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비정규직 대책이 정규직 해고라니 기사의 사진
구조개혁이 다음 달 발표될 내년 경제운용방향의 핵심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최경환 경제부총리 취임 이후 대대적인 단기 경기부양책을 내놓았지만 좀처럼 경기가 회복되지 않자 정부가 구조개혁이라는 칼을 빼들었다. 성장잠재력 확충을 위한 근본 대책을 병행하지 않으면 경제의 체질 개선이 어렵다는 인식에서 비롯됐다. 금융·노동·교육·공공 등 4대 분야 개혁을 중심으로 자금과 인력 부문의 생태계를 변화시키겠다는 것이다. 고착화되고 있는 저성장 기조를 타개하기 위한 올바른 방향임에 틀림없다.

문제는 경제운용방향에 어떠한 내용의 구조개혁 의제를 담을 것이냐다. 우선순위와 실현 가능성 여부 등을 면밀히 판단해 세부 과제를 정교하게 짜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이해관계자의 반발만 초래하고 실질적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 그런 점에서 기획재정부가 뜬금없이 노동개혁으로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 카드를 꺼내든 것은 우려스럽다. 방향을 잘못 잡았다. 그것도 비정규직 종합대책의 일환으로 정규직을 쉽게 정리해고할 수 있게 하겠다니 그 발상부터 문제다.

물론 노동시장의 유연성은 시급한 구조개혁 과제다. 선진국이 그랬듯이 사회적 대타협을 통해 해법을 찾아야 한다. 그런데 비정규직 처우 개선을 하려면 기업 부담이 크니 정규직 해고로 그 부담을 상쇄시켜주겠다는 건 난센스다. 설령 정리해고 사유인 ‘긴박한 경영상의 필요’를 ‘경영 합리화 필요’ 식으로 바꿔 정규직 해고를 쉽게 했다고 해도 기업이 그 자리에 정규직을 새로 뽑아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한다는 보장도 없다.

정부는 우리의 고용 경직성이 선진국보다 높다고 한다. 하지만 이 주장은 우리나라와 선진국이 노동·복지환경에서 비교가 되지 않는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다. 선진국은 채용시장이 열려 있어 상대적으로 재취업이 수월하고 사회보장 등 사회안전망도 탄탄해 해직 후 생활하는 데 큰 어려움이 없다. 반면 우리나라는 회사에서 잘리면 상당수가 비정규직으로 전전해야 하는 실정이고 사회안전망도 취약하기 짝이 없다. 정리해고 외에도 권고사직, 희망퇴직 등으로 일터에서 쫓겨나는 일이 빈번하다. 근로자들의 죽음으로까지 이어진 쌍용자동차 사태와 관련한 대법원 판결에서 보듯 정리해고 요건도 폭넓게 인정되는 추세다. 일부 대기업 강성 노조의 기득권 챙기기는 비판받아 마땅하지만 해고 문제는 사회안전망 등 종합적 판단이 필요한 것이어서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

또 다른 문제점은 정책의 엇박자다. 지난 7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 발표 때 비정규직 대책은 가계소득 증대 방안으로도 나왔다. 소비와 투자를 유도하기 위해 기업소득이 가계로 흘러들어가게 한다는 취지였다. 근로자 임금을 높이는 기업에는 인센티브를 주겠다고도 했다. 그게 180도 달라진 것이다. 정규직을 쉽게 자를 경우 비정규직 양산을 초래해 소비 진작 효과가 나타나지 않을 게 뻔한데도 정부가 오히려 고용 불안을 조장하고 있으니 당시 발표가 립서비스에 불과했던 모양이다.

노동계 반발이 거세지자 최 부총리는 일단 한발 물러서는 모양새다. 그는 25일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로 기업이 겁이 나서 인력을 못 뽑는 상황”이라면서도 “해고를 쉽게 하기보다는 임금체계를 바꾸는 등 여러 방법이 있을 것”이라며 임금체계 개편에 무게중심을 뒀다. 임금과 노동시간 같은 질적 유연화를 해결과제로 삼겠다는 건 적절한 방향이다. 우리 임금체계는 근속연수 중심의 연공서열형으로 성과와 관계없이 임금이 오르고 각종 수당이 많아 복잡하다. 직무·성과급 중심의 임금체계 전환이 거론되는 이유다. 임금피크제 도입과 탄력근로시간제 확대 등도 검토될 수 있다.

이 같은 의제는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 가능하다. 따라서 사회적 갈등만 증폭시킬 정규직 해고 요건 완화라는 무리수는 이쯤에서 완전히 접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진지한 대화를 할 수 있다. 만일 다시 꺼내려면 철밥통 공무원부터 정리해고를 한 뒤에나 하든지.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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