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속의 샘] 복지, 겨울강의 다리 기사의 사진
선거철마다 등장하던 복지 이야기가 겨울로 접어드는 지금 다시 주목을 받고 있다. “지금은 대한민국의 무상복지 정책 전반을 돌아봐야 할 시점이다. 국고가 거덜 나고 있는데 무상파티만 하고 있을 것인가” 얼마 전 한 광역자치단체장이 라디오 인터뷰에서 던진 말 한마디로 정치권에는 다시 해묵은 복지 정쟁이 일어나고 있다.

정치권에서 복지 앞에 ‘무상’이라는 용어를 가장 먼저 붙여 쓴 정당은 민주노동당이다. 민노당은 2000년 창당 때 교육과 급식 및 의료 분야에 무상이란 용어를 붙여 복지를 강조하는 정당으로서의 이미지를 확고히 내세웠다. 이후 제1야당에서 이 아이디어를 모방하여 많은 정책의 머리에 수식어로 붙여 쓰면서 정치권 전반으로 확산되었다. 야당은 무상급식, 무상의료 공약으로 재미를 톡톡히 보았다. 여당은 야당의 무상복지 정책을 포퓰리즘이라고 강력하게 맞받아치면서도 자신들 역시 반값등록금 등과 같은 동일 성질의 공약으로 적잖은 이익을 건졌다.

무상복지가 정치권에 확산되어 사용되는 동안, 일각에서는 ‘무상복지’를 ‘공짜복지’로 몰아가며 부정적인 이미지를 키워갔다. 우리에게 무상이란 용어는 다른 기억으로도 간직되어 있다. 저 해방공간에서 남북으로 갈라져 대립이 극을 향해 치닫던 시절, 북녘 땅에서 들려왔던 ‘무상몰수, 무상분배’라는 구호가 그것이다. 무상복지라는 말은 묘하게도 그 기억과 맞물려 점차 이념 대립의 상징처럼 되어가고 있다.

이 지점에서 의문이 고개를 든다. 그런데 복지에 과연 무상이라는 말을 붙일 수 있는가? 그것이 타당한가? 지금 정치인들은 보수든 진보든, 혹은 여당이든 야당이든 무상복지라는 말을 쓰면서 마치 국가 혜택의 ‘무상 제공’ 나라 재산의 ‘무상 증여’처럼 사용하고 있다. 나라의 재산을 국민에게 무상으로 제공한다는 어감이다. 이러한 말을 사용하는 의식의 밑바닥에는 자신들은 나라의 주인이고, 국민들은 피지배계급으로 인식하는 전근대적 사유가 강하게 자리 잡고 있다.

국가의 복지는 기회의 균등, 부의 공정한 분배, 행복한 생활을 위해 필요한 최소한의 경제 환경 등을 공공의 책임 아래 제도적으로 보장한다는 시스템 개념이자 국가의 건전성을 자리매김하는 척도이다. 결코 정치인의 선심으로 제공하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우매한 백성은 그 혜택을 받고 감격해 눈물이라도 흘려야 마땅한가? 무상복지는 국민 하나하나가 정치의 주체가 된 근대 민주주주의 사회에서 보자면 너무나 치욕스러운 용어이다.

춘추시대 정나라 대부 자산(子産)은 수레를 타고 가다가 한겨울 언 강을 건너는 어떤 사람을 보고, 너무나 가여워 자신의 수레에 태워 건네주었다. 모든 사람들은 자산의 덕행에 감동하였고, 훌륭한 정치인이라고 추앙해마지 않았다. 하지만 맹자는 달랐다. 맹자는 백성들에게 은혜를 베푸는 것이 좋은 정치가 아니라 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이 좋은 정치라고 일갈을 날렸다. 복지는 이처럼 겨울 강의 다리와 같은 것이다. 불평등한 차별의 강에 세워주는 공평한 기회의 다리이다. 기초 생활이 불가능한 이들 앞에 세워주는 의식주의 다리이다. 교육 분야의 든든한 다리여야 하고, 의료 분야의 안심할 수 있는 다리여야 한다.

맹자의 정치경제 사상은 제나라 대부 안영(晏?)이란 인물에게 영향을 받았다. 백성들의 삶을 가멸차게 해주고 나면, 사회적 재화가 균등하게 배분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라고 안영은 말한다. 이것을 그는 폭리(幅利)라고 표현하였다. 비단의 폭이 일정하듯이 재산도 일정한 폭을 형성하여 균형 있게 유지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안영의 폭리 사상이 맹자의 항산(恒産) 논리로 이어졌다. 국가는 백성들에게 안정된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필요한 기본 재산을 제도적으로 보장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사회적 약자인 독거노인 고아 홀아비 과부가 먼저 도움을 받는 정치가 왕도정치의 기준이 된다고 주장하였다. 맹자가 말한 사회적 약자가 도움을 받는 정치란 그들 개개인이 국가로부터 수혜를 받는다는 뜻이 아님을 우리는 저 다리 이야기에서 알 수 있다. 가장 약한 계층의 사람들마저 안락하고 행복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시스템화 된 제도로부터 도움을 받는다는 뜻이다.

동양의 지식인들이 서구 문물을 받아들일 때 가장 당혹스러웠던 어휘 가운데 하나가 민권(民權)이라고 한다. 도대체 민에게 권(權)이 있을 수 있는가? 권(權)이란 말이 오로지 군주에게만 붙을 수 있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에게, 관료도 아닌 민에게 권이란 말을 붙여 쓴다는 것은 여간 이해하기 어려운 개념이 아니었다. 지금은 백성들로 구성된 전근대 국가가 아니라 개인 하나하나가 정치의 주체인 민주주의 시대의 근대 국가에 살고 있다. 복지의 폭과 질에 대해서는 그 나라의 경제 규모와 제반 여건에 따라 합의하고 조율할 문제이겠지만, 복지 앞에 무상이라는 말을 덧씌워 매도하거나 의미를 변질시켜서는 곤란하다.

이규필 성균관대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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