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엄상익] 인간을 무시하는 게 존재의의인가요 기사의 사진
20년 동안 백화점에서 전자제품을 판 여직원이 그의 눈에 비친 세상의 모습을 알려주었다. 판매원은 고객의 스트레스 해소 대상이라는 것이다. 전화를 해도 쌍욕부터 시작하는 경우가 많고, 상품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전화로 ‘너 머리 다 뜯어버릴 테니까 기다려’ 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진짜로 찾아온 그런 험악한 고객 앞에서 그녀는 무릎을 꿇은 적도 있고 머리를 뜯긴 적도 있었다고 고백했다.

사람들이 왜 그런 행동을 하는 것 같으냐고 물었다. 그녀는 물건을 사는 게 아니라 자신들의 존재를 알아달라는 거 같았다고 대답했다. 그녀에 따르면 가짜들은 명품라벨을 머리부터 발끝까지 걸치고 막말로 사람들을 멸시하면서 존재의의를 찾는다. 반면 진짜 부자들은 옷을 검소하게 입고 말도 겸손하게 한다고 했다. 숱한 모멸감을 오랫동안 견뎌온 그녀는 가짜한테는 어떤 수모를 당해도 마음을 상할 필요가 없다고 했다.

패키지여행을 따라 간 적이 있었다. 관광 가이드에게 무리한 걸 요구하고 괴롭히는 사람들이 있었다. 여행지에서 못사는 듯한 외국인 앞에서 우쭐대고 과시하는 걸 보면서 눈살이 찌푸려지는 경우도 있었다. 카프리 섬 포구의 벤치에서 순례자 같아 보이는 이탈리아인에게 한마디 들은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잘살게 된 동양인들을 보면 주머니는 돈으로 채워졌지만 머릿속은 빈 것 같다고 했다. 십여년 전 시베리아를 횡단하다가 시골에 사는 러시아인에게서도 한마디 들었다. 자신들은 적은 생활비로 힘들게 살지만 그 액수가 중요한 게 아니라고 했다. 시베리아 도시의 뒷골목 시장에는 헌책들이지만 톨스토이 같은 문호들이 쓴 작품이 쌓여있고 허름한 건물이지만 언제든지 최고의 공연을 즐길 수 있는 깊은 문화의 나라가 러시아라고 했다. 그들은 졸부처럼 보이는 한국인에 대한 반감을 가지고 있는 듯했다.

아파트 경비원이 분신자살을 했다. 못난 아파트 주민의 인격적 모독에 대한 극적 저항인 것 같다. 경비직에 종사하는 한 분이 인터넷에 올린 글을 읽었다. 아이가 보는 앞에서 경비원을 보고 ‘너 공부 안 하면 다음에 저 아저씨처럼 된다’는 말을 함부로 내뱉는 경우가 있었다고 했다. 담배 피우는 아이들에게 한마디 해도 그 부모가 찾아와 ‘당신이 뭔데 우리 애한테 꾸중을 하느냐’면서 핏대를 올린다는 것이다.

민주사회라고 하지만 우리의 DNA 속에는 수직적인 계급의식이 유전되어 오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 재벌회장이 감옥에 있다는 보도를 봤었다. 우연히 그 밑에서 계열사 사장까지 지낸 친구를 만났다. 회장님 면회를 가느냐고 물었다. 그는 오너 측에서 불러주지 않으면 가고 싶어도 마음대로 갈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사회에서 겉으로는 같아 보이지만 재벌그룹의 오너와 우리는 다른 존재라고 속내를 털어놓았다.

민주사회라지만 돈이 있는 자와 없는 자, 더 많은 자와 덜 많은 자 등 그 구분이 끝이 없다. 돈만이 아니다. 생산직과 사무직의 구별이 있고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에 눈물 흘린다. 자기가 종사하는 분야에서 평생 외길을 걸어 정상에 올랐다면 존경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그러나 모임에서는 국회의원에게 머리를 굽히고 상석을 양보하는 악습이 남아있다. 바탕에는 ‘내가 누군데’라던가 ‘억울하면 출세하라’는 의식이 깔려 있는지 모른다.

기존의 불공평한 세계가 바닷속으로 침몰하고 멋진 세상이 갑자기 떠오르는 수는 없다고 한다. 진독수의 아나키즘비판에 나오는 말이다. 그래도 세상은 조금씩 변한다. 대리기사를 멸시하고 폭행에 관련됐던 국회의원이 공개적인 지탄을 받자 뻣뻣하던 목이 굽혀졌다. 사회적 분위기가 입주민으로 하여금 분신자살한 경비원 빈소를 찾아가 사과하게 만들었다. 사회적 공감대가 천민자본주의의 졸부의식과 권위의식을 조금씩 몰아내고 있는 것 같다. 얼마나 높이 사다리를 탔느냐보다 그게 어디에 놓였느냐를 중요하게 느끼는 세상이 되어야 한다.

엄상익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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