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노트] (45) 비니, 한겨울의 높은음자리표 기사의 사진
햇츠온 제공
기다란 팔을 위아래로 휘저으며 냉소적인 가사를 내뿜는 언더그라운드 래퍼들. 힙합에 별다른 감흥을 느끼지 못하던 취향에 ‘지하’의 기운이 스며들도록 도움을 준 기특한 존재를 소개하고자 한다. 솔직히 저항 정신이 강한 언더그라운드라는 단어는 달콤한 대중적 인기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중년 여자의 의생활이 숙지하지 못하는 개념이었다. 떨어질 듯 말 듯 불안정한 태세로 머리에 얹힌 스머프 모자에 관심이 가리라고는 상상조차 못했다.

그런데 스머프 모자를 비니로 부르는 이변이 생긴 것이다. 어째서였을까? 무작정 비니를 외치며 쇼핑에 나섰던 이유는 한국의 매서운 겨울 날씨가 한수 거들었다. 한겨울에 접한 서울 날씨는 머리와 귀에 난로의 몫을 해줄 그 무엇이 필요했고 그때부터 비니는 삶의 일부가 되었다. 을씨년스러운 파카 차림에 겨울의 끝자락에서 조우하는 새봄의 속삭임 같은 어여쁜 기운이 살짝 내려앉는 기분이다. 비니의 어원에 대해 알려진 것 중 인상적인 하나는 영국식 영어에서 ‘bean’은 속어로 ‘머리’를 뜻한다고 하여 비니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다. 오래전 미국 대학교의 남학생 사교클럽에서는 클럽에 가입한 신입생들에게 우스꽝스러운 비니를 씌우는 식으로 신입생 신고식을 치렀다고 한다.

이러나저러나 비니는 우아함을 몰고 오는 패션용품은 아닌 듯하다. 그러나 귀여움을 잔뜩 거머쥐고 있어 그 털털함이 사랑스러울 뿐이다. 헝클어진 머리 곁에 비니가 있으면 한숨이 놓이니 이 얼마나 다행인가.

김은정(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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