한 나라에서 배고프고, 애처로울 정도로 어색하고, 여러 사물들에 대한 미의식을 갖고 혼자 한숨짓는 것 외에는 할 수 없는 사람, 내가 확신하는 쪽으로 남을 바꾸겠다는 시도는 평생 동안 단 한 번도 해보지 못한 그런 무력하고 순진한 사람을 대우하는 일이다. 그 연약한 무능함이 우리를 미소짓게 하고 잃어버린 눈물을 회복시켜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고서야 답은 멀다. 우리가 경제 활력을 되찾기 위해서는 북한·일본과의 대외관계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더구나 우리는 젊은이들의 반발을 필수적으로 수용해야만 하는 과정도 남아 있다. 기성세대들이 요구하는 대로 순응했다가 자기 아이들을 제물로 바친 어머니들, 조용하게 가만히 있으라고 해서 그렇게 했다가 모두가 희생된 세월호 사태를 경험한 젊은 세대들은 필시 기성세대들을 믿지 않게 될 것이다.

그런 반발의 과정이 생략된 채 조용히 지나간다면 우리 사회 미래의 활기는 심각한 상태로 저하될 것이다. 이것은 전쟁에 참여하는 것이 옳은 것이라는 부모세대들의 말을 듣고 전선에 나갔다가 떼죽음을 경험하고 온 서양의 전후 세대들이 자기해방을 주장한 역사의 경험이 말해준다. 예를 들자면 큐비즘과 초현실주의운동, 히피와 동성애의 반발 같은 것들은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된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주장을 낮춰야 하는 단계에 있다.

임순만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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