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 (1) ‘옥수수 박사’ 김순권 “가난한 美 유학시절 태극기만 봐도 가슴 뭉클” 기사의 사진
김순권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이 지난달 18일 서울 강서구 재단 사무실에서 가난했던 시절을 회고하고 있다. 그는 “땀 흘린 만큼 돌아오는 사회가 돼야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이 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1945년 광복되던 해 태어난 ‘해방둥이’가 올해 꼭 70세를 맞는다. 광복과 분단, 전쟁과 혁명, 한강의 기적과 민주화 등 파란만장한 대한민국 현대사를 온몸으로 헤쳐 나온 세대다. 세상의 변화에 흔들리지 않고 꿋꿋하게 자신의 자리를 지켜온 해방둥이 두 사람이 후배 세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을 들어봤다.



“내 나이 서른이던 1975년, 당시 김종필 국무총리가 ‘해방둥이’ 이야기를 들어보자고 생활수기를 공모했어요. 근데 내가 특등상을 받은 거야. 그때 받은 상금이 20만원이었는데, 10만원은 생활비 하고 10만원은 어디 성금으로 냈어요. 벌써 40년이 더 흘렀네요.”

세계적 육종학자이자 북한과 아프리카 식량난 해결에 큰 기여를 한 김순권 국제옥수수재단 이사장은 1945년 5월 1일 태어나 백일 무렵 광복을 맞았다. 대부분 해방둥이가 그랬듯 그 또한 지독히도 가난한 시절을 지나왔다. 그는 지구촌 곳곳의 굶주린 이에게 기적과 같은 하루 세 끼를 선사해준 ‘옥수수 박사’가 됐다. 노벨 평화상 후보에 3번, 노벨 생리의학상 후보에 2번이나 올랐다.

지난 18일 서울 강서구 국제옥수수재단에서 김 이사장을 만났다. 그는 1972년 국비 장학생으로 미국 하와이대에 유학갔던 때를 회고했다. “그때 우리나라는 엄청 못 살았는데, 미국에 가 보니 너무나 잘사는 겁니다. 어찌나 부럽던지. 유학시절에도 3·1절과 광복절이면 국기게양대에 태극기를 올렸지요. 가슴 뭉클하고 눈물이 쏟아졌어요. 지금 젊은이들은 나라를 위한 뜨거운 마음이 덜한 것 같아요. 마음에 한(恨)을 품고 자라진 않았으니까. 가난도, 앞 세대들이 겪은 일제 강점기 치욕도 모두 한이었어요.”

김 이사장은 유학길에 오르기 전 들었던 고(故) 한경직 목사의 설교를 아직도 잊지 않고 있었다. 당시 성경 말씀은 ‘인자야, 내가 너를 이스라엘 백성의 파수꾼으로 세웠으니 너는 내 입의 말을 듣고 그들을 깨우쳐라’(에스겔 3:17)였다. 한 목사는 이스라엘을 한국으로 바꿔서 듣도록 했다. 김 이사장은 어려울 때마다 그 말씀을 되새기며 공부했다고 한다.

그는 요즘 젊은 사람들도 예전 못지않게 힘들어한다는 데 공감했다. “경쟁이 심하고 돈의 가치가 너무 높아져 그런 것 같아요. 지독하게 가난한 건 모르겠지. 빈부격차가 심해지고 권력을 가진 자들 힘이 너무 세니까 상대적 박탈감을 크게 느낄 수밖에 없는 거지요. 땀 흘리는 만큼 돌아오는 사회가 돼야 모두가 살기 좋은 세상으로 다가갈 수 있는 겁니다. 약자가 슬픔을 당하는 대한민국이 돼서는 안 되겠지요.”

지금 그가 마음에 품고 있는 곳은 북한이다. 1998년 북한이 김 이사장을 초청했었다. 옥수수 연구가 식량난을 해결해줄 것으로 봤기 때문이다. 옥수수가 자라기 어려운 북한 땅에서 키울 수 있는 ‘북한형 옥수수’ 종자 개발에 힘써왔다. 그는 머잖아 다시 북한을 찾을 예정이다.

“북한을 잘 이해하는 분들이 남에선 북한 좋은 얘기 하고, 북에선 남한 좋은 얘기 하면서 서로의 가능성을 높이 평가해주는 게 필요해요. 마치 중신아비처럼. 정도를 걷고, 서로 이해하고, 용서하고 돕는 마음도 필요하죠. 북한도 변해야 합니다. 서로 고집을 내려놓고, 상식에서 벗어나는 일은 하지 않고요. 미국과 쿠바도 수교를 한다는데 한 민족인 남과 북이 통일을 이루지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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