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신창호] 진심의 정치, 기술의 정치 기사의 사진
요즘처럼 정치가 인기 없던 시대도 드물었다. 선진국이라는 미국과 유럽을 훑어봐도 정치인이 존경받는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정치의 역할이 보통 사람들의 삶과 자꾸 더 멀리 떨어져간다는 뜻이다.

그런데 한 가지! 요즘처럼 정치에 관심을 보이는 사람이 많던 시대도 없었던 듯하다. 선진국일수록, 사회가 안정됐을수록, 민주주의 국가일수록 정치에 관심을 갖는 일반 시민의 숫자가 훨씬 더 많다. 역시 우리나라도 예외가 아니어서 종합편성 케이블 방송 채널이 다수 생겨난 뒤부터 정치에 대한 관심은 더 심해졌다. 현실 정치와 정치인의 몸값은 ‘도매금’으로 넘어가는데, 대중의 관심은 점점 더 높아지는 현상. 얼핏 보면 아이러니에 가깝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큰 의미가 함축돼 있다. 아직도 사람들은 정치를 통해 자신들의 삶의 터전이 훌륭해지기를 바라고, 뭔가 예전보다는 살기 좋아지길 바란다는 뜻이다.

대다수의 공동체 구성원이 만족할 만한 룰을 정하고 제도를 만드는 것, 구성원 개인의 개성과 능력, 일상생활을 좀 더 향상시키는 것, 이 정도가 정치에 맡겨진 책임이다. 말이야 쉽지 결코 실천하기 쉬운 일이 아니다. 지금처럼 정치인의 자격이 유권자들의 투표로 결정되는 세상에선 더 힘든 일이다. 그래서 꼭 필요하지만 인기 없는 정책은 정치인들에게 기피 대상이다. 다음 선거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다.

몇 달 전 박근혜 대통령은 바로 이 본능과도 같은 정치인들의 생리와는 정반대 길을 선택했다. 반발이 명약관화(明若觀火)했던 ‘올해 안 공무원연금 개혁’ 카드를 던진 것이다. 박 대통령은 “이대로 가다간 공무원연금만 파산나는 게 아니라 국가재정 전체가 거덜날 것”이라고 호소했다. 금방 여당은 대통령의 선택에 동의했고, 야당도 개혁의 당위성에 반대하지 못했다. 국민들 역시 3분의 2 이상이 찬성하고 있다. 이렇게 박 대통령의 ‘진심’에는 누구도 쉽게 반대하지 못할 정도가 됐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는 거듭 진심 보여주기에 여념이 없다. 기회 있을 때마다 공무원연금의 현실을 상기시키고 칼을 댈 수밖에 없는 당위성을 강조한다.

그런데 진짜 공무원연금 개혁이란 목표가 달성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여도 야도 국민도 다들 고개를 갸웃거린다. 밥그릇 일부를 내놔야 하는 제1의 당사자, 100만 공무원들 반발 수위가 예사롭지 않기 때문이다. 여당은 총대를 메고 나서고도 “그래도 이건 너무 시간이 촉박한 것 아니냐”는 생각이 더 많고, 야당은 아예 시간 끌기 전략이다. 아직 진심은 통하지 않은 셈이다. 이전에도 여러 차례 박 대통령은 진심을 보여준 적이 있다. 작년 이맘때는 비정상의 정상화 개혁을, 세월호 참사 이후에는 공직사회 적폐 철폐 필요성을 제기했다.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긴 하지만 이 정책들은 아직 실적이 전무하다.

진심을 실현할 ‘기술’을 아직 찾지 못했다고 하는 게 맞겠다. 그 기술이란 개혁의 당사자인 공무원과 정책에 반대하는 야당을 설득하는 방법이다. 민주주의만큼 이해당사자 설득이 중요한 정치적 절차가 된 정체(政體)는 역사상 없었다. 억지로든 자발적으로든 반대편의 동의를 얻어내지 못하면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게 선거를 통해 집권한 정치세력이다. 6개월을 허비했던 세월호 여야 대치 정국도 희생자 유가족을 설득해내면서 순식간에 해결됐다. 의견이 다른 상대방을 설득하려면 때로는 윽박지르기도 하고, 때로는 그들에게 양보도 해야 한다. 상대방 약점을 파고들되 존중할 줄 알아야 하고, 대접도 해줘야 한다. 그 정도 기술은 갖춰야 뭔가 실적이 생기는 게 인간사(人間事)다.

한 달여가 지나면 박근혜정부도 집권 3년차를 맞게 된다. 박 대통령만큼 진심에 자신감을 가진 정치인은 별로 없었다. 바로 이걸로 대통령에 당선됐기 때문이다. 그래도 이제는 ‘진심의 정치’가 ‘기술의 정치’로 진화해야 하지 않을까. 실제 현실이 되지 않는 진심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다.

신창호 정치부 차장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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