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의 대일(對日) 외교 노선은 취임 초부터 ‘원칙주의’였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정권의 역사 왜곡이 계속되는 한 한·일 정상회담 같은 양국 간 중요한 외교 채널을 가동하지 않겠다는 것이었다. 박 대통령의 이런 방침은 중국 시진핑(習近平) 정부로부터 환영받았고 한·중이 역대 최고 수준의 ‘공조 관계’를 이루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원칙주의 대일 외교는 최근 들어 도전받는 양상이다. 미·일의 밀착과 주요 2개국(G2) 미·중의 대결 와중에 우리 정부도 무조건 원칙에만 집착할 수 없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정치·외교 분야에 국한됐던 한·일 간 냉랭한 기조가 민간 영역으로 번지는 것도 ‘빨간 신호’라 할 수 있다.

◇‘원칙’ 외교에서 ‘현명한’ 외교로 진화 필요=양국 관계가 얼어붙은 데는 아베 일본 총리의 ‘브레이크 없는’ 우경화 행보에 기인했다. 박 대통령 집권 초기 대일 외교 원칙이 표방되자 긍정적으로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적지 않았다. ‘조용한’ 한·일 관계만 원했던 과거에 비해 “일본에 대해서도 이젠 원칙과 역사에 대한 책임을 얘기해야 한다”는 기조에 동의하는 국민도 많았다.

하지만 정부의 대일 외교 방향이 원칙적인 면에서 동의하지만 현명한 관리에도 공을 들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외교부 전 동북아국장을 지낸 조세영 동서대 특임교수는 9일 “한·일 양국이 역사 문제로 맞부딪쳐 정상회담이 어려울 순 있지만 외교장관 이하의 외교 채널은 경직될 필요가 없다”며 “박근혜정부 출범 후 서울, 도쿄에서 한·일 외교장관회담이 정식으로 한 번도 열리지 못한 점은 매우 아쉽다”고 진단했다. 부단히 다양한 외교 채널을 가동시켜 실리는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조 교수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근래 한·중·일이 3국 외교장관회담 개최에 노력하는 모습은 다행스러운 행보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익명을 원한 국책연구소 관계자도 “일본군 위안부 문제만 해도 일본 측이 대안을 가져와야 우리가 입장을 바꾸겠다는 방식의 외교로는 문제 해결이 요원하다”며 “한·일 관계 정상화가 국익에 도움이 된다는 전제 아래 정부 역시 다양한 수단을 강구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사안별 분리 대응 로드맵도 방법=내년은 한·일 수교 50주년을 맞는 해다. 박근혜정부의 대외 정책인 한반도 신뢰프로세스, 동북아 평화협력구상 등을 실현하는 데에는 일본의 협조가 필수적이다. 때문에 군 위안부 등 과거사 문제, 독도 등 영유권 문제 등 민감한 사안과 양국 간 경제적·외교적 현안을 분리해 대응하는 로드맵을 짜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예컨대 군 위안부 등 역사 왜곡 행태의 경우 미국 중국 등 국제사회가 동조하는 만큼 외교력을 단기적으로 집중시켜 일본과의 타협을 이끌어낼 필요가 있다. 또 독도 영유권 및 교과서 문제는 정부 차원보다 민간이 주도해 한·일 공동 교과서를 배포하는 등 장기적 대응이 바람직하다는 지적이다.

진창수 세종연구소 일본연구센터장은 “가토 다쓰야 산케이신문 전 지국장 소송이나 가수 이승철씨의 일본 입국 거부 사례는 양국 관계가 감정적으로 치닫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외교장관회담이나 국장급 협의 등 다양한 외교 채널이 부지런히 가동돼야 양국 국민들 사이의 혐한·혐일 기류가 생기지 않을 것이고 양국 관계도 아예 멈춰서버리는 일을 방지할 수 있다”고 했다.

백민정 기자 minj@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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