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향기-전정희] 우리에게 악이 붙어 있다 기사의 사진
“한 국가의 독재자가 사이버 공간을 통해 배급사나 그 창작물을 방해하는 전례가 생긴다면 앞으로도 같은 일이 생길 때 계속 자기검열을 하게 될 것.”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지난 21일 영화 ‘인터뷰’ 개봉을 취소한 것과 관련해 제작사 소니픽처스를 나무라며 한 말입니다. 덧붙여 “북한에 비판적 보도를 한 CNN이 그런 공격 위협에 놓인다면 갑자기 북한과 관련된 보도를 중단해야 하는 것이냐”고 쓴소리를 했습니다. ‘인터뷰’는 북한 김정은 암살 장면 등을 담은 내용으로 그 예고편이 공개되자 북한 외무성이 “노골적 테러·전쟁행위”라고 비난했습니다. 그 후 소니픽처스의 컴퓨터 시스템이 해킹 당하자 개봉 취소를 선언했던 것이지요.

이튿날 가톨릭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제들에게 행한 쓴소리도 기억에 남습니다.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교계 지도자들이) 영적 치매에 걸렸다”고 질타한 겁니다. “자신의 열정·변덕·광기에만 의존해 주변에 담을 쌓고 자신의 손으로 만든 우상의 노예가 되어가고 있다”는 거지요. 교황은 ‘일만 열심히 하는 것’ ‘협업 없이 일하는 것’ ‘가십에 몰두하는 것’ ‘보스에 대한 지나친 찬미’ ‘겸손 열정 행복 기쁨 없는 장례식에 간 듯한 얼굴’ 등도 지적했습니다.

신발 한 켤레 받는 신앙

두 권력자의 말은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 이상이 되어 세계가 만들어집니다. 그러나 그 언어가 타락하고 혼돈할 때 그 세계는 위협을 당합니다. 생명이 목숨을 잃습니다.

그들이 일침한 ‘자기검열’ ‘우상의 노예’에 대한 지적은 사람을 움직이는 힘이 있습니다. 왜냐면 보편적 진실성을 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언어가 빼어난 경구(aphorism)인 것도 아닙니다. 신탁 받은 리더로서 원칙을 말했을 뿐입니다.

한국사회는 올 한 해 언어의 타락과 혼돈 속에서 지샜습니다. ‘세월호 침몰 참사’ 등 끊이지 않은 사건·사고는 극단의 언어를 양산했습니다. 그 언어가 좀비가 되어 우리를 ‘종북’이라는 언어 프레임 속에 가두어 버렸습니다. 지금 광화문 네거리에 나부끼는 현수막이 이를 웅변합니다.

한데 신앙인의 언어는 세상 언어와 달라야 한다고 봅니다. 세상 언어 프레임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그러므로 교계 지도자의 메시지는 어떤 형태의 프레임도 거부하는 ‘말씀의 힘’이 있어야 합니다. 수평적 윤리나 가르치는 말씀은 말씀이 아닙니다. 요한 사도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요 1:14)에서 알려주었듯 ‘하나님 구원의 언어’여야 합니다.

개신교에 스며든 바알 우상

한국 교계는 세상에 대한 말씀의 힘이 없습니다.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신 한 켤레를 받고 가난한 자를 팔며 힘없는 자를 티끌 먼지 속에 발로 밟고 연약한 자의 길을 굽게(암 2:6∼7)’ 하여도 누가 나서서 소리치지 않습니다. 성전 행사에만 북적였던 아모스 선지자 시대 같은 오늘의 한국 교계입니다.

저는 한국 개신교가 타락했다는 말에 동의하지 않습니다. 다만 개신교로 스며든 바알 우상을 막는 것에 소홀하여 하나님께서 우리 제물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교계 지도자들이 공의가 물처럼 흐르게만 한다면 우상은 사라질 것입니다.

‘나는 하나의 법칙을 발견했습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롬 7:22∼23). 새해엔 이런 우리의 팔목을 말씀으로 잡아줄 리더를 기대해봅니다.

전정희 종교기획부 선임기자 jhjeo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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