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항 칼럼] 임금체계 개혁 가로막는 대기업 노사 기사의 사진
선진국에서는 대중교통·전기 등 공공요금이 무척 비싸다는 것을 가 보거나 살아 본 사람들은 다 실감한다. 지하철 한 번 타는 데 5000원 안팎이니 한국인 주재원들은 두세 정거장은 걸어 다니는 게 체질화돼 있다고 한다. 하와이의 공항에서는 카트를 사용하려면 4달러를 주고 빌려야 한다. 이렇게 공공 필수 서비스 요금이 비싼 것은 무엇보다 임금 수준이 높기 때문이다. 북유럽 공공시설의 화장실 청소원들이 우리의 눈에 당당하고 밝은 표정으로 보이는 것은 그들이 누리는 결과적·실질적 평등 때문일 것이다.

새해가 되면 전국 아파트 경비원들에게도 최저임금이 100% 적용되지만, 그들 대부분의 마음은 무겁다. 입주민들이 관리비 인상 부담을 이유로 감원을 하거나 휴식시간을 늘려 임금을 동결 또는 삭감하려하기 때문이다. 내년부터 최저임금 100% 적용과 더불어 최저임금이 올해보다 7.1% 오름에 따라 아파트 경비원 급여는 평균 19% 인상된다고 한다. 민주노총은 아파트 세대당 평균 월 2500원 전후로 추가비용이 들 것으로 보고 있다.

경비원과 임금을 줄여서 관리비를 절감하겠다는 아파트 입주민들의 생각은 기업의 이윤 극대화 논리와 이를 위한 갑을 관계의 극단적 남용과 일맥상통한다. 오늘날 서구 선진국 대부분에서 대기업이나 대형 양판점이 이윤 극대화를 위해 직원들에게 장시간 근로를 시키거나 영업시간을 무작정 늘리지는 않는다. 그게 더 많은 이윤을 가져다 줄 것을 그들도 알지만 더 중요한 공동체적 가치, 즉 근로자의 건강과 가정생활 보장, 동네 상권 및 자영업자와의 공존이라는 목표를 외면하지 않기 때문이다.

정부가 노동시장 개혁을 내년도 최우선 정책과제의 하나로 추진한다고 한다. 구체적으로 정규직에 대한 ‘과보호’ 장벽은 걷어내고 비정규직의 고용안정과 처우개선을 꾀하는 방향이다. 개별 정규직의 해고에 대한 절차와 요건을 명확히 함으로써 해고를 쉽게 만들고 임금체계를 연공급에서 직무·성과급으로 개편한다는 것이다.

노동시장의 이중구조가 문제라는 정부의 현실인식은 올바르지만, 그 구조적 원인과 더 큰 상생의 그림(비전)에 대한 천착이 없다. 중소기업과 대기업, 정규직과 비정규직 간 격차와 그들 간의 이동성 단절을 일컫는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는 정부의 암묵적 전제처럼 대기업 노조의 이기주의 탓에 주로 빚어진 게 아니다. 이는 정부와 대기업이 수십년간 노조 결성의 확산을 막으려고 돈(임금인상)과 규제(복수노조 금지와 조합비 상한선)를 통해 기존 기업별 노조를 회유한 데서 상당 부분 비롯됐고, 고착화됐다. 물론 노조에 대한 규제는 벌써 사라졌다. 하지만 대기업과 공기업의 노사는 지금도 비정규직과 중소기업의 이익에 맞서는 담합체제를 유지하고 있다.

정부와 사용자는 이제 와서 임금은 물론 고용안정성도 양보하라고 하니 ‘기브 앤드 테이크’가 아니라 모두 가져가겠다는 심보라는 불만이 노조로부터 안 나올 수 없다. 물론 임금유연성 확보와 직무급 도입은 시급하다. 그러나 노동시장 이중구조를 낳은 주요 당사자인 사용자를 빼고 노조만 닦달해서는 해법이 나올 수 없다. 사용자도 근로시간 단축, 통상임금, 차별시정 등 현안에서 통 큰 양보를 해야 하고, 정부는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과 실업급여 확대 등 사회안전망 확충에 큰 규모의 재정을 투입해야 한다.

직무급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을 위해서도 가장 시급한 것은 산업별, 업종별, 정규·비정규직 간 횡적 연대의 구축이다. 이를 바탕으로 통상임금 인상분 등을 대기업·공기업 노사가 출연해 임금연대기금을 만든다든지, 비정규직을 아우르는 산별교섭을 활성화하는 것은 양극화와 이중구조를 완화하는 좋은 방법이다.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임금 개혁은 IMF 구제금융 사태와 같은 위기가 닥쳐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한다. 지금 대기업 노사는 배가 불러서 변화를 모색할 생각이 없다는 뜻이다. 이 대목에서 정부가 할 일이 생긴다. 이런 구조적 접근이 없는 노동개혁은 실패할 수밖에 없다.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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