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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하응백] 아저씨들의 SNS 장례식

[청사초롱-하응백] 아저씨들의 SNS 장례식 기사의 사진
아내들에게 ‘기(氣)가 손가락으로만 갔다’는 핀잔을 들을 정도로 SNS에 몰두하는 중장년층 남자들이 늘어나고 있다. 이들은 ‘페이스북’이나 ‘카카오톡’을 젊은이들 못지않게 많이들 사용한다. 처음에는 그러한 SNS 활동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하다가 한두 번 하다보니 ‘재미가 들려’ 지속적이고 적극적인 참여자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고교동기 50대 장년들의 수다방 등장

내가 졸업한 고등학교 동기동창들이 모여서 개설한 카카오톡 대화방 명칭이 ‘이빨(28) 수다방’이다. 이름이 절묘하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28회 졸업생이니까 음이 비슷한 이빨을 앞세웠는데, ‘수다 떤다’의 속된 말 ‘이빨 깐다’에서 차용한 것이다. 수다를 떠니 ‘수다방’이면서 한때 만남과 대화의 공간이었던 ‘다방’의 의미도 복합적으로 적용되어 있다. 여기에 모인 160여명의 50대 중반 아저씨들은 그야말로 24시간 수다를 떤다.

자연스럽게 대화방에는 일종의 시스템과 룰이 정해져 있다. 이를테면 ‘당직’과 ‘보조’와 ‘야당’이 있다. ‘당직’은 늘 친구들의 대화를 받아주는, 이 대화방에 마치 상근하는 직원처럼 활동하는 친구를 지칭한다. 누군가가 “자장면 먹었다”라고 올리면 ‘당직’은 재빨리 “맛있더냐” 하고 답변을 보낸다. SNS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상정하는 것인데, 이런 재빠른 피드백이 있으니, 누구나 자주 자신의 이야기를 올리는 것이다. 우연이라고 하기에는 믿기 어려울만큼 이 당직을 자임한 친구 실명(實名)이 공교롭게 ‘상근’이다. 하지만 당직은 물리적으로 하루 종일 상근하지 못한다. 때문에 당직 보조를 하겠다는 친구가 나타났다. 그 친구가 ‘보조’다. 그랬더니 밤에는 대신 당직 하겠다는 친구가 바로 야간 당직, 줄여서 ‘야당’이다. 이 대화방에 보통 하루 평균 1000개 가까운 새로운 대화가 생성된다. 엄청나지 않은가.

아저씨들이 도대체 무슨 이야기를 그렇게 많이들 할까. 민감한 정치 이야기 빼고 거의 모든 일상사가 대화의 주제다. 이 대화들의 내용을 거칠게 분류해 보면 첫째는 정서적인 소통이다. 외롭다, 쓸쓸하다, 기쁘다와 같은 오욕칠정의 갖가지 감정들이 토로된다. 추억을 이야기하는 경우도 많다. “옛날 학교 매점에 우동 10원 했는데, 그거 맛있었지?” 하면 “난 돈 없어 못 사 먹었다. 멸치 국물은 5원. 그거 사서 도시락에 말아 먹었다” 등등.

둘째는 놀이를 한다. 나이답지 않게 때로는 ‘감’ 놀이를 하는 경우도 있다. 누군가가 “저녁 먹었는감” 하면 “못 먹었는감” 이어서 “배 터지는감” “마누라가 안 주는감” 등으로 이어진다.

경조사 알림 등 소통의 장 역할 톡톡히 해

셋째는 정보의 교류다. 대개 경조사의 알림 역할을 하지만 실용적인 기능도 한다. “군산에 여행 왔는데 뭐 먹을까?” 하면 여러 친구들이 맛집을 추천한다. 모두 55년 정도를 살았으니 각 분야에서 나름의 정보를 체계적으로 가지고 있는 것이다. 온라인 대화방이지만 신속한 연락망을 통해 실제 모임도 잦아진다. 누군가가 치킨 집을 개업하면 순식간에 모임 시간이 정해지고 여러 명이 모여 개업을 축하하러 간다. 또 누군가는 그 집에서 모인 친구들 사진을 찍어 대화방에 올린다. 이른바 실시간 중계를 하는 것이다.

지난주에는 폐암으로 투병 중인 친구 이야기를 누군가가 올렸고, 몇몇 친구들이 부랴부랴 문병을 가서 절망적인 상황을 전했다.

아직 자신들의 죽음에 익숙한 나이가 아니다 보니 모두가 슬퍼하고 있는 가운데, 일요일 아침 친구의 운명 소식을 제일 먼저 전한 것도 ‘이빨 수다방’이다. 많은 친구들이 애도를 표하고 누군가는 조시(弔詩)를 올리고 동기회 총무는 부의금 창구를 마련하고, 단체 조문 시간을 통보하는 것도 SNS를 통해 반나절 만에 단숨에 이뤄졌다.

한겨레신문 베이징특파원을 오래 했던 기자 하성봉군은 친구들의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동시(同時) 애도 속에 먼 길을 떠났다. 잘 가라, 친구야.

하응백 문학평론가·휴먼앤북스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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