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교회가 희망이다] 저곳이 바로 북녘 땅… 기도로 분단의 아픔 치유한다

한반도 평화 기도의 현장, 철원 국경선평화학교를 가다

[한국교회가 희망이다] 저곳이 바로 북녘 땅… 기도로 분단의 아픔 치유한다 기사의 사진
한국기독교장로회 충북노회 평화통일위원회와 여신도회 충북연합회 소속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지난달 27일 강원도 철원 소이산 정상에서 한반도의 평화와 통일을 위해 기도하고 있다. 철원=강민석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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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27일 강원도 철원 소이산 등산로. 충북 청주에서 올라온 추경례(73·여) 전도사의 입에 하얀 김이 피어올랐다. 추 전도사보다 몇 발 앞서 산을 오르던 윤관훈(76) 장로는 살짝 굽은 등을 두드리며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이들은 이날 소이산과 철원 국경선평화학교에서 한국기독교장로회(기장) 충북노회 평화통일위원회와 여신도회 충북연합회 공동 주관으로 열린 ‘남북 화해통일을 위한 평화통일 기행 및 기도회’에 참가하기 위해 소이산을 찾았다. 소이산은 2011년 12월에야 일반인의 발길을 허락한 ‘군사작전지역’. 정상에 올라서면 북한이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로 다가오는 산이다.

한국전쟁을 몸으로 겪은 추 전도사, 윤 장로와 소이산의 붉은 흙길을 걸으며 1950년 6월 25일의 기억을 공유했다. 전쟁의 기억은 노구(老軀)를 이끌고 산을 오르는 고통과 맞물려 더 깊은 숨을 내뱉게 했다.



전쟁의 기억

가족이 흩어지는 아픔은 가슴에서 지워지지 않았다. 추 전도사도 그랬다.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온 가족은 경북 영천에서 뿔뿔이 찢어졌다. 당시 그의 나이는 겨우 8세. 60년도 더 지나 기억이 흐릿해질 때가 됐지만 추 전도사는 또렷이 회상했다.

“전쟁이 나고 이틀 후였어요. 오빠들은 그날 전부 학도병으로 불려갔죠. 그리고 얼마 후 어머니랑 저는 산으로 도망쳤어요. 낮에는 산에서 꼼짝도 못했죠. 배가 고파서 ‘밥을 좀 달라’고 울면 같이 도망 온 사람들이 ‘너 줄게 어디 있느냐’고 욕하고 화냈어요. 밤에 간신히 밥을 얻으면 숟가락도 없이 손으로 먹기 바빴죠. 아직도 그때가 두려워요.”(추 전도사)

그날은 죽음의 날이기도 했다. 먹을 것을 구하러 산에서 내려올 때마다 시체가 심심치 않게 보였다. 코를 찌르는 피 냄새는 곁에서 떠나지 않았다. 피의 상처는 추 전도사의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다행히 목숨은 건졌지만 전쟁 반년 만에 돌아온 큰오빠는 오른손이 없었다. 북한군이 쏜 총에 입은 상처만 남아 있었다.

윤 장로의 상황도 비슷했다. 당시 12세로 충북 보은에 살던 윤 장로는 가족 중에 다친 사람이 없다는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그의 기억에 북한군은 집에 있는 모든 물건을 훔친 악질 중의 악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북한은 꼴도 보기 싫었어요. 북한 주민이 무서운 건 아니지만 북한 정권 자체가 말도 안 되잖아요. 같은 민족을 죽이기도 하고요. 그야말로 악질이죠.”(윤 장로)

전쟁을 경험한 이들에게 북한은 여전히 두려운 존재다. 전쟁의 기억이 깊은 상흔으로 남아 있어서다. 추 전도사는 여전히 작은 소문에도 불안감을 드러냈다.

“얼마 전에 텔레비전을 보는데 북한이 땅굴을 파고 청와대까지 온다는 얘기를 들었어요. 북한은 더 독한 일도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때로는 화학약품 같은 걸로 우리를 공격할 거라는 생각도 들어요.”(추 전도사)



평화를 위한 기도

일행보다 10여분 늦은 30여분 만에 소이산 정상에 오른 두 사람은 굽은 허리를 곧게 펴고 북한을 바라봤다. 두 손을 하늘로 올리고 하나님께 이 땅의 평화를 위해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다.

“정말 마음이 무거웠는데, 도착해서 보니까 또 마음이 다르네요. 틀림없이 평화가 오겠다. 이들과 함께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겠다. 그런 생각이 들어요. 열심히 기도한다면 하나님께서 이뤄주시지 않을까요.”(추 전도사)

윤 장로도 마찬가지였다. 10여년 전 기장 총회 임원으로 북한 봉수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던 그는 악화된 남북관계를 회복할 유일한 해답이 기도에 있다고 봤다. 전심으로 북한을 위해 기도한다면 그것이 평화의 첫걸음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은 능치 못할 일이 없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시면 언제 어떻게 통일을 이뤄주실지 몰라요. 기도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움직이게 하는 힘입니다.”(윤 장로)

소이산에서 내려오며 두 사람은 이후에도 기회 있을 때마다 철원 소이산을 방문해 기도하겠다고 다짐했다. 평화를 향한 기도만큼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겠다는 각오였다.

“사실 누가 태워주지 않으면 여기까지 잘 올 수 없어요. 그래도 혼자서라도 기도하러 자주 오고 싶어요. 그렇게 노력하면 언젠가 저들과 함께 기도하는 날이 올 것 같아요.”(추 전도사)

“편하게 살면서 통일을 잊고 살았어요. 북한을 원수로만 생각하기도 했고요. 이런 곳을 찾는 건 평화와 통일을 위한 제 마지막 몸부림입니다. 나이를 먹었어도 기도는 해야 하니까요.”(윤 장로)

철원=진삼열 기자 samue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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