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기철 칼럼] 군사정권 때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기사의 사진
박근혜 대통령, 정의화 국회의장, 양승태 대법원장, 박한철 헌법재판소장, 정홍원 국무총리. 2014년 12월 현재 대한민국 국가 의전서열 상위 1∼5위다. 공통점이 있다. 출신지가 대구, 부산, 부산, 부산, 경남 하동으로 모두 영남이라는 사실. 우연의 일치일 수도 있겠지만 국가 수뇌부가 이 정도로 지역 편중을 보인 적은 일찍이 없었다. 사실 국회의장은 올해 박 대통령의 뜻과 상관없이 선출됐으며, 대법원장은 이명박정부 때 선임됐다.

문제는 국무총리다. 우리 헌정사에서 대통령이 정권 출범 때 첫 총리로 자신과 같은 지역 출신을 임명한 예는 단 한 번도 없다. 우리나라에서 총리는 실권이 제한적이지만 행정부 2인자라는 상징성 때문에 국민통합을 이유로 대통령과 총리의 출신 지역을 엇갈리게 했다. 영남 군사정권도 예외가 아니었다. 박정희정부 때 5명, 전두환정부 때 6명 총리 중 영남 출신은 1명도 없다. 노태우정부 때 5명 중에도 영남 출신은 1명뿐이었다. 그 후 영남이 연고인 김영삼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은 첫 총리에 호남 출신을 기용했다. 사실 지금의 영남 대통령-영남 총리는 지역성에 매몰돼 있는 우리 정치 현실을 감안하면 아주 위험한 구도다. 전체 행정부 인사에서 지역 편중을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크기 때문이다.

박근혜정부가 출범한 지 1년10개월 된 현 시점 대부분의 권력기관장은 영남 출신이 장악하고 있다. 이것을 우연이라 할 수 있겠는가. 황찬현 감사원장(경남 마산), 김진태 검찰총장(경남 사천), 강신명 경찰청장(경남 합천), 임환수 국세청장(경북 의성), 정재찬 공정거래위원장 내정자(경북 문경) 등. 이병기 국정원장만 영남이 아닌 서울 출신이다. 청와대의 정 위원장 내정 인사 발표(11월18일) 직후 새정치민주연합 박지원 비대위원이 5대 사정기관장의 영남 싹쓸이 인사를 지적했으나 관심을 끌지 못했다. 다들 쇠귀에 경 읽기란 생각을 해서일 것이다.

역대 정부에서 우리는 주요 기관장의 특정 지역 편중에 따른 부작용을 똑똑히 보았다. 박 대통령도 그것을 알기에 대선후보 시절 국민 대통합을 위한 지역 탕평인사를 공약했을 것이다. 박 대통령은 당시 전국을 돌며 “대통령이 되면 대탕평 인사를 펼침으로써 100%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현재로선 100% 공약(空約)인 상태다.

박 대통령이 국민들로부터 가장 나쁜 평가를 받는 분야는 인사 아닐까 싶다. 후임 총리감을 찾지 못해 돌고 돌아 경질이 기정사실이던 정 총리를 유임시켰으니 무슨 말을 더 하겠는가. 지난 8월 청와대에 인사수석실을 신설했지만 나아졌다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는다. 지난달 인사혁신처를 신설해 삼성그룹 인사 전문가를 처장에 기용했지만 고위직 인사에 관해 대통령한테 직언할 가능성은 높아 보이지 않는다. 지역갈등을 비롯한 각종 국민갈등 해소 임무를 맡은 한광옥 국민대통합위원장도 인사에 관한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짐작된다.

이럴진대 영남 편중 인사는 박 대통령 스스로 비상한 관심을 기울이지 않으면 개선하기 어렵다. 현재로서는 대통령이 작금의 영남 편중에 대해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인사위원장인 김기춘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적절한 조언을 받기 어렵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의 22년 전 나쁜 전력이 그런 느낌을 갖게 함을 어쩌랴. 김 실장은 제14대 대선을 1주일 남겨둔 1992년 12월 11일 부산 초원복집에서 지역 기관장들과 만나 김영삼 후보 당선을 위해 지역감정을 부추기는 발언을 했다. “부산 경남 사람들 이번에 김대중이 정주영이 어쩌냐 하면 영도다리 빠져죽자.”

박 대통령은 지금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파문으로 위기에 몰려 있다. 역대 대통령들은 외부로부터 공격을 받을 경우 자기사람을 더 가까이 챙기는 경향을 보였다. 작금의 영남 편중이 개선은커녕 더 심화될 수도 있다는 얘기다. 그것이 걱정이다.

성기철 논설위원 kcsung@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