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이지현] 시간의 심리적 왜곡 기사의 사진
지난 시간을 되돌아보는 한 해의 끝에 서 있다. 요즘 사람들이 가장 많이 하는 말은 “한 일 없이 시간이 흘러가 버렸네”가 아닐까. 1년 52만5600분. 그 시간이 수레바퀴를 탄 듯 바람처럼 지나갔다. 행복한 시간은 천천히, 힘겨운 시간은 빨리 보낼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사람마다 다른 시간의 속도

영화 ‘인터스텔라’를 보면 주인공들이 행성 밀러에서 보낸 1시간이 지구의 7년이었다. 영화에서는 여전히 젊은 모습으로 귀환한 아빠와 지구상에서 똑같은 시간을 보냈지만 나이든 딸의 모습을 대조적으로 등장시킨다. 놀란 감독은 중력에 의한 시간 지연으로 나타난 현상을 이같이 보여준다. 사실 그 효과가 적어 알아채기 어렵지만 이와 비슷한 현상은 지구에서 매일 일어난다. 시간에 대한 체감, 즉 ‘심리적 시간’이 사람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너무 많은 일이 한꺼번에 일어난 날, 하루가 굉장히 길고 고단하게 느껴졌던 어떤 날의 기억이 있지 않은가. 또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있는 2시간이 2분처럼 지나가버린 경험도 해보았을 것이다.

이처럼 한없이 즐거운 한때는 금방 지나가지만, 고되고 지루한 시간은 무척이나 더디게 흐른다. 또 하루를 보내는 방식에 따라 하루가 길거나 짧아진다. 인간의 심리적 시간은 새로운 일일수록, 긴장도가 높을수록 더 길게 느껴진다. 이는 심리적인 요인에 의해 시간이 왜곡된 결과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립대 심리학과 로버트 레빈 교수는 “최고의 삶의 템포란 시간과 시간 사이의 균형을 찾아 자신의 삶의 속도를 통제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시간의 지배로부터 벗어나는 길”이라고 했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주어졌으되, 사람마다 다르게 느끼는 것이 시간의 흐름이라면 시간과 화해하는 유일한 길은 시간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고용이 불안정한 계약기간을 보내는 직장인, 사업 실패 후 절망의 시간을 보내는 가장, 대학입시에 다시 도전하는 재수생 등…. 요셉과 다윗이 그 고통과 인내의 시간을 하나님과의 만남의 시간으로 견뎌냈듯이 ‘심리적 시간’을 조절할 수 있어야 한다. 요셉이 종살이한 14년, 다윗이 광야에서 보낸 10년은 그들에게 너무 긴 시간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들은 철저하게 자신의 길을 하나님께 맡겨 시련을 극복해냈다.

52만5600번의 소중한 순간

누구에게나 자기만의 소중한 시간이 있다. 아침 일찍 일어나 커피를 마시는 5분, 늦은 시간 잠자리에 들기 전 성경 말씀을 읽는 15분, 정오의 햇살에 뽀송뽀송 말린 빨래를 정리하는 30분. 저마다 소중한 시간은 다르다. 그 시간 중 단 1초도 소중하지 않은 순간은 없다. 바로 52만5600번의 소중한 순간이 1년을 만든다. 눈부신 낮과 수많은 저녁노을 속에서, 적막한 마감의 시간들과 수많은 커피 잔들로 작은 일상들이 채워지는 매 순간이 우리에게 주어진 소중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지상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돼 있다. 마지막 날이 언제인지 알 길이 없음을 진정으로 깨닫고 이해한 뒤에야 오늘 하루가 마지막인 것처럼 열심히 살게 된다.”(엘리자베스 퀴불러 로스)

일상이 선사하는 놀라운 아름다움에 관심을, 사랑하는 것들에 매일 안부를 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가슴 벅차게 희열을 느낄 수 있는 일, 나 자신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일들을 찾아 나서야 한다. 가슴을 뛰게 하는 일을 하다 보면 시간은 천천히 우리 곁에 머물 것이다.jeehl@kmib.co.kr

이지현 종교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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