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3] ‘혼자’가 아님을 느낄 때… 아이는 달라진다 기사의 사진
청소년 자활사업장 ‘카페립’의 교육생들이 16일 직접 만든 커피와 음료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이들은 커피를 함께 만들고 손님을 대하며 소속감과 함께 사회생활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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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은 본능적으로 소속감을 원한다.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가정이나 학교에서 이를 충족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면서 생각과 행동에 영향을 주는 사람과 만나게 된다. 이런 공동체가 교회나 학원인 아이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학교를 다니지 않는 청소년들은 어떨까. 가정이 온전치 못해 제대로 돌봄을 받을 수 없는 경우가 태반이다. 어디든 소속되고 싶은 욕망은 비슷한 처지의 아이들을 끌어 모은다. 최근 청소년 범죄의 온상으로 지목되는 ‘가출팸’(모텔 등에서 집단 생활하는 가출 청소년 무리)이 대표적인 예다. 내성적인 아이들은 ‘은둔형 외톨이’로 세상과 단절해버리기도 한다.

가출팸의 리더

지혜(가명·18·여)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어머니를 잃었다. 힘겨운 투병 중에도 지혜가 학교를 마치고 돌아오면 침상에서 일어나 따뜻하게 안아주던 어머니였다. 장례가 끝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아버지는 재혼했다. 아버지와 단둘이 살던 집에 새엄마와 이복동생들이 들어와 시끌벅적해졌지만 지혜의 공허함은 더욱 커졌다. 공부에 흥미를 잃고 학교에서도 멀어졌다. 공허함은 폭식으로 이어졌다. 먹는 것만 빼고 모든 게 귀찮아졌다. 지혜는 “어딘가 헛헛하더라고요. 배가 부른데도 계속 먹게 되는 거예요”라고 했다.

중학생 때 지혜는 집을 나왔다. 거리에서 가출팸 아이들을 만났다. 키 169㎝에 몸무게 98㎏. 또래 여자아이들에 비해 덩치와 힘이 월등했다. 가출팸은 지혜를 앞세워 초·중생들에게서 돈을 빼앗았다. 집에선 ‘투명인간’이었지만 아이들 무리에선 리더였다. 어쩌다 경찰서에 붙들려가도 나이가 어려서 늘 훈방됐다. 의기양양해진 아이들은 절도와 성매매에까지 손을 댔다. 성 매수자를 협박해 돈을 뜯어낸 적도 있었다.

결국 소년원에 가게 됐다. 성 매수자를 협박했다가 재판에 넘겨져 보호관찰 처분을 받았는데 도주했다. 다시 가출팸 친구들과 금품 갈취를 하다 붙잡혔다. 경기도 소년원에 2년 입소 처분을 받았다. 자유로운 삶이 몸에 밴 지혜에게 규율로 가득한 소년원은 지옥 같아 자살을 생각하기도 했다.

피부미용 자활 수업에 참여한 게 전환점이 됐다. 마네킹 얼굴을 마사지하던 지혜가 강사의 눈에 띄었다. “너 어디서 배웠니? 정말 잘하는데”라는 칭찬을 들은 지혜는 피부미용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어른에게 칭찬을 듣기는 처음이었다. 지혜는 늘 거울을 보며 연습할 정도로 열정을 쏟았다. 강사는 “실제 손재주가 좋은 아이였습니다. 꽤 소질이 있었어요”라고 말했다.

여느 소녀처럼 외모도 가꾸기 시작했다. 피부미용실에 취직하려면 살을 빼야 유리하다는 충고를 듣고는 다이어트를 시작했고 소년원에서 나갈 때 17㎏ 정도 감량에 성공했다. 경기도의 한 피부미용실에 일자리도 구했다. 오전 9시40분부터 오후 8시까지 일하는 ‘풀타임’이다. 주말에는 여자대학 평생교육원에서 피부미용 수업도 듣는다. 3학기 동안 장학금을 받았을 정도로 성실하게 공부했다.

이제는 미용실 원장님의 잔소리도, 살 더 빼라는 (대학) 언니들의 잔소리도 좋다고 했다. “가출팸 아이들은 아직 비슷하게 살고 있다는 얘기를 전해 들었어요. 저도 몰려다닐 때는 그 아이들이 제 인생의 전부인줄 알았어요. 그러나 지금은 엄마 같은 (피부미용실) 원장님, 저와 같은 관심을 가진 언니들이 있어서 가출팸 아이들과는 연락하지 않기로 했어요.”



외톨이라는 무력감

소속감은 아이를 바꿔놓는다. 가출팸처럼 부정적인 무리에서는 비행이 강화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무리에서는 아이도 그렇게 바뀐다. 또래의 영향력은 막강해서 아이 성격까지 바꿔놓기도 한다. 집단따돌림으로 학교를 그만둔 예림(가명·17여)이가 그랬다.

예림이는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속칭 ‘전따’(전교 왕따)였다. 아이들은 예림이에게 다가갔다가 자신도 따돌림을 당할까봐 말을 걸어주지 않았다. 예림이를 ‘벙어리’라고 불렀다. 소심한 성격에 부모에겐 말도 못하고 끙끙 앓았다. 외톨이라는 무력감과 자괴감에서 극단적인 생각도 여러 번 했다.

부모의 과잉보호가 오히려 화근이었다. 예림이는 부모님이 40대 중반에 낳은 늦둥이다. 애지중지 키웠고 행여 다칠까봐 외출도 맘대로 못하게 했다. 아들에 대한 아쉬움으로 남자아이처럼 길렀다. 일부러 목소리를 굵게 내라고 가르치기도 했다. 부모의 ‘인형’처럼 자라면서 또래와 함께 노는 법을 익히지 못한 게 문제였다. 결국 중2 때 학교를 그만뒀다. 어느 무리에도 속하지 못하는 아이를 보고 부모는 땅을 쳤다.

어디에도 기댈 곳 없었던 예림이가 달라진 건 지난 3월 위탁형 대안학교에서 ‘카페립(立)’ 소속 청소년들과 만난 뒤였다. 2010년 문을 연 카페립은 바리스타 훈련을 통해 취약계층 청소년의 자활을 돕는 ‘청소년 자활 작업장’이다. 평소 커피에 관심이 많았던 예림이가 지원서를 냈고 한 달 뒤 대안학교를 그만두고 카페립으로 출근하기 시작했다.

예림이가 카페립에 도착하는 시간은 오전 9시30분. 오후 3시까지 커피를 직접 만들고 매장 청소를 한다. 손님이 오면 서빙하는 것도 예림이 몫이다. 평범해 보이지만 5명의 카페립 청소년 사이에는 규율이 있다. 서로에게 상처 되는 말을 할 수 없다. 항상 밝게 웃으며 의견 차이가 있어도 서로의 말을 끝까지 들어야 한다. 예림이는 함께 일하는 언니 오빠 동생들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자기를 소개할 때면 ‘카페립 교육생’이라는 말을 먼저 꺼낸다.

예림이는 멋진 바리스타가 돼서 사람들에게 좋은 커피를 대접하는 꿈을 꾼다. “캐러멜 마키아토를 가장 좋아해요. 달콤한 커피가 제 상처를 치료해주는 것처럼 느껴져요. 바리스타 2급 자격증 시험과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어요. 카페립 언니 오빠들이 좋은 바리스타가 되려면 공부도 잘해야 한다고 했거든요.”

예림이는 부모와도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 “남을 좀더 생각하게 됐어요. 피해의식이 있었는데 카페립에서 많이 없어졌어요. 어른스럽게 변해가는 것 같아요. 이제는 혼자가 아니니까.”

글·사진=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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