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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손수호] 제야의 기도

썩지 않는 바다의 근면 본받게 하시고… 손 안에 새해 밝히는 등불 쥐어 주소서

[청사초롱-손수호] 제야의 기도 기사의 사진
성찰과 희망이 교차하는 시점. 묵은 커튼을 내리고 새로운 창을 열 즈음에 정채봉의 시가 다가온다.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영혼의 꽃향기를 뿌린 분이시다. 살아생전 주님을 극진히 사랑했기에 기도시를 남겼다. 그중 으뜸으로 치는 ‘나의 기도’를 읽는다.

“아직도 태초의 기운을 지니고 있는 바다를 내게 허락하소서”

맨 처음의 가르침이 마음속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느껴진다면 바다로 달려가라. 경건한 몸짓, 부드러운 힘, 고요의 소리로 세상 근원을 품고 있는 곳. 바다의 경계는 애초에 원만하다. 그 뒤척임이 둔중한 종소리로 다가선다.

“짙푸른 순수가 얼굴인 바다의 단순성을 본받게 하시고”

바다는 태양의 붉은 빛에 바다의 블루가 더해져 완성된다. 장엄하게 완성된 바다는 또한 아득하다. 밤하늘의 별빛이 그러하듯 바다의 수심 또한 알 수 없기에. 바다는 이음새가 없어 자유롭다.

“파도의 노래밖에는 들어 있는 것이 없는 바다의 가슴을 닮게 하소서”

2014년의 기도는 기어이 남으로 향한다. 진도 앞바다에 정박한 영혼들에게 자비의 자장가를 들려주시고, 성급히 하직한 연유를 묻지 말고 오로지 은총으로 품어주소서. 그들을 묶었던 사슬은 우리 지상의 나그네들이 눈물로 삭여내리이다.

“홍수가 들어도 넘치지 않는 겸손과, 가뭄이 들어도 부족함이 없는 여유를 알게 하시고, 항시 움직임으로 썩지 않는 생명 또한 배우게 하소서”

바람 따라 물결 일고, 물결은 이랑을 만들면서 넘실댄다. 바람과 이랑은 때로 태풍으로 뭉쳐 저 깊은 황토의 바닥을 뒤집는다. 혁명이다. 이후 부지런한 바다는 스스로 돌보아 소금을 남긴다.

“늘 바쁜 걸음을 천천히 걷게 하시며, 추녀 끝의 풍경 소리를 알아듣게 하시고, 거미의 그물 짜는 마무리도 지켜보게 하소서”

정채봉의 또 다른 시 ‘기도’는 작은 움직임에서 그분의 임재를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미물의 근면한 노동에서 소망을 발견하고, 바람결에 천사의 음성을 듣는 사람은 행복하나리라.

“꾹 다문 입술 위에 어린 날에 불렀던 동요를 얹어 주시고, 굳어 있는 얼굴에는 소슬바람에도 어우러지는 풀밭 같은 부드러움을 허락하소서”

노래방 마이크를 잡으면서 화음을 잊은 지 오래. 나이의 굴레를 쓴 얼굴은 희로애락을 드러내지 못하니 바위나 다름없다. 잔잔한 물가로 인도하실 때 웃음 지을 수 없으면 어찌할거나. 사람이 바다 앞에서 당당할 때 평화가 스며든다.

“책 한 구절이 좋아 한참을 하늘을 우러르게 하시고, 차 한 잔에도 혀의 오랜 사색을 허락하소서”

가슴을 적시지 못하고 머리에서 말라버린 글은 외롭다. 책 든 손 귀하고 읽는 눈 아름답건만 나의 정보는 지식에 이르지 못하고, 그나마 지식은 지혜에 도달하지 못하니 딱하다. 차 한 잔에 담긴 사색과 고독의 분량을 너끈히 감당할 수 있기를.

“돌 틈에서 피어난 민들레꽃 한 송이에도 마음이 가게 하시고, 기왓장의 이끼 한 낱에서도 배움을 얻게 하소서”

인간과 자연의 격리는 악마의 편집이다. 민들레마저 식물원으로 옮겨갔고, 이끼 또한 도마뱀과 함께 먼 곳으로 떠난 지 오래다.

그래, 이토록 뿔이 나는 것은 친구를 멀리했기 때문이구나. 그들과 함께 노래를 부르자.

마지막 기도는 여전히 희망이다.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의 비극을 잊지 않게 하시고, 새로운 바다를 맞게 하소서. 분노보다 연민으로 바라보게 하시기를. 미래 밝히는 등불 쥐어 주시고, 정채봉의 기도가 맑게 울려 퍼지는 새해의 눈부신 창을 열어 주소서.

손수호(객원논설위원·인덕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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