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노트] (48) 블랙 원피스, 작은 거인 기사의 사진
칼 라거펠트가 찍은 리틀 블랙 드레스. 샤넬 제공
이것에 대해서는 할 말이 용량을 초과한다. 옷 중 스타 중의 스타다. 어떤 배역이 주어져도 뛰어난 연기를 구사하는 배우처럼 이것 역시 어느 상황에도 묻히는 기지를 발휘한다. 무엇을 입을지 판단이 서지 않아 다급한 마음이 들 때 이것을 택하면 안전하다. 이것의 명칭은 LBD(Little Black Dress), 우리말로 작은 검은색 원피스라고 할 수 있다.

검은색 원피스는 결코 ‘작은’ 존재가 아니다. 1926년 가브리엘 샤넬이 가슴과 허리를 조이던 기존 원피스의 틀을 부순 원피스를 내놓음과 동시에 검은색 원피스의 역사는 빛을 보았다. 샤넬이 선보인 검은색 원피스는 몸을 옥죄던 당대의 디자인과는 판이하게 달랐다. 그 시대 프랑스판 ‘보그’는 LBD를 두고 ‘현대 여성의 유니폼’이라고 명명할 정도였으니 그 대중적 반향이 얼마나 컸는지 가늠이 된다. 샤넬이 아니었다면 검은색 원피스는 장례식을 위한 복장에 머물렀을 경향이 높다.

신기한 것은 간소한 검은색 원피스임에도 모자람이 느껴지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장식의 부재는 뭔가를 덧붙이도록 부추기기 십상이나 이 옷만큼은 그렇지가 않다. 또한 여백이 있기에 더할 수 있는 여지도 많다. 없으면 없는 대로 있으면 있는 대로 ‘통과!’가 되는 것, 이 얼마나 멋진 자질인가. 검은색 원피스는 달걀처럼 완전하다.

아름다운 색이 무리 진 군중 속에서 검은색 원피스는 우아하게 튄다. 누구인지 알고 싶어지는 호기심을 불러일으키는 마성을 지녔기 때문이다.

김은정(패션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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