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5] ‘중독’을 ‘몰입’으로 바꿔줘라 기사의 사진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위기 청소년은 적절한 돌봄을 받지 못해 중독에 빠지기도, 중독 때문에 위기에 처하기도 한다. 중독은 위기의 원인이자 결과다. 중독을 극복하는 일은 청소년을 위기에서 건져내는 '열쇠'다. 하지만 말처럼 간단하지 않다. 금단현상, 내성, 현실도피라는 장애물이 버티고 있다. 내성은 점점 강한 자극을 추구케 해 다른 행위에서 즐거움을 찾지 못하도록 막는다.

중독에서 벗어나려는 아이는 금단현상으로 고통을, 순응하는 아이는 힘겨운 현실에서 도피하는 '달콤함'을 얻는다.

그렇다고 어른이 강압적으로 막는 건 큰 도움이 안 된다. 전문가들은 아이가 진정 원하는 걸 찾아 몰두하도록 여건을 만드는 데 집중하라고 조언한다. 꿈을 찾아 몰두하는 아이들은 중독을 극복하는 에너지가 나온다.

게임 중독을 이기는 ‘숫자, 피아노, 수다’

충남 천안에 사는 여고생 경아(가명·17)는 ‘리그 오브 레전드’라는 게임의 달인이다. 전국 순위가 상위 1% 안에 드는 실력자다. 1년 넘게 이 게임에만 몰두했다.

머리를 식히려고 시작했는데 점차 경아의 일상을 잠식했다. 학교에서 돌아와 게임에 접속하면 새벽까지 게임만 하는 날이 많았다. 지각이 잦아졌고 성적도 뚝뚝 떨어졌다. 투자한 시간에 비례해 계급이 올라가고 가상의 친구들로부터 찬사를 받는 게임 세계는 현실보다 매력적이었다.

경아도 중단하려 했었다. 학교에도 가지 않는 ‘중증’으로 빠져들기 전이다. 그는 “게임을 하면서도 고통스러웠다. ‘이게 아닌데’라는 생각이 들었지만 생각과 행동은 따로 놀았다”고 했다.

경아는 어머니와 상의하다가 면박만 당했다. 경아는 스스로를 다잡고자 학급 석차를 한 단계 올릴 때마다 500원씩 달라고 어머니에게 제안했다. 그러나 어머니의 반응은 싸늘했다. “널 위해 공부하는 건데 왜 내가 너에게 돈을 줘야 하냐”는 식이었다.

사실 경아에게 중요한 건 돈이 아니었다. 경아의 상담교사는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어머니가 돈을 대단히 중요하게 여기니까 소액이지만 돈으로 애정을 확인하고 싶었던 것 같다”고 했다.

이후 경아는 학교도 가지 않고 게임에만 몰두했다. 학교를 빠지면서 부모님이 개입했지만 이미 통제불능이었다.

결국 경아는 학교 부적응으로 위기학생 전담 기관인 충남 위스쿨(충무교육원)에 들어갔다. 게임을 예전처럼 못하게 되자 금단현상으로 고통스러워했다. 학교 건물을 배회하면서 안정을 찾지 못했다. 입교 후 첫 번째 주말은 내내 게임만 했다. 기숙형인 충남 위스쿨 학생들은 금요일 저녁에는 귀가해 월요일 오전에 등교한다.

상담교사는 게임의 대체재를 찾기로 했다. 먼저 친구와 수다를 떨도록 했다. 여느 여자아이처럼 경아도 친구들과 모여 수다 떠는 걸 좋아했다.

그리고 특기인 피아노와 숫자 계산을 권했다. 경아는 돈을 계산하는 게 좋아 회계 관련 일을 꿈꿨다. 상업계 고교에 진학한 이유이기도 했다. 상담교사는 이 세 가지로 경아를 게임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유도했다. 위스쿨에서 나간 주말에는 게임과 이 세 가지를 병행토록 했다.

상담교사의 부탁을 받은 경아 친구들이 큰 역할을 했다. 친구들은 경아가 게임에서 벗어날 수 있게 주말에 끊임없이 불러댔다. 경아도 선생님과 약속했기 때문에 게임하던 시간에 친구들과 만났다. 수다를 떠는 게 좋기도 했다. 좋아하는 연예인, 학교, 공부 이야기를 하다보면 속이 후련해졌다.

좋아하는 회계 공부도 다시 시작하게 됐다. 게임이 하고 싶으면 피아노를 쳤다. 경아는 “점차 엉켜 있던 실타래가 풀려가는 느낌”이라고 했다.

일단 궤도에 오르자 경아의 변화는 단호했다. 게임을 통해 만난 남자친구와도 최근 헤어졌다. 남자친구는 경아의 충고를 거부하고 게임을 계속했다.

상담교사는 “0이 원래 게임 중독 상태고, 10이 완전히 벗어난 상태라면 경아는 현재 5에서 6 정도 올라왔다”며 “교사가 7∼8 수준까지는 끌어올릴 수 있지만 10까지 가는 건 경아의 의지”라고 했다.



어느 여고생의 ‘자해 중독’ 극복기

여대생 수연(가명·19)씨의 왼쪽 손목에는 칼로 자해한 흔적이 가득하다. 자해 흔적이 손목에 5∼6㎝ 너비로 빼곡하게 차 있다. 고교 1∼2학년 때 저지른 일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문구용 칼로 화장실에서 상처를 냈다. 자살하고 싶은 생각은 별로 없었다. 손목을 긋고 피가 나오면 후련했다고 한다.

수연씨는 어려서 몸이 약해 학교를 빠지는 일이 잦았다. 그러다보니 친구들과도 소원해졌다. 내성적인 성격 탓에 중학교 때부터 집단 따돌림을 당하기 시작했다. 고교에 진학할 때가 되자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했다. 집에서 공부해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버텼다. 학교를 그만두겠다고 하자 어머니와도 틈이 벌어졌다. 어머니는 수연씨의 유일한 친구였다.

우울증이 생긴 건 그때쯤이었다. 동시에 칼로 상처를 내는 버릇도 생겼다. 작게라도 상처를 냈고, 하루라도 피를 못 보면 잠을 이루지 못했다. 건설 관련 일을 하는 아버지는 지방으로 일하러 다니느라 집을 비우는 날이 더 많았다.

상담 기관은 미술을 권했다. 수연씨는 원래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그가 미술에 관심이 있는지 어머니를 포함해 아무도 몰랐다. 학교 교사도 마찬가지였다. 어려운 집안 형편을 고려해 수연씨가 입을 다물었기 때문이다.

상담 교사는 피를 보고 싶으면 빨간색 물감을 짜서 그림을 그리도록 했다. 일종의 ‘응급처치’였다.

마음껏 그림을 그리자 수연씨는 점차 밝아지기 시작했다. 상담 기관에서는 물감과 종이를 무한대로 제공해줬다. 상담 교사들이 사비를 털어 물감값을 대기도 했다. 하루 3∼4시간씩 어떤 날은 하루 종일 그림만 그렸다. 이렇게 한 달이 지나자 다시 학교에도 나가기로 했다. 부모님을 포함해 어느 누구의 설득도 통하지 않았던 부분이었다.

수연씨는 현재 지방대 중문과에 다니고 있다. 대학에 다니며 남자친구도 생겼다. 미술은 취미로 하기로 했다. 우울감이 찾아올 때마다 붓을 잡는다. 미술 관련 학과에 진학하지 않은 건 돈을 벌어 어머니를 편하게 모시기 위해서라고 했다.



아날로그 게임으로 스마트폰 중독 이겨낸 초등학생

초등학교 4학년 영문(가명·12)이는 스마트폰이 유일한 장난감이었다.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스마트폰 게임에 중독됐다. 밥 먹을 때도 스마트폰 게임을 하는 중증 중독자였다. 집에서는 문제가 없었다. 누구도 영문이를 돌봐주지 않았다. 이혼 후 알코올 중독에 빠진 어머니는 영문이를 돌볼 겨를이 없었다. 가끔 찾아와 용돈만 쥐어주는 아버지는 아들이 제대로 성장하지 못하고 있는 걸 눈치 채지 못했다.

학교 들어가서 영문이의 상태가 확인됐다. 어려서 게임만 했던 영문이는 아이들과 전혀 섞이지 못했다. 언어 능력도 또래에 비해 현저히 떨어졌다. 지능도 마찬가지였다.

말을 제대로 못하는 영문이를 아이들이 따돌렸다. 스마트폰 게임만 했기에 사회성도 제대로 기르지 못했다. 충동성과 분노조절 장애까지 있었다. 아이들이 조금이라도 기분 나쁘게 하면 즉각 폭력적으로 반응했다. 또래들은 누구도 영문이를 상대해주지 않았다.

보다 못한 담임교사가 전문 상담 기관에 영문이를 맡겼다. 상담 기관은 어머니 상담을 요구했다. 해법은 아날로그 게임으로 스마트폰 사용을 줄이도록 한 것이다. 어머니와 보드게임을 하도록 했다. 어머니가 시간이 안 되면 상담 교사들이 게임을 해줬다.

그렇게 1년 정도 치료받았다. 보드게임은 사회성을 기르는 보충교재가 됐다. 다른 사람과 마주보고 하는 아날로그 게임은 규칙을 지켜야 재미있다. 영문이는 아직도 스마트폰 게임을 하지만 빈도는 현저히 줄었다. 최근에는 학교에서 친구도 생겼다.

중독 치유 전문가인 최삼욱 을지대 강남을지병원 교수는 “중독 치료는 일찍 시작할수록 좋다. 어느 중독이든 똑같다”면서 “인터넷이든 스마트폰이든 중독에서 나오는 방법은 단순하다. 가상현실보다 진짜 현실을 더 재미있게 해주면 된다. 아울러 또래 친구들의 지지, 어른들의 격려가 중독에서 벗어날 확률을 높인다”고 말했다.

글·사진=이도경 기자 yido@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