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사법재판소 “구직 노력 않는 이주민에 실업급여 안줘도 돼” 기사의 사진
유럽이 이민정책 때문에 홍역을 치르고 있다. 광활한 유럽 땅 안에서 인적 교류를 활발히 한다는 취지에서 인구 이동을 제한하지 않는 정책을 실시해 왔으나 그 때문에 이동 인구가 늘어나면서 과다한 복지비용과 일자리 부족 사태가 발생하게 된 탓이다. 기존의 원칙을 지켜야 한다는 주장과 제도를 손질해야 한다는 주장이 맞서면서 유럽 내 분열이 심화되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ECJ)는 11일(현지시간) 한 루마니아인 이민자가 독일 정부에 복지수당을 신청했다가 거절당한 사건에 대해 “독일 정부가 구직 노력을 하지 않은 이주민에게는 실업급여를 지급하지 않아도 된다”고 판결했다. 이번 결정은 이민정책을 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는 유럽의 많은 국가들에 중요한 판결이다. 유럽이 보장하는 이동의 자유가 무조건적인 복지혜택을 주장할 수 있는 권리는 아니라는 판결이 내려졌기 때문이다.

유럽 지역 국가들은 1985년 선언한 솅겐조약(Schengen Agreement)에 따라 조약을 맺은 당사국 국민들은 각국을 자유롭게 이동하며 거주하는 것을 허용하고 있다. 현재 독일 스위스 프랑스 네덜란드 노르웨이 덴마크 등 26개국이 이 조약에 가입돼 있다. 유럽연합(EU)법에도 EU 가입국 시민은 EU 안에서 제약 없이 이동하고 거주할 수 있도록 돼 있다. 이에 따라 출산율이 낮은 서유럽 국가들도 매년 큰 폭으로 인구가 늘고 있는 실정이다. 요즘 ‘이민자의 천국’으로 불리고 있는 독일은 인구가 2012년 8032만명에서 올 초 8078만명으로 45만여명 증가했다.

하지만 이민자가 늘어날수록 정부가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커지고 자국민의 일자리 부족 현상이 심해지면서 각국의 보수 진영을 중심으로 이민자를 제한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져왔다.

가장 앞장선 것은 영국이다. 데이비드 캐머런 총리는 지난해부터 “회원국 간 자유로운 이동을 보장한 규정 때문에 부작용이 커지고 있다”면서 “차라리 EU를 탈퇴하겠다”고 압박해 왔다. 캐머런 총리는 전날에도 “EU에서의 영국의 미래는 중요하지만 낙관적인 미래를 보장받지 못하면 변화를 선택할 수 있다”고 말했다. 관대한 이민 정책으로 이주자 비율이 전체 인구의 20%에 육박하는 스웨덴 정부도 이민자 지원 예산을 줄여야 한다는 극우당과 맞서고 있다. 스위스도 지난 2월 EU 시민권자의 취업자 수를 제한하는 이민제한법을 통과시켰다.

반면 독일은 이민 제한 목소리에 강력히 맞서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캐머런 총리의 EU 탈퇴 발언에 “(캐머런 총리가) 갈 데까지 갔다”면서 “차라리 영국이 EU를 떠나는 게 낫겠다”고 맞받아쳤다. 메르켈 총리는 EU 시민의 이동을 제한하는 게 복지 문제의 궁극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을 굽히지 않고 있다.

유럽사법재판소의 판결이 어느 쪽에 더 유리할지는 두고 볼 일이다. 판결 소식을 들은 캐머런 총리는 “올바른 방향으로 가는 단계이며, 혜택을 제한하는 규칙은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반겼다. 하지만 무직자에게 혜택을 주지 않아도 된다면 캐머런 총리가 요구하는 비숙련 노동자의 거주지 이전 제한 조치를 굳이 취할 필요가 없다는 해석도 가능하다. 유럽의회 최대 정파인 유럽국민당그룹(EPP) 측은 “이번 판결은 각국이 거주 이전의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도 ‘복지관광’(일하지 않고 복지혜택만 누리는 것)을 방지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면서 “특히 캐머런 총리에게 보내는 강력한 신호”라고 평가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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