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백수 친구의 재취업 기사의 사진
1년여 동안 백수였던 친구가 이달 초 국내 굴지의 식품 프랜차이즈 회사에 재취업했다. 지난해 이맘때쯤 고교동기 몇 명이 만나는 자리에서 불쑥 “나 어제 회사 짐 쌌다”며 겉으로는 담담하게 말했던 친구였다. 대기업을 25년이상 다니면서 임원까지 했으니 실직 후유증을 견딜 것으로 생각했으나 힘들어했다. 씩씩한 척했지만 힘이 없었고 무료해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카카오톡 단체 대화방에 가장 먼저, 자주 등장하는 것은 늘 그였다. “딸내미 치과치료 중 대기” “마눌 기사 노릇” 등 극히 사적인 수다로 말을 걸어왔다.

백수 친구가 준 망외의 소득도 있었다. 친구들끼리의 만남이 잦아졌다. 백수 위무에서 비롯된 모임이 백수 과로사를 걱정할 정도로 빈번했다. 주말에는 등산이나 운동, 평일에는 저녁 자리를 함께했다. 지난여름 휴가 때는 50대 남자들끼리 해운대와 오륙도, 이기대 바닷가 산책로 등 부산을 누볐다.

그는 지금 회사 연수원에서 교육을 받고 있다. 식품 조리도 실습했고 제품 전단도 배포해 봤다고 했다. 처음엔 어색했지만 2주 차를 넘긴 요즘은 힘이 나고 재미있단다. 실업 기간을 보상받기라도 하듯 자신이 만든 요리 사진을 수시로 카톡에 올리며 존재감을 확인시킨다.

매년 이맘때면 기업들은 조직 개편과 함께 대대적인 인사를 단행한다. 이 과정에서 숱한 사람들이 일터를 떠난다. 경기 부진 여파가 두드러졌던 올해는 예년과 비교하면 훨씬 많은 샐러리맨이 퇴출됐다.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 이후 가장 심각한 감원 바람이 불었다고 할 정도다. 특히 증권과 생명보험업 등 금융권에서는 1년 새 무려 5만여명이 그만둬 ‘대학살’이라고까지 불렸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올해 구조조정 대상 중소기업은 125곳으로 2012년 97곳, 2013년 112곳에 비해 크게 늘었다. 직장을 잃는 사람이 갈수록 많아졌다는 의미다. 헤드헌터사에는 새 일자리를 찾는 사람이 작년보다 50% 이상 늘었다고 한다. 2014년 겨울, 대한민국 근로자들에게는 매서운 삭풍이 불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따르면 지난해 한국 정규직의 고용보호지수는 34개 회원국 평균인 2.29보다 낮은 2.17로 22위에 불과했다. 특히 정규직의 정리해고 규제 수준은 평균 2.19보다 낮은 1.88이었다. 그만큼 경영상의 이유로 대량 정리해고를 쉽게 한다는 뜻이다. 또 고용노동부 조사 결과 우리나라의 근속연수 10년 이상인 장기근속자 비율은 OECD 최저인 18.1%이며 평균 퇴직 연령은 49세로 낮은 편이다.

최근 경영분석 전문사이트인 CEO스코어가 분석해 보니 2013년 국내 500대 기업 직원의 평균 근무기간은 10.32년이었다. 30대 그룹 계열 169개사로 범위를 좁히면 9.7년이었다. 삼성 9.1년, 현대자동차 10.4년, LG 7.9년, SK 10.3년이었고 신세계, CJ 등 유통 서비스 업종은 모두 7년 미만이었다. 선진국에 비해 적은 실업급여, 열악한 재취업 유연성 등 취약한 고용 안전망까지 감안하면 우리 근로자들의 고용 불안정성이 극심하다는 것이 여실히 입증된다.

그런데도 정부는 정규직을 지나치게 보호하는 바람에 비정규직 차별을 쉽게 해소할 수 없고, 기업들은 사람 뽑는 것을 두려워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래서 내년에는 노동시장의 유연화, 쉽게 말해 사람을 쉽게 자를 수 있는 방향으로 경제정책을 짠다는 방침이다. 일부 공기업 및 대기업 정규직 노조원 등을 제외하면 고용 불안이 상존한다는 게 확인되는데도 잘못된 번지수를 고집하고 있다.

고용은 복지를 넘어 인권이고 삶이다. 실직의 다른 말이 ‘밥줄 끊어졌다’고 하는 까닭이다. 따라서 ‘해고’는 함부로 내뱉는 말이 아니다. 출범 이후 가계 빚 증가와 전셋값 폭등 이외는 기억될 만한 업적(?)이 별로 없는 최경환 경제팀이 ‘해고’를 자꾸 외치는 것은 자승자박이다. ‘정상의 비정상화’를 자꾸 주창하다가는 먼저 해고되는 수가 있다.

정진영 논설위원 jyjung@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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