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박정태] 국회의 세종시 이전, 憲裁에 다시 묻자 기사의 사진
10년 전 해괴한 법해석이 있었다. 헌법재판소에서 나온 ‘관습헌법론’이 그것이다. 2004년 10월 신행정수도건설특별법 헌법소원에 대해 헌재는 ‘서울=수도’라는 관습헌법 위반을 들어 8대 1로 위헌결정을 내렸다. 서울이 수도라는 점은 조선왕조 이후 600여년 동안 형성된 관행이므로 관습헌법으로 봐야 한다는 논리였다. 성문법 국가에서 조선의 경국대전과 관습법을 들먹이는 놀라운 발상과 괴이한 이론 전개에 어이없어하는 이들이 많았다. 헌법 수호가 아닌 헌법 파괴 논리, 기득권자들을 지켜주기 위한 황당한 결정, ‘노무현 거부세력’의 정치적 재판이라는 등 비난이 쏟아졌다. 이용훈 전 대법원장마저 훗날(2012년 11월) 강연에서 “성문헌법이 있는 나라에서 헌재가 해서는 안 될 말을 한 것”이라고 비판할 정도였다.

사실 상당수 헌재 결정은 민감한 사안에 대한 정치적 판단이다. 재판관 성향 등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이는 다음 해 신행정수도 후속대책인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특별법 헌법소원에서도 드러난다. 1년 전과 달리 7대 2로 합헌(주문-각하)을 결정한 가운데 관습헌법 채택 의견이 종전 8명에서 6명으로 줄었다. 당초 관습헌법론에 유일하게 반대한 재판관 외에 그 사이 새로 취임한 재판관 2명이 관습헌법을 배척했기 때문이다. 관습헌법을 고수한 6명 가운데 4명의 경우엔 일부 정부 부처만 이전하는 행정도시법은 관습헌법에 위배되지 않는다고 해석했다. 어느 정권 때 누구(대통령·대법원장·국회)에 의해 지명되느냐에 따라 판단이 달라질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그러하기에 헌재의 판례는 시대 흐름에 따른 정치적 산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 특별법의 주된 차이는 청와대와 국회의 이전 여부다. 부처는 옮겨도 되지만 대통령과 국회는 서울에 남아 있어야 한다는 게 관습헌법론의 ‘결론’이었다. 10년 전 헌재 결정을 장황하게 복기(復棋)하는 이유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인 세종시의 현주소 때문이다. 국가 균형발전 차원에서 2012년 시작된 중앙행정기관 이전의 마지막 3단계 세종시 이전 작업은 26일 마무리된다. 36개 중앙행정기관 공무원 1만3000여명이 근무하게 된 것이다. 생활환경이 나아지면서 신도시로서의 면모도 갖춰가고 있다. 지난 23일에는 정부세종청사 완공 기념식이 열려 본격적인 ‘세종시 시대’의 개막을 선언했다. 하지만 세종시는 국가행정의 중심지로선 아직 자리매김을 하지 못하고 있다. 행정의 비효율 때문이다.

꾸준히 지적돼 온 것이지만 세종과 서울을 오가는 장차관 등 공무원들의 ‘두 집 살림’으로 인해 국가적 행정 낭비가 심각하다. 올 상반기에만 세종시 13곳 중앙행정기관 공무원들이 쓴 출장비만 75억여원이라고 한다. 서울 이동에 따른 업무 공백과 시간 허비 등 유무형의 사회적 비용도 엄청나다. 행정 비효율의 가장 큰 이유는 국회 출장 탓이다. 이대로 방치하면 세종시가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행정중심도시로서 우뚝 설 수 없다는 건 불문가지다. 근본적인 해결 방법을 찾아야 한다. 화상회의 시스템 활용 등은 미봉책이다. 다들 알고 있듯이 국회를 세종시로 옮기는 게 답이다. 서울에 잔류한 정부 부처의 이전은 말할 것도 없다. 국회 이전에 반대할 국민도 별로 없을 게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정의화 국회의장에게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요청한 바 있다.

관습헌법을 폐기하기 위해선 헌법개정이 필요하다고 ‘과거’의 헌재가 주장했지만 굳이 그런 절차를 따를 필요도 없다. 명문화된 헌법 조문이 없는데 무슨 개헌을 한단 말인가. 국회의 세종시 이전을 위한 특별법을 만들어 해결하면 된다. 국회의장을 비롯한 국회의원들이 결단하는 게 가장 빠른 길이다. 만약 이 특별법마저 헌재의 도마 위에 오른다면 헌재가 다시금 판단하면 될 터이다. 재판관들이 전원 바뀌었으니 10년 전처럼 생뚱맞은 이론을 들이댈 성 싶지 않다. 비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나라를 바로잡겠다는 데 반대할 재판관들이 또 나오겠는가.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

박정태 논설위원 jtpark@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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