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 通하게 하라] 세월호는 무원칙 결정판… ‘매뉴얼 사회’ 절실 기사의 사진
돈 앞에서 원칙은 없었다

청해진해운은 2012년 10월 일본의 중고 선박을 들여와 이듬해 운행을 시작했다. 대형 선박의 평균 수명은 20∼25년이다. 1994년 건조된 세월호는 수명이 얼마 남지 않은 노후 선박이었다. 청해진해운은 화물을 더 많이 싣기 위해 낡은 선박에 증축 공사를 했다. 안전하게 항해하려면 화물량을 1448t 줄이고 배의 균형을 잡아주는 평형수를 1324t 늘려야 했다. 하지만 증축 과정에서 배 오른쪽에 달려 있던 50t 규모의 중장비인 사이드 램프 시설이 뜯어져 나갔다. 배의 무게를 줄이기 위한 ‘꼼수’였다.

국민의 안전보다 경제 효율을 우선순위에 뒀던 정부의 안전 불감증도 참사의 원인이다. 무조건 규제 개혁을 외치면서 달리기만 했을 뿐 뒤를 돌아보지 않은 것이다. 2008년 이명박정부는 해운법 시행규칙을 개정하면서 기존 20년이던 선박 수명 기준을 25년까지 늘렸다. 이듬해에는 이를 30년까지 연장했다. 2012년에는 규칙을 위반한 선원에 대한 징계 수위도 대폭 낮췄다.

무거운 화물을 많이 싣는 대형 선박은 배가 한쪽으로 쏠리는 것을 막기 위해 화물을 단단하게 고정하는 게 원칙이지만 이마저도 지키지 않았다. 부실한 결박 때문에 세월호는 맹골수도의 거친 물살을 버티지 못하고 기울었다.

돈 앞에서는 가장 기본적인 원칙조차 무시됐다. 침몰 당시 세월호에는 기준보다 훨씬 많은 화물이 실려 있었다. 직원들은 “중량을 초과해 싣는 건 관행”이라고 했다. “이렇게 막무가내로 짐을 실어도 되나 염려됐다”는 관계자 증언까지 나왔다. 모두가 사고가 일어날 가능성을 알면서도 “별일 있겠느냐”는 안일한 생각으로 넘어갔고, 결국 최악의 상황에 이르렀다.



‘골든타임’ 놓친 우왕좌왕 수습

사고 당일인 4월 16일, “배가 침몰했다”는 속보에 이어진 두 번째 속보는 “전원 구조”였다. 하지만 이는 곧 정부의 미숙한 보고 체계 때문에 빚어진 오보로 판명 났다. 지난 7월 열린 국정감사에서 김석균 전 해양경찰청장은 “경찰청에서 상황 보고를 맡은 직원이 사실 확인 없이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에 나간 담당과장에게 전화한 게 오류로 이어졌다”고 해명했다. 항구의 간이 상황판에 적혀 있던 것을 당시 경찰 정보관이 촬영해 해경 정보관에게 전했고, 이는 곧 서해경찰청을 거쳐 경찰청까지 올라왔다. 수많은 생명이 차가운 바닷속에 잠겨 있는 일촉즉발의 상황에서 벌어진 이 해프닝은 사고 수습을 더욱 더디게 만들었다.

청해진해운은 배에 몇 명이 탔는지, 탄 사람이 누군지도 파악하지 못했다. 검표 절차가 있었지만 직원들은 표 없이 급히 배에 오르는 사람들을 막지 않았다. 검표 과정에서 신원 확인조차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당초 477명이 탑승했고 369명이 구조됐다던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발표는 이날 오후 3시쯤 ‘477명 탑승에 180명 구조’로 바뀌었다. 이어 중대본은 2시간도 채 안 돼 ‘459명 탑승에 164명 구조’라고 번복했다. 오후 9시에는 ‘462명 탑승에 174명 구조’로 정정했다. 이후에도 전체 탑승객 숫자는 475명으로 바뀌었다가 나흘이 지나서야 476명으로 확정됐다.

오전 8시48분쯤 세월호가 침몰하기 직전, 참사의 가능성을 인지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가 있었지만 관제 담당자들의 무사안일로 금쪽같은 시간은 허공으로 날아갔다. 해난사고 상황 파악과 전파임무를 맡고 있던 진도해상교통센터(VTS)는 오전 9시6분쯤 목포해경의 통보를 받기 전까지 사고 발생 사실조차 모르고 있었다. 뒤늦게 수습에 들어갔지만 사상자를 최소화할 수 있는 ‘골든타임’은 이미 지났다. 진도VTS가 본연의 임무인 모니터링만 제대로 했다면 세월호가 급격한 방향 전환 후 표류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리 포착할 수 있었다. 게다가 진도 VTS는 관제사 2명이 근무해야 하는 원칙을 어기고 1명만 자리를 지켰다. 이 사실을 덮기 위해 사고 이후 내부 CCTV를 철거하고 관련 영상을 지우기까지 했다.



지켜지지 않은 구조 매뉴얼

사고 직후 해경의 부실한 대응은 ‘해경 해체’라는 최악의 결과까지 불러왔다. 해경의 ‘해상 수색구조 매뉴얼’에는 해상 사고 발생 시 출동 대원과 현장 지휘관이 어떻게 구조 활동을 벌여야 하는지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매뉴얼에 따르면 사고 직후에는 ‘신속한 인명구조를 위해 선박의 설계도면을 입수해 현장 대응팀에 전달하고 도면이 없는 경우에는 사고 선박 구조에 대해 잘 아는 사람을 현장에 급파’하는 게 원칙이다.

그러나 해경은 가장 먼저 조타실에서 이준석(69) 선장 등 승무원 15명을 구조한 뒤에 이들을 구조 활동에 참여시키지 않고 육상으로 보냈다. 선박 구조, 승객 상황 등을 가장 잘 아는 승무원들을 활용조차 하지 않았다. 해경은 오후 5시40분쯤에야 이 선장을 지휘함에 태워 선박 구조를 설명하도록 했다. 침몰 초기 선박 곳곳에 흩어져 있던 승객들을 구조할 결정적인 순간을 놓친 것이다.

해경이 매뉴얼에 있는 ‘전복 사고 발생 시 체크리스트’ 항목에 따라 점검만 했어도 수많은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다는 지적도 있다. 이 체크리스트에는 승객 또는 선원의 퇴선 여부 파악, 구명조끼 착용 여부, 당시 상황을 확인해 보고하라고 명시돼 있다. 사고 직후 매뉴얼대로 퇴선 여부를 조사해 승객 300여명이 아직 배에 갇혀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더라면 해경의 대응이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고심해서 만든 원칙들은 정작 가장 필요한 상황에서 쓰이지 못했다. 결국 해경의 첫 경비정이 도착하고 47분이 지나도록 선체 내부에 있던 승객들은 아무런 도움도 받지 못한 채 차가운 바닷속에서 목숨을 잃었다.

정부경 황인호 기자 vic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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