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혀가 짧은데 침은 길게 뱉으라니 기사의 사진
‘증세’는 불편한 단어다. 세금을 걷는 측이나 내는 쪽 모두 거론하기 싫어한다. 하물며 ‘무상복지’ ‘무상보육’과 마찬가지로 증세가 이미 정치의 언어가 된 우리 현실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러나 금기어처럼 외면할 수는 없다. ‘내 복지’ ‘네 복지’의 다툼 속에 정쟁의 대상으로 묻혀있는 증세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내야 한다.

증세 필요성 여부는 1차적으로 정부 재정 실상을 제대로 파악하는 데 있다. 현재 형편처럼 빚을 내야 나라살림을 꾸려나갈 지경인 데다 더욱이 앞으로 나아질 것이라고 합리적으로 확인되지 않으면 증세는 불가피하다. 씀씀이를 줄이는 방법도 있으나 돈을 왕창 풀어 경제를 살리겠다는 현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 긴축재정은 불가능하다.

어려운 재정용어와 천문학적 단위의 돈으로 포장돼 이해가 쉽지 않은 나라살림을 가계에 비유해 들여다보자.

2008년부터 7년째 가장의 수입이 생활비를 밑돌면서 빚을 얻기 시작했다(재정적자). 2012년부터는 회사가 어려워져 월급이 줄어 빚은 더 늘어났고(세수결손,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금) 친지들의 급전으로 돌려 막기에 급급했다(적자국채). 지난해는 쥐꼬리만큼이나마 갚았지만 올해는 한 푼도 상환하지 못할 것 같다. 2007년까지는 꼬불쳐놓은 비상금이나 눈먼 돈이라도 꽤 됐지만 요즘엔 거의 없다(세계잉여금). 와중에 장남은 또 빚을 내서라도 새 사업을 시작해 집안을 일으켜 보겠다며 자신만 믿으란다(확장재정). 아버지의 지원을 받으니 말릴 수도 없고 식구들은 가슴만 졸인다. 취직한 자식들이나 시동생들에게 함께 사는 생활비를 좀 올려달라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으나 가장의 위세에 눌려 포기한다(증세).

다시 재정으로 돌아오면 이렇다. 2008년 시작된 재정적자는 7년째다. 재정보전을 위한 적자국채 발행액이 올해 200조6000억원으로 처음으로 200조원을 넘어섰다. 2012년 이후 지속된 세수결손은 올해와 내년에 각각 10조원을 넘을 전망이다. 우체국 예금이나 복권기금 등 64개 공적기금에서 빌린 공공자금관리기금 예수금은 지난해 24조원을 비롯해 누적액이 172조원이다. 지난해 겨우 원금 1000억원을 갚았으나 올해 상환예정금액은 0원이다. 국세수입이 예상보다 많았거나 지출이 세출예산보다 적어 남은 여윳돈인 세계잉여금은 2007년 15조3000억원이었으나 지난해는 812억원으로 188분의 1로 급감했다. 국민들이 갚아야 할 빚은 내년 기준 1인당 621만원이다. 최경환 경제팀은 경기 진작을 위해 40여조원을 투입키로 하는 등 자신감을 드러내고 있으나 성과는 미미하고 전망도 밝지 않다. 경기전망과 세입여건을 고려하면 재정균형 달성은 힘들고 만성적인 재정적자를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빚더미에 올라있는 이런 재정상황에 무상급식, 무상보육, 기초연금, 장애인연금, 반값등록금 등 ‘5대 무상복지’를 실현하려면 내년에 25조8000억원이 든다. 무상급식과 무상보육만 해도 각각 2조9000억원, 8조2000억원이다. 부담의 주체가 중앙정부냐 지방정부냐를 떠나 현재의 재정 상태로는 근본적으로 감당하기 어렵다. 여야의 주장을 절충해 ‘적정복지’를 택하더라도 ‘적정부담’은 어쩔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적정부담은 곧 증세다. 정부 여당이 주장하는 ‘증세 없는 복지’는 ‘혀가 짧아도 침은 길게 뱉어라’는 속담과 마찬가지다.

이미 증세의 당위성을 따질 시기는 지났다. ‘무상복지’를 포함하지 않더라도 이제는 어떤 세목, 어떤 세율을 신설 또는 조정할지 결정해야 될 만큼 재정 상황이 절박하다. 야당이 주장하는 법인세 인상, 부자 증세와 정부가 추진하는 담뱃세 인상은 물론 저소득층에 부담이 많은 부가가치세 조정까지도 논의해야 된다. 증세를 정략이나 진영 논리로 취급하는 것은 저열한 정치의 시각이다. 피할 수 없다고 즐길 수는 없지만, 피할 수 없다면 제대로 하자. 그것이 증세 문제를 극복하는 정공법이고 궁극적으로는 국민을 위한 선물이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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