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교육을 망치는 착각 두 가지 기사의 사진
수능시험이 또 도마 위에 올랐다. 쉽게, 더 쉽게. EBS 교재에서 대부분 출제하라. 사교육 부담을 덜어야 한다는 정치적 압력이 변별력 없는 ‘물’ 수능을 낳았고, 사상 초유의 두 문제 출제 오류라는 대실책의 배경이 됐다. 출제 오류는 수험생들의 평균 성적을 더 높임으로써 쉬운 수능의 혼란과 문제점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 도대체 대통령이 대학입학시험을 쉽게 또는 어렵게 내라고 말하는 나라, 입시 난이도가 신문 1면 톱을 차지하는 나라가 지구상에 있었던가.

이런 난리의 바탕에 두 가지 착각 또는 가설이 있다. 문제를 쉽게 내야 사교육이 줄어든다는 착각은 조금만 생각해봐도 근거가 없음을 알 수 있는데도 정치인들을 끈질기게 유혹한다. 학부모 입장에서 입학 전형 방법이나 시험의 난이도는 사실 제로섬 게임이다. 어떤 학생에게 더 유리하다면 다른 학생에게는 불리하다. 승자와 패자의 숫자는 정해져 있다.

과도한 사교육비는 우리나라에서 너무 크게 벌어진 학력(學歷)별 임금격차, 그리고 선호되는 직업과 일터에 부여된 다양한, 때로는 부당한 특권에서 비롯된다. 대다수 학생들은 장차 어떤 큰 목표가 아니라 단지 억울한 일을 당하지 않기 위해 어지간한 대학에는 들어가야 한다. 입학 제도를 고쳐서 사교육비를 줄이려는 노력은 부질없거나 매우 제한적인 영향만 미칠 수 있을 뿐이다. 정부가 수능시험 난도를 높일 정치적 자신이 없다면 대학별 본고사를 허용하는 것이 상식과 정의, 그리고 대학교육 본연의 취지에 부합하는 길이다.

다른 하나의 입증되지 않은 가설은 고교 평준화가 학력의 하향 평준화를 초래했다는 주장이다. 평준화 이후 전반적 학력이 저하됐다는 증거나 연구 결과는 없다. 오히려 그 반대쪽 결론을 입증하는 근거 자료는 있다. 성기선(가톨릭대)·강태중(중앙대) 교수의 2001년 연구에 따르면 전국적으로 평준화 지역 고교 학생들의 학업성취도가 비평준화 지역 고교보다 더 크게 향상된 것으로 나타났다. 1999년 전국의 인문계 고교 자연계 3학년 학생 10만2262명(552개교)을 대상으로 그해 실시된 수능 모의고사 성적을 평준화, 비평준화 지역으로 나눠 각각 2년 전인 1학년 때의 수능 모의고사 성적과 비교한 결과 평준화 지역 고교의 평균성적 향상 폭이 비평준화 지역 고교보다 4점가량 더 컸다.

2012년 경기도교육청이 교육개발원에 의뢰해 조사한 결과도 비슷하다. 6700명의 3년 동안 모의고사 점수를 추적한 결과 평준화 지역 학생은 평균 39점, 비평준화 지역 학생은 27점 높아져 평준화 지역 고교의 성적 향상이 두드러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국제학업성취도 평가 결과를 보면 우리나라 고교생의 학력은 대체로 세계 2위의 우수한 성적을 유지하고 있다. 따라서 자율형사립고를 확대하거나 자사고의 학생 선발권을 유지하도록 하자는 주장의 근거인 학력 향상 효과는 설득력이 약하다.

물론 위 연구 결과들에서도 상위 10∼20% 학생들의 경우 비평준화 지역의 학업성취도가 더 크게 높아진 것으로 나타났다. 즉 적어도 최상위권 학생들에게는 동질적 집단끼리의 교육이 더 효율적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렇지만 의무교육이나 보편교육 단계에서는 뛰어난 학생을 위한 수월성 교육보다 전 국민의 학력(學力) 수준을 높이는 게 더 우선적 목표다. ‘어떤 어린이도 뒤처지지 않게’라는 부시 행정부의 교육 개혁 구호가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학력이나 창의력 향상을 위한 학생 간 경쟁은 대학 교육에서 더 강화되는 게 바람직하다.

정치인들은 교육 관련 선거 공약이나 입시제도 개편이 표를 벌어준다는 믿음을 갖고 있다. 그러나 입학 정원 확대, 입학 사정관제 도입, 대학설립 준칙주의, 수능시험 개편 등 숱한 기획들이 시도됐지만 결과는 늘 참담하거나 하나마나한 것들로 판명됐다. 물론 교육재정 확충이나 교육복지 관련 공약은 꼭 필요하고 바람직하지만 정치인들의 립서비스성 교육 공약에는 국민들이 속지 말아야 한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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