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완충지대가 필요하다 6] 公교육이 놓친 아이들… 꿈 키울 권리를 許하라 기사의 사진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 소속 윤미숙 교사가 서울의 한 아동센터에서 학습부진 학생에게 일대일 지도를 하고 있다(위). 함께걷는아이들 제공 / 방송인 크리스티나씨(아래 오른쪽 두 번째) 등 자원봉사자들이 서울성모병원학교에서 소아암을 앓고 있는 아이들과 함께 그림수업을 하고 있다. 서울성모병원 제공
의사가 되고 싶은 소아암 진우 이야기

“가로가 16㎝, 세로가 20㎝, 높이가 8㎝인 벽돌을 빈틈없이 쌓아서 가장 작은 모양의 정육면체를 만들려고 해. 벽돌은 모두 몇 장이 필요할까?” 선생님의 질문에 진우(가명·17)가 잠시 생각하는 듯하더니 대답했다. “너무 쉬워요. 200장이요.”

지난 5일 오후 2시 서울성모병원 20층의 한 강의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열리는 ‘병원학교’에서 수학 수업이 한창이었다. 옹기종기 둘러앉은 3명의 학생들은 선생님 말에 고개를 끄덕이거나 연습장에 무언가를 적었다. 일반 수업과 다른 점은 학생들이 모두 파란 환자복에 머리를 남김없이 민 ‘소아암’ 환자라는 거다. 서울성모병원학교 총괄 책임자 정다운(29·여) 교사는 “2009년 학교를 만든 후 현재 소아암 병동에 입원해 있는 36명 대부분이 이용하고 있다”며 “국어 영어 수학뿐 아니라 미술, 음악치료 등 다양한 수업으로 아이들 학습을 돕는 중”이라고 말했다. 각 지방자치단체 교육청은 병원학교 수업을 실제 학교 교육시간으로 인정해주고 있다.



진우는 병원학교의 ‘모범생’이다. 가장 먼저 와서 자리를 잡는다. 컴퓨터를 하거나 TV를 보는 것 외에 진우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 병원학교다. 부모님과 간호사를 제외한 또래들과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하다. 외로움이 몸에 밴 진우에게 병원학교는 세상과 소통하는 유일한 창구다.

2년이 넘는 병원생활은 진우를 어른스럽게 만들었다. 아픈 자신 때문에 고생하는 부모님을 봐서라도 투정만 부릴 수 없다는 걸 잘 안다. 열심히 공부해야 ‘의사’라는 꿈을 이룰 수 있다고 믿는다. 자신처럼 아픈 아이들을 치료하고 싶다는 바람 때문이다.

정 교사는 진우처럼 열심히 공부했던 한 학생의 이야기를 해줬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소아암이 발견돼 4년간 투병했던 아이였다. 조혈모세포 이식이 무사히 끝나 축하 파티까지 했었는데 병이 재발했다. 어머니가 숨겼지만 아이는 이미 알고 있었다. 정 교사에게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게 너무 슬플 것 같아요.” 아이는 죽기 일주일 전까지 병원학교에 나왔다. 좀 쉬라고 해도 막무가내였다. “그때 생각했어요, 병원학교가 단순히 지식을 전달하는 게 아니라 삶의 의지를 지탱해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구나 하고.”

그러나 병원학교는 현재 전국에 31개뿐이다. 설립 조건이 까다로워서다.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 3개월 이상 장기입원이 필요한 학생을 대상으로 한다. 한 대학병원은 최근 화상을 입은 아이들을 대상으로 병원학교를 개설하려 했지만 만성질환이 아니라는 이유로 좌절됐다. 정 교사는 “국가 차원에서 병원학교를 더 늘려서 진우 같은 아이들의 꿈을 키워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느린 게 아니라 조금 다를 뿐

동호(가명·11)는 오후 8시 이전에 부모를 본 기억이 거의 없다. 회사일로 바쁜 부모를 기다리던 동호는 곧 컴퓨터 게임에 빠졌다. 행동이 폭력적으로 변했고 욕이 늘었다. 무슨 뜻인지도 모르는 비속어를 입에 달고 살았다. 공부는 시시했다. 수업시간 내내 딴짓을 하기 일쑤였다. 성적은 점점 떨어졌다. 국어 시험을 보면 10점 안팎의 점수를 받았다. 학습부진아, 동호를 부르는 또 다른 이름이었다.

동호가 사회복지법인 ‘함께걷는아이들’ 소속 박은희(43·여) 교사를 만난 건 지난 4월이다. ‘함께걷는아이들’은 학습부진 아동을 돕기 위해 일선 학교와 보육원에 지도교사를 파견하고 있다. 방과후 1대 1 지도로 학습 의욕을 키워주고 자신감을 길러주는 것이다. 동호가 다니던 서울의 한 초등학교가 ‘함께걷는아이들’에 도움을 청하면서 박 교사와 동호의 만남이 시작됐다.

처음엔 유쾌하지 않았다. “‘죽여버린다’는 말을 하더라고요. 반에는 친구가 없어서 조용히 있다가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사람이 생기니까 폭력적 성향이 드러났어요.” 무엇보다 동호는 꿈이 없었다.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어떤 책을 보고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동기가 없으니 의지가 생길 리 없었다.

박 교사는 ‘듣기’에 중점을 뒀다. 동호는 말이 많았다. 방과후 외로운 시간들, 부모에 대한 원망, 학교 다니기 싫다는 얘기까지 속내를 털어놨다. 그저 이야기를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동호는 조금씩 변했다.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전투기 조종사’라는 자신의 꿈도 박 교사에겐 슬쩍 알렸다.



‘조종사는 공부를 잘해야 한다’는 박 교사의 말이 방아쇠가 됐다. 동호는 교과서를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이해가 안 가는 부분이 있다고 하면 박 교사가 10∼20번 반복해 가르쳤다. “전쟁이라고 생각했어요. 이 아이가 변할 때까지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를 다졌죠.” 동호의 국어 성적이 55점으로 올랐다. 30점대에 머물던 수학도 75점으로 껑충 뛰었다. 박 교사의 ‘집중마크’가 변화를 일으킨 것이다.

한번도 웃지 않던 동호가 성적표를 보여주며 환하게 웃던 게 눈에 아른거린다는 박 교사는 ‘우회로’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학교 교육에서 소외된 친구들은 갈 곳이 없어요. 공교육이 놓칠 수밖에 없는 아이들을 위한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이 마련됐으면 좋겠습니다.”

박세환 기자 foryou@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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