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1부 애증의 한·일 관계] 위안부 피해자 김복동 할머니 “잊고 죽고 싶은데…” 기사의 사진
위안부 피해자인 김복동 할머니가 지난 24일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한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해 앉아 있다. 이병주 기자
“일본이 사죄하지 않는 한 나는 목숨이 끝나는 날까지 이 자리에서 일본의 못된 행태를 꾸짖을 거야.”

12월 24일 서울 종로구 율곡로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집회’에 참석한 김복동(88) 할머니는 반드시 일본의 사죄를 받아내겠다며 굳은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김 할머니는 이제 몇 명 남지 않은 일본군 위안부 출신이다. 14살에 일본군에 끌려가 8년간 위안부로 모진 고초를 겪었다. 고향에 돌아왔지만 과거를 밝힐 수 없었던 그는 죽은 듯 조용히 살았다. 하지만 50대 중반을 넘기자 일본의 죄악을 덮어둬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찾아가 위안부 문제를 공론화하는 데 동참했다. 쉽지 않은 결정이었다.

김 할머니는 “과거는 다 잊어버리고 편안한 마음으로 죽고 싶은데 일본이 일을 끝내지 않아 답답하다”며 “일본은 자신들이 한 짓에 대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종군위안부 문제 해결을 위해 1992년 1월 8일 시작된 수요집회는 여전히 진행 중이다.

김 할머니는 2년 전 “일본 정부로부터 배상금을 받으면 전쟁피해 여성을 돕겠다”고 선언하고 이들을 위한 ‘나비기금’을 조성하는 데 앞장섰다. 재일조선학교를 지원하는 후원금도 냈다. 다른 위안부 할머니들처럼 그도 건강이 좋지 않다. 왼쪽 눈은 실명 상태라 선글라스를 쓰고 집회에 참석한다.

고(故)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였음을 고백하면서 이 문제가 공론화된 지 올해로 23년째다. 하지만 이들이 바라는 일본의 진정성 있는 사과와 배상은 아직도 요원하다. 오히려 아베 신조 총리가 이끄는 일본 정부의 역사 왜곡은 더 심해지고 있다.

일본군 만행에 꽃다운 청춘을 짓밟힌 위안부 할머니들은 한 분, 두 분 세상을 떠나고 있다. 올해 황금자 배춘희 할머니가 사망해 생존자는 55명에 불과하다. 50명은 국내에서 5명은 미국과 중국, 일본에서 생활하고 있다. 1993년 위안부 피해자 접수가 시작된 뒤 총 238명이 등록했다. 그중 183명이 세상을 떠났다.

김 할머니는 “일본의 사과를 받지 못한 채 억울하게 눈을 감는 이들이 더 이상은 없어야 한다”며 가슴아파했다.

생존 위안부 할머니의 평균 연령은 88세다. 여성가족부가 실시한 실태조사를 보면 지난해 10월 기준으로 생존자 중 41명이 건강이 나쁘다고 대답했다. 혈전증과 당뇨, 각종 질병으로 요양원이나 병원에 입원해 있는 할머니도 적지 않다. 정신분열증에 시달리는 할머니도 있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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