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조상식] 입시과열 깨는 정책 모색해야 기사의 사진
작년 치러진 수능 세계지리 문항 오류에 대한 사법부의 판결 이후 엄청난 후폭풍이 불고 있다. 교육부가 불이익을 받게 된 수험생들에 대한 구제책으로 대학 정원 외 입학을 내놓았지만 이것으로도 구제되지 않는 지대에 놓여 있는 학생들이 적지 않으며 다양한 경로의 민사소송도 예상되고 있다. 이런 와중에 올해 수능의 영어와 생명과학II에서도 문항 오류가 발생했다. 연이어 터진 수능 출제 오류로 인해 출제 방식에 대한 격렬한 비판과 다양한 대안이 제시되고 있다. 더욱이 수능 시스템과 입시제도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점검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등장하고 있다.

수능을 주관하는 한국교육과정평가원의 출제 방식에 대한 지적은 기술적인 차원에서 제기된 것으로 보인다. 먼저 수능 출제 기간이 짧다는 견해가 있다. 수능 출제는 34일간 외부로부터 차단된 공간에서 출제위원, 검토위원, 다양한 영역의 교차검토위원 등에 의해 이루어진다. 출제 기간의 말미 열흘 정도는 인쇄, 분류, 포장, 이동에 소요되니까 전체 출제 기간 중 3분의 2 정도가 순수한 출제 기간인 셈이다. 하지만 매년 국감에서 지나치게 긴 출제 기간과 과다한 비용에 대한 국회의원들의 지적도 있었음에 주목해야 한다. 어쩌면 현재 정착된 출제 기간은 나름대로 출제 과정의 고유한 메커니즘을 반영한 결과일 수 있다. 따라서 기간을 늘리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출제위원이 교수이고 검토위원이 교사라는 ‘신분적 차이’로 인해 출제 오류 지적이 제대로 될 수 없다는 비판도 들린다. 하지만 검토의견서 전달 과정은 익명과 서면으로 처리되는 것이 출제 방침이다. 따라서 실제 이 원칙이 지켜지고 있는가가 문제지 불평등한 권력관계가 문제라는 지적은 과장에 가깝다. 이와 별도로 출제 교수들이 고교 교육과정 내용에 대해 둔감하기 때문에 문항 오류가 발생한다는 분석도 있다. 어느 정도 일리 있는 말이지만, 반대로 교사 중심의 출제는 문항의 이면에 놓인 다양한 학문 이론적 쟁점을 놓칠 수도 있다. 따라서 출제위원에 현직 교사를 확충하는 것은 생각해봄직하다.

그럼에도 기술적 개선만으로 문항 오류는 완전히 제어될 수 없다. 출제·검토 담당 전문가 집단의 지각력과 감식능력은 인간이 지니는 오류와 한계 내에 있다. 이 점에서 수능 폐지는 아니더라도 전체 대입 전형에서 차지하는 수능의 위상 자체에 대한 재검토는 자연스러운 요구다. 출제 오류가 공간적 폐쇄성과 제한된 인력에서 오는 만큼 문제은행식이나 자격시험 제도로 전환하자는 의견이 그것이다. 문제은행식 출제는 체계적인 관리가 용이해 보이지만 현재 입시과열 상황에서 그 보안은 장담할 수 없다. 국내에서 치러지는 SAT(미국 대학수학능력시험)나 각종 외국어 시험에서 발생한 문제 유출 사례가 이를 잘 보여준다.

자격시험 제도는 나름대로 제도적 합리성을 갖추고 있다. 여러 번의 응시를 허용해 평가 측정의 오차를 부각시키지 않으면서 지금처럼 출제 오류를 둘러싼 ‘전면전’으로부터 비켜갈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자격시험 제도로의 전환 주장은 대학선발고사 제도와 대학서열 체제의 완화 같은 구조적인 교육 개혁을 전제로 하고 있다. 하지만 여기에도 만만치 않은 문제의 실타래가 엉켜 있다. 자격시험 제도는 이른바 ‘물수능’으로 인한 변별력 상실이라는 현실을 받아들이는 대신에 사교육비 절감과 수험생들의 입시부담 완화를 겨냥한다. 그러나 자격시험으로 전환하면 변별 작업의 부담은 다른 전형 요소인 고교 내신이나 ‘본고사 부활’같이 대학 자체 선발로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선발 변별력의 풍선효과가 작동되는 셈이다. 그 결과 사교육 시장은 완화되기는커녕 그 영역이 이동할 뿐이다.

결국 출제 오류 논란이 연례 행사가 되지 않게 하는 근본적 해법은 단단한 대학 서열 구도로 인한 입시과열 현상을 깨는 획기적인 교육정책을 마련함으로써 아이들의 미래를 준비해주는 대안으로 대학 진학밖에 없는 현 교육 및 사회 구조를 개혁하는 데 있다.

조상식 동국대 교육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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