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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손수호] ‘청년취업’ 함부로 말하지 말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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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계에 있을 때 대학교수들이 취업 이야기를 하면 배부른 하소연이나 엄살로 치부했다. 교육이 좋으면 직장이 따를 것이고, 교수들의 취업지도는 교육 서비스의 연장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 가서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학생 취업에 쏟는 대학의 노력은 상상을 넘을 정도로 딱하고 또한 눈물겹다. 마른 걸레 짜기도 이런 데가 없다.

학생들이 좋은 직장에 취직해 성공하기를 바라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그런데도 대학이 팔을 걷어붙이고 취업에 역량을 집중하는 것은 정부 평가에서 좋은 점수를 받아 지원금을 따내기 위해서다. 등록금 동결시대에서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다. 취업률 점수가 50점 만점에 13점이나 차지하니 최대 승부처가 된 것이다.

“평가에 취업률이 들어가는 게 뭐 어때서?” “취업률 낮은 대학에 대해 재정을 제한할 수 있는 것 아니냐?”는 질문 자체가 폭력이다. 연탄재 차듯 젊은이들의 삶을 함부로 재단하지 말라는 뜻이다. 오히려 젊은이에게 4대 보험이 되는 취업이 인생의 목적지로 제시하는 것은 옳은가, 국가가 무슨 자격으로 그런 삶을 권장하고 조장하는가를 물어야 한다.

‘4대 보험’ 안 되는 삶은 열등한가

그렇다면 국가는 어디까지 개입하는 게 옳을까. 솔직하게 말하면 취업은 기본적으로 개인의 선택이다. 가족이나 학교 등 주변에서는 도울 뿐이다. 기업이라는 조직의 구성원으로 들어갈 수도, 창업할 수도, 만화나 그림을 그려 먹고살 수도, 심지어 노숙을 할 수도 있다. 어떤 밥벌이를 선택한다는 것은 개별적이고 자율의 영역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도 젊은이들에게 사장-전무-부장-차장-과장-대리-사원으로 수직 계열화되는 원인터내셔널의 삶을 모범인 것처럼 오도해서는 안 된다.

4대 보험을 취업의 기준으로 삼는 것도 맹랑하다. 4대 보험을 적용할 정도면 어느 정도 규모가 있거나 틀이 잡힌 직장이라는 자료가 될 뿐이지, 4대 보험이 없는 곳에서 일하는 사람은 열등한 취직이라고 나눠서는 안 된다. 그것은 세상의 중심부에서 밀려나 중간지대 혹은 바닥을 형성하고 있는 수많은 삶에 대한 모욕이다. 그들이 있기에 국가와 사회라는 유기체가 살아 움직이고, 1% 상층부의 삶도 보장된다.

지원금을 빌미로 평가 작업을 주도하는 정부 행태는 반교육적이다. 가장 치사한 것이 평가 점수가 낮은 대학에 학자금 대출 자격을 제한하는 것이다. 형편이 어려워 돈을 빌리는데 소속 학교 등급에 따라 대출 자격이 달라지는 것은 젊음에게 상처를 주는 행위다. 이 논리를 확대하면 자식을 취직시키지 못한 부모에게는 은행 융자도 하지 말라는 것이다. 취업률이 그토록 중요하다면 일자리를 만들지 못한 정부 책임도 크다.

취업률, 평가하되 적용하지 말아야

취업률을 산정하는 기준은 공평한가. 방송계에서 입사하기 어렵다고 소문난 KBS 개그맨 시험에 합격해도 취업률에 포함되지 않는다. 무늬만 공채일 뿐 사원 신분을 부여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석가공 등을 배워 작은 가게에서 일해도 미취업이다. 청년들이 야심 차게 창업을 해도 일정액의 매출을 내야 취업률에 잡힌다. 일찍 결혼해서 주부가 된 여학생은 모교에 죄를 짓는 꼴이다.

최근 정부가 창조경제의 아이콘으로 꼽은 만화가 윤태호의 인생 역정을 보라. 교육 당국의 가치를 그의 젊은 시절에 적용하면 성공의 사다리에서 미끄러진 낙오자가 된다. 그는 지난주 코엑스에서 열린 창조경제 박람회 특별좌담 코너에 초대받아 이렇게 말했다. “만화는 가내수공업처럼 소박해야 하죠. 책상이 곧 제 세계예요. 그 안에서 모든 지구인이 공감할 그런 보편성을 그려낼 겁니다.” 윤태호의 삶을 교육부가 보면 실패이고, 미래창조과학부가 보면 성공인가. 국가기관은 겸손하게 보편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가 폭넓은 인기를 얻는 것은 비정규직의 불평등한 조건과 그들의 불안한 미래에 대한 공감과 연민 때문이리라. 삶은 모두 소중하므로 함부로 줄을 세우려 들지 말라. 누구나 자기만의 바둑이 있는 법이니까. 취업률, 중요하다. 그러나 엄격히 평가하되 아무데나 적용하지 말라.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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