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호갱’되기 십상인 사회 기사의 사진
‘해외직구’가 요즘 새로운 소비 형태로 뜨고 있다. 해외 인터넷 쇼핑사이트를 통하면 명품을 국내 판매가격의 절반 이하로 살 수 있을 뿐 아니라 국내 회사에서 생산한 똑같은 모델이라도 훨씬 싼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현재 우리나라를 먹여 살리고 있는 휴대전화, TV, 자동차 같은 경쟁력을 갖춘 주력 제품도 해외 판매가격이 국내보다 엄청 낮다.

현대차 제네시스의 경우 미국과 국내 가격 차이가 1000만원대에 이르고, 지난 9월 새로 출시된 국산 울트라 OLED TV는 국내 가격이 1400만원인 데 비해 미국에서는 1040만원에 팔리고 있다고 한다. 휴대전화 또한 우리나라보다 비싼 나라는 거의 없다. 삼성과 LG TV를 역수입하는 것은 새삼스러운 일도 아니다. 관세를 물고 배송비를 부담해도 싸게 먹히니 해외직구 시장 규모는 날로 커지고 있다. 해외직구 시장은 2012년 5410억원에서 지난해 1조950억원 규모로 100% 넘게 급성장했다(관세청·한국온라인쇼핑협회 자료).

국내에서 물건을 사면 왠지 호구가 되는 느낌이다. 남의 나라 기업도 아닌 우리나라 기업이 국내 소비자를 봉으로 여긴다. 그래서 ‘호갱’(호구+고객) 노릇 하지 않으려는 합리적인 소비자의 저항이 해외직구 형태로 확산되고 있다. 국내에서 해외보다 싸게는 못 팔망정 적어도 비싸게는 팔지 말라는 아우성이다. 해외에서 본 손해를 국내에서 벌충하려는 기업의 경영전략이 바뀌지 않는 한 언젠가는 소비자의 외면을 받게 돼 있다.

국민을 대하는 정치권과 정부의 인식 또한 기업과 크게 다르지 않다. 정치권 최대 쟁점으로 떠오른 무상급식·무상보육 논란을 보면 국민은 뒷전이다. 국민들이 먼저 요구한 것도 아니고 자기들이 하겠다고 해놓고 선거가 끝났다고 나 몰라라 내팽개치며 국민들 부아를 돋운다. 내년에 무상보육과 무상급식을 하려면 11조1000억원의 예산이 필요하다. 천문학적 규모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국회와 지방의회가 불필요한 선심성 예산, 쪽지예산, 중복예산만 없애도 여기에 소요되는 상당액을 확보할 수 있다. 이런 노력을 도외시한 채 여는 야에, 야는 정부·여당에 책임을 떠민다. 입만 열면 ‘민생정치’를 외치면서 말이다.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 전반을 살펴야 할 청와대의 최대 관심사는 대통령의 심기(心氣)다. 대통령을 잘 모시려는 청와대 비서진의 마음을 탓하진 않겠다. 그러나 그 정도가 지나치게 심하다. 올 국정감사에서 논란을 부른 윤전추 3급 행정관 사례가 대표적이다. 그가 유명 여성 연예인과 재벌 총수 부인들의 개인 헬스 트레이너였고, 박근혜정부 최연소 3급 공직자라는 점은 문제가 안 된다. 능력이 뒷받침되면 30, 40대에 3급 아니라 장관도 될 수 있는 요즘 세상이다.

문제는 윤 행정관이 하는 업무가 ‘국가기밀’에 해당돼 그의 인적사항을 공개할 수 없다는 청와대의 태도다. 그는 비밀 유지를 생명으로 하는 국가정보원이나 경호실 직원이 아니다. 케이블 TV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했고, 국내 대학에서 보디빌딩 강의까지 했던 그의 인적사항이 비밀이어야 할 까닭을 모르겠다. 청와대 설명을 빌리면 윤 행정관 업무는 민원 담당이다. 청와대에서 트레이너가 담당할 민원업무가 어떤 게 있는지 아무리 생각해도 선뜻 떠오르는 게 없다.

최근 정부는 전시작전권 전환 재연기를 결정했다. 우리 군이 전작권을 행사할 능력이 안 된다는 데야 정부 결정에 토 달 생각은 없다. 그러나 한미연합사와 미 210화력여단의 평택 이전까지 백지화한 것은 최선의 선택이라 보기 어렵다. 결정 과정에서 오랫동안 불편을 감수해온 동두천 시민이 느낄 박탈감은 처음부터 고려 대상이 아니었는지도 모른다. 국가안보를 위한 불가피한 선택이었다면 설득작업이 병행됐어야 했다.

국민이 갑이어야 진정한 민주주의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작 갑 행세는 딴 데서 하고 있다. 우리 국민이 너무 순해서 그런가. 아이가 울기 전에 떡을 챙겨주는 엄마가 좋은 엄마다.

이흥우 논설위원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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