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이 通하게 하라] 民을 위하면 民이 위한다… ‘이주영式 소통’ 기사의 사진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이 세월호범정부사고대책본부가 해체된 지난달 18일 오후 전남 진도군 팽목항에서 자원봉사자 등과 포옹하며 작별인사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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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호 이해와 소통, 그것에서 나오는 신뢰가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느꼈다.”

무려 15년을 끌어온 신한울원전 협상을 마무리한 뒤 조석 한국수력원자력 사장이 지난달 23일 한 말이다. 소통 없이는 어떤 것도 할 수 없다. 횡단보도 하나를 옮기려고 해도 소통 없인 안 된다. 그러나 소통에 관한한 대한민국은 실패한 국가다. 현재 대한민국이 직면하고 있는 발전 지체, 성장 정체의 한 원인이 소통 부족 때문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통일 역시 ‘불통 대한민국’으론 이룰 수 없는 꿈이다.





세월호 정국 속 이주영 장관은 어떻게 통했나

세월호 참사와 그 이후 이어진 정부 불신, 정치 실종은 대한민국이라는 국가의 소통 능력이 얼마나 절망적인 지경에 와 있는지 보여줬다. 한 해가 다 지나가도록 대한민국은 세월호 참사가 발생한 4월 16일에서 빠져나오지 못했다. 평범한 직장인들은 물론 주부들이나 10대 청소년들조차 “세월호 사건 이후 정부를 믿지 못하게 됐다”고 말한다.

이주영 해양수산부 장관은 꽉 막힌 세월호 정국 속에서 소통에 성공한 거의 유일한 사례로 꼽힌다. 이강원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 소장은 9일 “이 장관은 정부 인사 중 유일하게 세월호 유가족들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는 사람이 아닌가 싶다”면서 “문제 해결의 단초가 신뢰인데, 이 장관은 유가족으로부터 신뢰를 얻어내는 데 성공했다”고 평가했다.

이 장관은 참사 직후 7개월간 진도 팽목항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유가족들과 만났다. 거기서 신뢰가 싹텄고 대화가 시작됐다. 지난달 11일 실종자 가족들은 정부에 수색 중단을 요청했다. 힘든 결정을 내린 데엔 이 장관에 대한 믿음이 있었다는 분석이다.

이 장관은 교체 1순위였지만 또다시 유임됐다. 그의 유임을 가장 기뻐한 것도 유가족이었다. 한 유가족은 지난달 18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유가족 회의를 통해 이 장관이 남게 해달라고 (정부 측에) 요청했다”며 “이 장관은 끝까지 팽목항에 남아 우리 얘기를 들어줬다”고 말했다. 또 다른 유가족 역시 “우리에겐 남은 문제가 많다. 아직 정부에는 신뢰가 생기지 않지만 이 장관은 믿을 수 있다”고 했다.

이 소장은 “불편한 당사자들은 안 만나려고 하고, 대화로 풀려니까 시간이 부족하고, 그러니까 자꾸 무력 충돌이나 법으로 가게 된다”면서 “문제를 푸는 길은 만나서 대화하는 수밖에 없는데 그걸 외면하고 포기하니까 성공 사례를 못 만들어내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횡단보도 하나를 옮기려 해도 소통 없인 안 된다

동네 앞의 횡단보도 하나를 옮기는데도 수년이 걸린다. 공무원들 얘기를 들어보면 횡단보도 갈등이 의외로 많다. 옮겨달라는 쪽이 있으면, 옮기면 안 된다는 쪽이 꼭 있다. 서울 관악구에 있는 봉림교 횡단보도 이전도 2년이나 끌어오던 문제였다. 담당 공무원이 한 달 반을 쫓아다니며 주민들과 대화한 끝에 이전 합의가 이뤄졌다.

홍수정 서울시 갈등조정담당관은 “현장에 가서 당사자들의 얘기를 잘 들어주는 것, 그게 갈등 해결의 출발점”이라고 말했다. 당사자들의 얘기를 듣는 것이 갈등 해결의 첫 번째 스텝이다. 그러나 현실의 갈등 현장에선 이 첫 스텝조차 무시되는 경우가 많다.

베스트셀러를 다수 출간한 유명 출판사 쌤앤파커스는 사내에서 불거진 남자 간부의 수습 여사원 성추행 논란을 방치하다가 창업자인 대표가 회사를 매각하고 물러나는 지경까지 갔다. 성추행 논란은 두 달 넘게 지속되면서 이 출판사와 대표에 비난 여론이 집중됐다. 그러나 출판사 측은 불거진 의혹에 대해 적극 해명하지 않았고, 성추행을 당했다고 주장하는 여사원과 대화하려는 노력도 보여주지 않았다. 결국 대표는 회사 매각과 사퇴로 사태를 마무리할 수밖에 없었다.

지난달 논란 속에서 시행된 ‘개정 도서정가제’ 역시 소통 실패 사례로 복기해볼 만하다.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중소서점, 온라인서점, 출판사 등 업계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맞부딪칠 수밖에 없는 도서정가제 시행령을 만들면서 공청회 한 번 열지 않았다. 업계의 요구가 빗발쳤지만 관련 부처 협의의 어려움, 규제개혁위원회나 법제처의 반대 등을 핑계로 무시했다. 시행령은 곳곳에 구멍이 뚫린 누더기가 됐고, 시행과 동시에 재개정 요구에 직면했다.

홍 담당관은 “모든 이해당사자가 참여하는 대화 테이블을 만드는 게 가장 중요하다”면서 “안정적인 대화 테이블을 만든다면 문제 해결의 기회는 반드시 생긴다”고 말했다.



통일, ‘통’해야 가능하다

분단은 불통의 가장 명확한 상징으로 남아 있다. 세계 유일의 분단국가라는 현실은 한국의 소통 능력, 갈등해결 능력이 세계에서 가장 낮은 수준이라는 걸 말하기도 한다.

박근혜 대통령은 올 초 ‘통일대박’을 거론하며 통일 논의에 불을 지폈다. 지난달 국회 예산정책처가 2015년 한반도가 통일된다는 전제로 2016∼2060년 통일의 경제적 효과를 분석한 결과 이 기간 발생할 경제적 편익은 1경4451조원으로 예상 통일비용(4657조원)의 3.1배에 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60년 통일한국의 경제 규모(GDP)는 5조5000억 달러로 세계 9위, 1인당 GDP는 7만9000달러로 세계 7위에 오를 것으로 분석됐다.

통일을 세계적인 저성장 국면 속에서 한국에 주어진 최대의 기회로 바라보는 시각도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통일대박’이 나온 지 1년이 지나가지만 남북은 한 발짝도 접근을 이루지 못 했다. 금강산 관광조차 재개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통일이야말로 상호 이해와 소통, 신뢰 없인 안 되는 일이다.

독일 통일 과정을 들여다보면 이 점은 보다 분명해진다. 독일은 우리보다 더 어려운 조건에서 45년 만에 자력으로 통일을 이뤄냈다. 그 바탕에는 길고 질긴 대화의 시간이 있었다. 1989년 베를린 장벽이 무너지기까지 좌파 빌리 브란트와 우파 헬무트 콜 총리는 20년간 평화 정치, 대화 정치를 이어갔다.

이동기 강릉원주대 사학과 교수에 따르면 1970년대 중반 이후에는 서독 정치인들은 보수든 진보든 구별 없이 모두 동독 지배자들과 대결하면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고 대화하고 협력해야 문제가 조금이라도 해결된다는 인식을 공유했다고 한다. 1969년 브란트가 시작한 동독과의 대화를 1982년 우파의 콜 총리가 전면 계승하고 확대한 것도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이 교수는 “1990년 독일 통일은 냉전 극복이 힘의 우위에 기초한 압박이 아니라 공포 극복과 오해 제거 과정임을 웅변했다”면서 “상호 이해하고 소통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한다면 통일은 영영 이룰 수 없는 꿈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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