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칙의 등대'로 세상을 밝히라 기사의 사진
경북 울진군 죽변항 앞바다에서 오징어잡이 어선들이 군데군데 집어등을 밝힌 채 조업을 하고 있다. 캄캄한 밤바다의 영세한 야간작업은 언덕 위 등대에서 뿜어져 나오는 한 가닥 압도적 빛줄기 아래 평온해 보인다. 원칙이란 그런 것이다. 누구든 어디서든 보고 따라갈 수 있는 것. 등대의 불빛이 없다면 저 밤바다의 배들은 얼마나 위태로울 것인가. 이 시대 우리 사회에 등대의 불빛 같은 원칙이 있는가. 또 원칙은 두루 멀리 통하고 있는가. 10일 창간 26주년을 맞은 국민일보가 던지는 질문이다. 울진=구성찬 기자
올해만큼 ‘원칙의 문제’가 권부부터 필부필부(匹夫匹婦)에게까지 절실하게 다가왔던 때는 없었다. 원칙이 없어서가 아니라 지키지 않아서 벌어진 사건·사고가 대한민국의 2014년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무사안일과 적당주의, 권력과 금력이 뒤섞여 국론을 분열시켰고 국민들을 좌절하게 만들었다.

이른바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은 사실 여부와 관계없이 우리 사회 최고 정점의 치부를 그대로 노출했다. ‘대통령의 사람들’끼리 벌이는 송사(訟事)를 보고 국민들은 “청와대에서조차 민주주의보다는 기밀주의와 밀행이 판치는 게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이후 무수히 벌어졌던 ‘인사 참사’도 무원칙에서 기인했을 수 있다는 시선도 존재한다. 원칙과 동떨어진 ‘비선’의 손이 국정 전반에 작용했을 것이란 추측도 낳는다. 대통령 스스로 ‘매뉴얼대로’를 입버릇처럼 말해왔지만 정작 청와대 주변에선 ‘매뉴얼을 초월’하는 일이 벌어졌다는 여론이 비등하다.

세월호 침몰도 그랬다. 자연이 야기한 불행이 아니라 원칙을 지키지 않아서 터진 재앙이다. 물살 빠른 바다에서 90도 선회를 감행한 수습 항해사, 남한테 키를 맡긴 채 침몰 순간에도 나태에 젖은 1등항해사, 가라앉는 배에 수백명 승객을 남긴 채 달아난 선장, 신고를 받고도 무사안일로 시간을 보낸 구조센터, 해난구조의 기본조차 지키지 않은 해경….

수장된 세월호는 그렇게 우리 사회의 현재상황을 함축적으로 보여줬다.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 세계 10위 무역국가, 세계 최고 인터넷 인프라를 갖춘 한국이 아직 선진국이 되기엔 한없이 부족한 현실이다.

세월호만이 아니다. 임모 병장 총기난사 사건과 육군 28사단 윤모 일병 사망 사건은 구타가 난무하는 군 병영문화를 보여줬다. 경북 경주 마우나오션리조트 붕괴 사고, 석촌호 인근 싱크홀 무더기 발견 등은 매뉴얼 부재, 원칙 실종의 대한민국 단상이다.

언제부턴가 우리 속에는 ‘지켜야 할 걸 지키지 않는’ 습관이 자리를 잡았다. 다른 사람에겐 사시를 뜨면서 자신의 범법엔 한없이 관대한 사고방식도 팽배하다. ‘빨리빨리’가 만사형통이던 1970·80년대 고도성장 시대는 우리 모두에게 원칙이 통하지 않는 사회, 규칙·제도·매뉴얼·법을 지키면 손해를 본다는 생각을 잔재로 남겼다.

이제 원칙이 바로 서야 한다. 원칙을 지키는 사람이 더 많은 보상을 받는 사회, 그래서 규칙을 깨는 사람들이 용인되지 않는 세상이 돼야 한다. 그래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보장된다.

신창호 기자 procol@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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