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김명호] 청와대가 부끄럽다 기사의 사진
어쩌다 청와대가 이 지경이 됐는가. 어쩌다 청와대 수준이 이 정도로 추락했는가. 언제 청와대를 주무대로 전현직 비서관, ‘그림자 실세’ 그리고 대통령 동생 등이 얽혀 이런 ‘패싸움’을 벌였던 적이 있었던가. 그것도 임기 2년차에 말이다.

권력 주변에는 늘 세(勢)가 형성된다. 세가 있는 곳에서는 권력 암투가 벌어지기 마련이다. 박정희 시대와 5, 6공 군부통치 시절에는 억압적이고 폐쇄적인 구조라 권력 암투가 있어도 밖으로 잘 드러나지 않았다. 좋게 말하면 정치군인들을 중심으로 하는 세력 안에서 자체 해결이 가능했다. 하지만 문민시대 이후 대통령 가족이나 친인척, 측근 등이 얽힌 권력형 비리들은 속속 드러났다. 소통령, 홍삼트리오, 봉하대군, 영포라인…. 정치·사회 구조의 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지금의 권력 난투극은 앞의 것들보다 하질(下質)이고 악성이다. 다른 비서관들과 유별나게 구분되는 최측근 3인방, 비선 실세로 알려진 인물, 자칭 청와대 워치독(감시견), 대통령 동생 등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대통령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대통령과 나라를 위해 몸바쳐야 할 사람들이 세력 다툼을 벌이는 상황이다.

임기 말년도 아닌데, 민감한 내용의 청와대 보고서가 외부로 대량 유출됐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자체 생산한 문건을 증권사 정보지 내용을 모아놓은 수준이라고 폄하하는 것은 또 뭔가. 청와대 내부에는 게이트키핑 능력도 없는가. 내용의 진실 여부는 무시한 채 문서 유출에만 초점을 맞춰 역성을 드는 것이 상식적이고 균형성을 갖춘 대응인가. 전직 비서관이 재직 시 지득한 내용을 까발리는 것은 직업윤리에 타당한가. 공공성이나 책임감은 조금도 찾아볼 수 없다. 지금의 청와대 수준이다. 청와대 비서실 운영 시스템은 망가져도 크게 망가졌다. 자체적 문제해결 능력이나 정무적 판단 능력을 상실한 듯하다. 이런 상태로 관료사회 혁신을 이끈다? 불가능하다.

“유령과 싸우고 있는 것 같다.” 김기춘 청와대 비서실장이 했다는 말이다. 심정은 이해가 간다. 고양이를 호랑이라고 잘못 말한다고 분노할 수도 있다. 그런데 말이다. 그 ‘실체 없는 유령’이 왜 생겨났을까. 어느 날 갑자기 나타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런 폐단이 누적돼 오다 터졌기 때문이다. 이런 사태가 발생한 것 자체만으로 비서실장은 엄중한 책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청와대는 더 이상 국정운영 주도자로서의 동력을 갖지 못할 것 같다. 이미 여권 곳곳에서는 인사나 소통 문제와 관련해 여러 차례 청와대에 경고음을 보냈었다. 지금 청와대가 만신창이가 돼 가는데도 여당 사람들이 적극 방어하는 움직임이 없는 데에는 그런 배경이 있다. 그만큼 청와대 비서실이 기괴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방증 아니겠나. 청와대는 배타적인 충성심만으로 돌아가는 곳이 아니다.

검찰에 모든 것을 갖다 주며 해결해 달라고 하는 것도 참으로 딱해 보인다. 청와대가 사전에 비정상을 해결할 충분한 기능을 갖고 있는데도 말이다. 사후 대응도 부실하다. 3인방 외에는 내용을 잘 알지도 못하는 비서관, 행정관들이 위쪽의 뜻에 따라 고소인에 포함된 것도 그런 사례다.

박근혜 대통령은 역대 어느 누구보다 높은 지지율을 유지해 왔다. 사실 지지율이라는 것은 허망한 수치다. 하루아침에 달라진다. 그런 사례는 수없이 많다. 박 대통령은 골수 지지자 말고도 이념적 중도층에서 제법 지지를 받고 있다. 국민들의 기대도 적지 않다. 이제 그들의 지지는 안타까움으로 변했거나, 변하고 있다. 박 대통령의 스타일이 바뀌지 않는 한 안타까움은 한순간 분노로 변할 수 있다. 레임덕은 그래서 오는 것이다.

청와대 시스템은 근본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인적 쇄신도 필요하다. 대통령을 보지 못하는 수석들, 주요 현안이나 인사가 어디서 결정되는지도 모르는 구조, 이 모두가 국민들의 냉소 대상이다. 대통령이 실패하면 나라가 불행하다. 국민들에게 최소한 그런 불행은 주지 말아야 한다.

김명호 논설위원 mhk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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