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유가·엔저 파장] OPEC·美 ‘치킨 게임’… ‘D의 공포’가 유가 추락 부채질 기사의 사진
국제유가가 ‘날개 없는 추락’을 거듭하며 배럴당 60달러 선까지 떨어졌다. 원인은 복합적이다. 미국의 ‘셰일가스 혁명’ 이후 주요 산유국들이 국제 원유시장에서 주도권 다툼을 벌이면서 공급과잉 현상이 이어지고 있다. ‘세계의 공장’ 중국의 경기 둔화와 유럽·일본의 만성적 내수 부진이 겹치면서 디플레이션 공포가 커진 것도 원인으로 꼽힌다. 시장에서는 내년 1분기 유가 공급이 최대치에 도달할 것으로 보고 있다.

◇국제 원유시장, ‘출혈경쟁’ 돌입=7일 한국석유공사에 따르면 지난 5일(현지시간) 뉴욕상업거래소에서 서부텍사스산원유(WTI) 선물(1월 인도분) 가격은 전날보다 0.97달러 하락한 배럴당 65.84달러로 거래를 마쳤다. 글로벌 금융위기가 한창이던 2009년 7월 이후 최저치다. 런던 선물시장(ICE)에서 북해산브렌트유도 전날보다 0.57달러 떨어진 69.07달러로 마감했다. 2009년 10월 이후 최저치로 떨어졌다. 지난 7월까지만 해도 100달러를 웃돌던 유가가 가파르게 추락한 것이다.

최근의 급격한 유가 하향세는 국제 원유시장의 ‘큰손’들이 유가보다는 점유율 확보에 사활을 걸기 때문이라는 시각이 많다. 국제 원유시장을 지배해온 중동 산유국들이 강력한 경쟁자로 떠오른 미국 셰일오일 업체를 저유가로 몰아세워 파산하도록 조장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지난달 27일 석유수출국기구(OPEC)가 원유생산 쿼터를 하루평균 3000만 배럴로 동결한 것이 결정적이었다. 키움증권은 최근 보고서에서 “국제 원유시장이 본격적인 ‘치킨게임’에 돌입했다”고 분석했다.

사우디아라비아와 OPEC의 감산 합의 실패는 시장에 원유 공급과잉 우려를 낳았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사우디는 내년 1월 미국과 아시아에 공급하는 원유 판매가격도 인하하겠다고 발표하며 점유율 경쟁에 나서고 있다. 그러나 미국 셰일 업체들과 미국 정부는 50∼60달러 선에서 유가가 안정된다면 저유가를 감내하더라도 생산을 계속한다는 입장이어서 출혈경쟁이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생산에 차질을 빚었던 산유국들이 원유 생산을 재개할 것이란 점도 유가 하락 전망에 힘을 싣고 있다. 이라크는 이달 초 쿠르드자치정부가 내년부터 하루 25만 배럴을 터키에 수출할 수 있도록 허가했다. 시장에서는 2015년 7월 미국과 이란 핵협상 이후 이란산 원유마저 풀리면 공급과잉 문제가 재차 불거질 수 있다고 본다.

◇유가 바닥 어디냐··공급과잉 해소책이 급선무=글로벌 경기 둔화와 미국의 양적완화 종료라는 글로벌 경제의 ‘이중성’도 유가 하락과 관련이 있다. 유럽과 일본의 만성적인 경기침체에다 중국의 경기 부진도 장기화되고 있다. 중국의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는 50.3으로 4개월 연속 하락했다. 유가 하락이 에너지 비용을 줄여 소비 여력을 늘리면 경제의 선순환이 되겠지만 현재와 같은 구조적 내수 부진 상황에서는 되레 물가상승률을 낮춰 ‘디플레이션의 공포’를 심화시키는 악순환을 초래한다. 이 때문에 유럽과 일본은 대대적인 양적완화 카드를 내보이며 경기를 부양시키려 한다. 중국도 기준금리 인하로 맞서고 있다. 국제 금융시장의 변동성이 커질 수밖에 없다.

반면 미국은 경제지표가 살아나면서 차별화된 모습을 보인다. 이는 달러 강세로 이어지고 원자재 시장에 몰려있던 글로벌 자금이 미국으로 쏠리면서 유가 하락을 부추긴다. 최근 세계적 투자그룹인 오펜하이머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55달러까지 떨어질 수 있다고 전망했다. 또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 시점이 다가오고 있어 달러 강세는 계속될 전망이다.

문제는 유가 하락의 바닥을 언제 확인할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글로벌 경기 둔화가 단기간에 해법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유가를 안정시킬 방안은 공급 과잉을 해결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선 유가 하락으로 인해 막대한 피해를 입고 있는 이란과 러시아 등과의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고려한 ‘고차방정식’을 풀어야 한다. OPEC 국가들이 원유시장의 안정성을 해칠 수 있는 갈등 요인까지 감내하면서 출혈경쟁을 이어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 쟁점이다.

하지만 유가 하락을 단기간에 멈추기는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키움증권은 “내년 1분기는 원유 공급과잉의 ‘피크’가 될 것”이라며 “이란과 이라크 등의 원유 생산 정상화까지 고려한다면 원유시장의 수급 불균형 문제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백상진 기자 shark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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