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 通하게 하라] “정치논리 걷어내고 분야별 우선순위 따라 법·제도 구축”… 전문가 좌담회 기사의 사진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왼쪽부터)이 9일 서울 여의도 국민일보 대회의실에서 '원칙이 바로서는 사회'를 주제로 좌담회를 갖고 있다. 곽경근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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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년은 다사다난했다. ‘사상 초유’라는 꼬리표를 단 참담한 사건이 끊임없이 터졌다. 세월호 참사 수습 과정에서 정부는 시종일관 미숙한 대응으로 국민의 신뢰를 잃었다. ‘윤모 일병 구타사망’ 사건과 ‘통영함 비리’ 등 군 내부 문제도 수면 위로 불거졌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사회 안전망의 부재를 여실히 보여줬다. 판교 환풍구 추락 사고와 전남 장성 요양병원 화재 등 안전사고도 잇따랐다. 모두 지켜야 할 원칙을 어겨 벌어진 일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무너진 원칙을 어떻게 다시 세워야 할까. 어떤 방법으로 원칙 있는 사회를 만들 수 있을까.

홍헌호 시민경제사회연구소장(사회), 양욱 한국국방안보포럼 연구위원(국방),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복지), 이재열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안전)는 9일 국민일보 본사에서 대담을 갖고 ‘기본’이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정치 논리를 걷어내고 분야별로 무엇이 중요한지 우선순위를 매기는 한편 책임 있는 법과 제도를 구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불공정한 법·제도 손보는 게 첫 단추

△홍헌호 소장=원칙 있는 사회는 권리에 상응하는 의무를 부과한다.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세월호 참사는 배를 책임져야 하는 선장이 소임을 다하지 못하면서 발생했다. 수습 과정에서 정부는 잘못을 숨기기 바빴다. 여야 정치권도 세월호를 이용한 측면이 강하다. 각자 해야 할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않은 탓이다.

길거리에서 음란행위를 한 지검장에게 기소유예 처분이 내려지는 지금 상황은 의무는 사라지고 권리만 남은 지 오래다. 부자나 사회지도층은 잘못을 저질러도 솜방망이 처벌에 그치니 국민 불신도 심해질 수밖에 없다. 불공정한 법과 제도를 손보는 게 원칙을 세우는 첫 단추다. ‘법’의 위신이 바로 서야 모두가 수긍하는 공정한 사회가 만들어진다. 인사 돌려막기나 전관예우를 확실히 차단하고 ‘김영란법’을 빨리 통과시켜 책임을 다하는 사회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정책을 입안할 때 먼저 사회적 합의를 거치는 것도 필수다. 공무원연금 개혁이나 정규직 개편을 통한 노동 유연화는 너무 갑작스럽다. 절차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시대가 됐다. 모든 의견을 다 반영할 순 없겠지만 최대한 귀를 열고 이해관계가 교차하는 부분은 다시 논의하는 절차를 거쳐야 한다. 책임과 합의가 바로 설 때 원칙 있는 사회가 가능하다.



동료애 회복, 일벌백계 필요

△양욱 위원=윤 일병 사건은 동료애가 사라진 군대의 현주소를 여실히 보여준다. 적과 싸우기 위한 군대가 제대로 기능했다면 전우를 때리고 괴롭히는 일 자체가 없었을 거다. 전우애로 대표되는 군대의 통합성이 사라진 게 가장 큰 문제다. 서열 위주의 입시문화가 병사를 A급과 B급으로 나누는 군대 특유의 질서를 만들어냈다. 결국 ‘관용’이 필요하다. 군 생활을 조금 못해도 전장에 나가 생사고락을 함께할 동료라 생각하는 분위기가 절실하다.

통영함 사건을 비롯한 방위사업 비리는 안보를 책임질 국가의 무기를 돈벌이로 이용했다는 점에서 용서할 수 없는 범죄다. 군 차원에서 비리를 감시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건 전문성이 떨어진다는 이야기다. 이는 온정주의 탓이 크다. 나라를 위해 열심히 일하는 군인에겐 연금보장 혜택을 철저히 주고, 비리를 저지른 사람은 엄벌해야 한다. 제 식구 감싸기가 팽배한 분위기에선 곪을 수밖에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민들에게 철저한 쇄신 의지를 보여야 한다. 동료애 회복과 일벌백계를 통한 전문성 강화, 우리 군대가 다시 세워야 할 2가지 원칙이다.



보편적-선별적 복지 구분 중요치 않아

△김진수 교수=기본적으로 복지는 세 가지 원칙을 지켜야 한다. 소외계층은 우선적으로 배려해야 한다. 한 계층에 대한 복지가 다른 계층엔 반(反)복지가 될 수 있다는 점도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1차 안전망(건강보험 등 4대 사회보험)과 2차 안전망(기초생활보장법 등 공공부조), 3차 안전망(긴급구호 등) 사이의 간극을 줄여야 한다.

무상보육과 누리과정 논란은 원칙을 어기면 어떻게 되는지 보여주는 사례다. 노인 동절기 난방비를 줄여 정부가 밀어붙이는 복지정책에 갖다 쓰는 지방자치단체가 많다. 기초연금도 노인 복지를 위해 필요한 정책이지만 자원이 한정되다 보니 반대급부로 차상위계층 생활보장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어떤 계층이 가장 살기 어려운지 먼저 파악하는 절차가 미비했기 때문이다. 복지 예산을 무작정 늘리기보다 어디에 어떻게 쓸 것인지 따져보는 과정이 필요하다.

보편적 복지냐 선별적 복지냐가 중요한 게 아니다. 공공부조는 당연히 선별적으로 지급해야 하고, 건강보험이나 국민연금은 보편적 성격을 갖는 게 맞다. 무너진 원칙을 세우려면 복지 전반에 대한 점검이 시급하다. 양이 아니라 질을 보자는 것이다. 반짝 정책을 만들 게 아니라 장기 관점에서 필요한 이에게 적절한 지원이 갈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해야 한다.



정부 규제개혁 추세 우려스러워

△이재열 교수=올해 안전 문제가 주목받게 됐지만 사실 크고 작은 안전사고는 매년 있었다. 1990년대 서해훼리호 같은 사고가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 사회에서 ‘안전’이 천대받고 있기 때문이다. 사회 전반의 ‘빨리빨리’ 문화 탓이 크다. 1980년대 산업화 당시 짧은 시간에 목표를 달성해 비용을 줄이는 성과위주의 성장이 안전을 하찮은 것으로 치부해 버렸다. 세월호도 마찬가지다. 위험을 관용하는 분위기, 안전 투자를 생략하는 관습, 규칙을 무력화시킨 부패가 동시에 드러난 참사다.

안전은 규정을 지키는 게 곧 원칙이다. 시간과 비용이 들더라도 미래의 참사를 막기 위한 투자라 여기는 분위기가 필요하다. 하루아침에 되는 일이 아니고 장기적 관점으로 봐야 한다. 드러나지 않아도 꾸준히 관심 가져야 할 분야가 안전이다.

최근 정부의 규제개혁 추세가 우려스럽다. 안전은 규제가 필수다. 마구잡이 개발과 발전은 1980년대 산업화와 비슷하게 안전이라는 가치를 소홀히 할 수 있다. 안전과 관련해선 규제를 오히려 더 심하게 해야 한다.

안전을 습관화하는 것이 규정·원칙을 지키는 첫걸음이다. 해경은 불법 어업 단속 위주로 운영되다 갑자기 이런 사고가 터지니까 갈팡질팡했다. 습관화되지 않은 것이다. 무엇보다 정부가 정책 입안에 있어서 안전을 놓지 않는 모습이 필요하다. 사고 없는 안전한 국가는 바로 여기서 비롯된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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