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남도영] 야쿠르트 아줌마의 김장김치 기사의 사진
이서원(67·여)씨는 1970년대 서울에서 남편과 섬유 사업을 했다. 사업이 실패하며 가세가 기울었다. 이씨는 1980년 가족과 부산으로 내려가 야쿠르트 아줌마가 됐다. 부산 대연1동이 담당 구역이었다. 이씨는 “사모님 소리 듣고 살았는데, 처음에는 창피해서 모자를 꾹 눌러쓰고 다녔고, 캐링카(야쿠르트 손수레)를 끌면서 울기도 많이 울었다”고 말했다. 야쿠르트 배달 일을 한 지 35년이 흘렀다.

이씨가 언론의 주목을 받은 것은 김치를 나누면서부터였다. 2001년의 일이었다. 이씨는 부산 지역 야쿠르트 아줌마들 상조회장을 맡고 있었다. 이씨는 지점장에게 “김치를 담가 힘든 분들에게 나눠주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다. 대연동에 홀로 사는 노인들에게 집에서 담근 김치를 갖다 드린 것이 계기였다. “김치라는 게 혼자 사는 사람들은 참 담그기 힘들어요. 아줌마들이 김치 담그기는 도사 아닙니까. 가끔 김치를 가져다 드리면 어르신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어요. 회사 차원에서 한 번 해보는 게 어떻겠느냐고 제안했더니 회사도 좋은 생각이라고 찬성했죠.” 김장김치 나눔 봉사활동의 시작이었다.

김장김치 나누기는 연탄 배달과 함께 연말 사회봉사의 대표선수가 됐다. 2001년 한국야쿠르트 부산지점에서 20명의 야쿠르트 아줌마들이 김치를 담근 이후 13년 만의 일이다. 올해 수많은 기업들이 김장을 담갔다. 삼성 현대차 SK KB 등 굴지의 기업들은 물론 작은 기업들과 외국계 기업, 지방자치단체들 대부분이 김장김치 봉사에 나섰다. 삼성그룹이 이달 초까지 계열사 임직원 등이 참여해 담근 김치가 29만 포기고, SK그룹도 계열사 등을 통해 20여만 포기를 담가 이웃들에게 전달했다. 이씨의 제안으로 김장김치 봉사를 처음 시작한 한국야쿠르트는 2001년부터 14년간 135만1000포기를 담가 27만4000가구에 김치를 선물했다. 지난달에는 서울시가 주최한 서울김장문화제가 열려 12만 포기를 담가 이웃들에게 전달됐다. 정확한 수량은 집계되지 않지만 올 연말 기업과 단체들이 담근 김장김치는 100만 포기는 훌쩍 넘을 듯하다.

‘저토록 많은 김치를 제대로 나눠줄 수 있을까’라는 걱정은 기우였다. 서울 지역의 푸드마켓 관계자는 “우리가 담당한 구에만 김치를 나눠드려야 하는 분이 850명인데, 우리가 받은 김장김치는 500통이었다”며 “복지시설에도 나눠드려야 하는데, 더 들어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많은 기업과 단체들이 100만 포기가 넘는 김장김치를 나누었지만 도움의 손길을 필요로 하는 곳은 여전히 많다는 얘기다.

2011년 말 기준 보건복지부 소관 사회복지시설 수는 노인복지시설 4469개를 포함해 5340개이며, 생활 인원은 17만5910명이었다. 지난해 가구의 소득이 최저생계비 이하로 국가의 지원을 받는 국민기초생활보장수급자는 135만891명이었다. 기초생활보장제도의 사각지대에 400만명 이상이 있을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지난 2일 국회를 통과한 내년 예산 375조4000억원 중 복지 예산은 115조원이다. 이런 엄청난 금액으로도 도움이 필요한 모든 이들을 감싸 안을 수 없다. 기업들도 열심히 사회공헌에 나서고 있지만 한계가 있다. 전국경제인연합회 자료를 보면 234개 주요 기업이 지난해 지출한 사회공헌 금액은 2조8114억원이었다. 2012년 3조2534억원에 비해 13% 줄어든 규모인데, 전반적인 경제 침체 때문이라고 한다. 더 많은 예산과 더 많은 사회공헌이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은 늘 한계가 있다.

이씨는 소감을 묻는 기자에게 ‘밀알’이라는 말을 여러 번 되풀이했다. 이씨는 “한 알의 밀알이 수많은 열매를 맺어 꽃이 피는 모습을 보는 느낌이다. 요즘 너무나 많이 기쁘고 놀라고 가슴 벅차다”고 말했다. 예산은 부족하더라도 이씨의 김치 나누기와 같은 놀랍고 창의적인 밀알들이 더 많이 생겼으면 좋겠다.

남도영 산업부 차장 dyna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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