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권력 2세’ 리더십 기사의 사진
박근혜 대통령은 ‘A=B’라는 1형식 문장을 선호한다. 언어는 단순하고 전하려는 메시지는 분명하다. ‘통일은 대박’이고, ‘정윤회 문건은 찌라시’며, ‘규제는 단두대에 올려야 할 적폐’다. 대통령이 온갖 명제를 단칼에 정의해버리니 밑의 사람들의 역할은 제한적이다. 대통령을 보좌해 국정을 통할하는 국무총리 존재는 국회 본회의 대정부 질문 때나 희미하게 빛을 발한다.

박 대통령 국정 운영 스타일을 논리학에 대입하면 연역법에 가깝다. 적어도 비선실세 국정개입 의혹 사건은 그렇다.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유추해 결론에 도달하는 귀납이 아니라 명제를 먼저 정의하고 사례를 거기에 꿰어 맞추어 나가는 식이다. 문제의 문건이 찌라시일 수 있다. 검찰 수사도 그런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하지만 문건에 거명된 청와대 비서관·행정관의 법정대리인이 ‘대통령기록물’이라고 했고, 검찰이 수사에 본격 착수하기도 전에 대통령이 무슨 근거로 찌라시라고 정의했는지 그 깊은 내막은 모르겠다. “당사자에게 확인해 보니 사실무근”이라는 청와대 대변인 설명대로 ‘문고리 권력 3인방’의 말만 듣고 그렇게 판단하지 않았을까 유추해볼 뿐이다.

물은 엎질러졌다. 웬만한 강심장이 아니고선 “대통령의 판단이 성급했다”고 말하기 어려운 게 지금 청와대 분위기다. 입 바른 소리 했다가 어느 칼에 나가떨어진지도 모르게 경질된 유진룡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을 반면교사로 삼고 있는 인사들이 대통령 주변에 허다할 듯싶다. 정 맞기 십상인 모난 돌이 되지 않으려면 몽돌이 되는 게 상책이다.

박 대통령은 “죽는 날이 고민이 끝나는 날”이라고 토로했다. 이 말에는 오로지 국가와 국민을 위해 불철주야 헌신하고 있는 우국충정을 국민이 몰라준다는 섭섭한 속내가 담겨 있다. 대통령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국민들도 각자 처한 위치와 환경에서 남이 알아주든 아니든 가정과 직장, 사회를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다. 대통령은 국민들이 자신의 진정을 왜 알아주지 않는지 그것부터 살펴보는 게 순서다.

박 대통령은 대한민국 역사상 유일한 ‘권력2세’다. 재벌 2, 3세에게 흔히 나타나는 ‘선민의식’ 같은 걸 대통령에게서 느낄 때가 종종 있다. 대통령이 되기 전 18년간 무소불위 권력을 가장 가까운 거리에서 지켜본 그다. 만 9세에 최고 권력자 딸이 됐고, 22세 때부터 5년간 어머니를 대신해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했다. 부지불식간에 아버지 스타일이 몸에 뱄음직하다. 아버지 앞에서 어느 누구도 감히 ‘아니요’라고 말할 수 없었던 절대적 권위 말이다.

그래서 그런지 박 대통령의 리더십은 일방향인 경우가 많다. 쌍방향의 기자회견보다 할 말만 전하는 담화 형식을 선호한다. 국민적 관심이 증폭된 현안도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 거의 예외 없이 모두발언 같은 형식으로 입장을 정리한다. 듣는 과정이 없다. 특히 박근혜정부 인사는 말도 많고 탈도 많다. 인사를 그런 식으로 해선 안 된다는 게 대다수 여론인데 도무지 바뀔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문고리 권력설이 지금에야 터져나왔다는 게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대통령의 언어는 화려하나 행동은 초라하다. 통일대박론이 대표적이다. 합의됐던 남북 고위급 회담마저 무산된 마당에 대통령의 언어는 이미 최고 수준의 통일에 가닿아있다. 통일에 접근하기 위한 단계적 조치 없이 대박만 외치고 있으니 그저 공허하게 들릴 뿐이다. 리얼미터의 12월 여론조사 결과 박 대통령 국정수행 지지도는 전월 대비 10% 포인트 가까이 하락한 39.7%를 기록했다. 집권 후 최저다. 현실과 대통령 언어 사이의 너무나 큰 괴리가 주요 원인이다.

미국 역대 대통령의 리더십을 연구 분석한 정치학자 리처드 E 뉴스타트는 “대통령의 권력은 설득력에서 나온다”고 말했다. 박 대통령은 그것이 부족해 집권 2년차부터 레임덕 시비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국민을 바꿀 생각 말고 대통령이 바뀌어야 한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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