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수따기 올인 환자진료 뒷전… 2주기 맞는 의료기관인증제 부작용 속출 기사의 사진
올해로 2주기를 맞은 의료기관인증제는 의료기관의 환자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을 국가에서 인증하는 제도로, 의료기관인증평가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사진은 본 기사와 관련 없음)
지난해 12월 의료기관인증평가가 실시된 A대학병원에서는 기이한 풍경이 벌어졌다.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던 환자들이 앉아 있을 의자가 없어서 30분에서 1시간가량 서 있어야만 했다. 이유인즉슨, 병원에 화재가 날 경우에 대비한 스프링클러 의무 설치 규정에 따라 소방 진입로를 확보하기 위해 대기실에 있는 모든 의자를 치웠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몸이 아픈 환자들은 불편을 겪어야만 했다. 이뿐만 아니다. 10년째 신장병 때문에 혈액을 투석해야 하는 한 환자는 병이 악화돼 입원하려고 했다가 병실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다. 하지만 빈 병실은 많았다. 이 병원의 관계자는 "인증평가를 받는 기간에는 병원이 좋은 평가를 받기 위해 환자수를 줄이는 일이 암암리에 발생한다"고 귀띔했다.

'의료기관인증제'가 현실에 맞지 않는 인증 절차 등 문제점이 많다는 지적이 제기됐다. 의료기관인증제는 의료기관의 환자 안전과 의료서비스의 질을 국가에서 인증하는 제도로, 의료기관인증평가원에서 시행하고 있다. 이 평가제도는 지난 2010년부터 병원급 이상을 대상으로 시행되고 있으며 한 번 인증을 받으면 4년간 유효하다. 올해는 2주기를 맞았다. 이 제도는 미국 JCI(Joint Commission International) 인증을 모델로 하고 있다. 문제는 이러한 좋은 취지의 국내 최초 의료기관인증제가 병원의 현실을 고려하지 않은 비효율적 평가방식 등으로 인해 불만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점이다.

◇4년 중 평균 4일 위해 전 직원 투입되는 ‘평가 위한 평가’ 지적=의료기관인증 조사기준의 틀은 명확하다. 인증 조사기준의 틀은 의료기관이라면 마땅히 안전보장과 질 향상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는 전제 하에 환자의 입장에서 진료의 전 과정을 추적 조사할 수 있도록 구성돼 있다. 더불어 양질의 환자진료를 지원하는 기능과 조직의 전문성을 평가하는 한편, 마지막으로 지표를 통한 성과관리 측면을 평가항목에 포함하고 있다. 이를 위해 4년 중 평균 4일의 평가기간을 둔다. 평가기간 동안에는 의사, 간호사뿐 아니라 행정직원 등 전 직원이 동원돼 평가를 잘 받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평가 조사위원이 불시에 와서 평가를 진행하기 때문에 직원들은 환자 안전에 필요한 항목 외에도 다양한 내용을 숙지하고 있어야 한다. 문제는 불필요한 항목까지도 숙지해야 한다는 점에 있다. 실제 병원 직원들은 환자 안전과 병원 질 향상을 위한 필수 내용 외에도, 병원의 미션과 부서 목표 등의 내용까지 암기하도록 강요받고 있다. 의료계 관계자는 “4일이라는 인증기간이 끝난 이후에도 인증평가 때와 동일하게 의료기관의 행태가 유지될 수 있는지 반문해 본다”며 “반드시 필요하지만 인증 때문에 불편함을 감수하면서도 불필요한 내용까지 암기하는 행위들이 병원 현장의 실상을 고려해 다듬어지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상급종합병원은 필수로 받으라면서, 인증비용은 병원이 지불한다?=보건복지부로부터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인증을 받아야 한다. 의료법에는 상급종합병원으로 지정받으려면 평가원으로부터 인증을 받아야 한다고 규정돼 있다. 하지만 비용은 병원 측에서 부담해야 한다. 그렇다 보니 병상수가 많은 대형병원의 경우 적게는 수천만원에서 많게는 1억원 이상의 비용이 발생한다. 이 역시 적지 않은 부담이다. 실제 본지가 입수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새정치민주연합 김성주 의원이 보건복지부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4년 11월말을 기준으로 1, 2주기를 합쳐 병원종별 인증 신청 건수는 상급종합병원(83개소), 종합병원(128개소), 병원(120개소), 치과병원(12개소), 한방병원(11개소)로 총 354개소인 것으로 조사됐다. 인증평가원이 받은 수수료 수입은 1, 2주기 합쳐 총 75억4800만원에 달했다. 이러한 인증비용은 대부분 병원에서 부담한다.

하지만 정부도 할 말은 있다. 의료기관인증평가원 설립 취지가 중립성을 담보하기 때문에 병원이 자체적으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복지부 관계자는 “인증제는 정부가 병원을 서열화해 평가하지 않고 정부 외 독립적인 기관을 설립해 병원들이 자율적으로 평가를 받도록 하기 위함이다. 이러한 취지에 따라 인증운영에 대한 비용은 병원에서 자율적으로 부담하도록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4년에 한 번 받는 인증비용의 대부분은 조사위원 수당 등 인건비에 쓰인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정부가 인증제도 도입 시에는 불이익이나 규제가 없는 인증제라는 점을 강조했지만 결국 인증과정을 통해 수집된 평가자료들이 복지부, 심평원 등의 각종 규제수단에 이용되고 있다.

◇인증평가 조사위원들에 대한 불만의 목소리도 늘어=일부에서는 조사위원들에 대한 문제점도 지적한다. 조사위원들이 병원을 방문해 실사하는 과정에서 조사 방법이 미숙해 병원 직원들에게 혼선을 주고 있다는 것이다.

인증조사위원들은 의사, 간호사, 병원 행정직 직원 등 다양하게 구성돼 있다. 문제는 조사 방식이 서툴러 직원들에게 심리적 불편함을 주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실제 한 조사위원은 ‘병원에서 혈액이 바닥에 쏟아졌을 때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를 테스트했다고 한다. 그런데 갑자기 바닥에 물을 뿌려놓고는 테스트를 받는 병원 직원에게 혈액을 담는 시뮬레이션 작업을 실시하라고 명령했다. 평가를 받았던 이 직원은 “당황스러웠다”고 토로했다. 한편 한 조사위원은 병원에 새로운 의료기기나 첨단 의료시스템이 도입된 것을 보고 평가목록에 있지 않은 기기가 있다며 마이너스 점수를 줬다고 했다.

미국 JCI의 경우 전담위원은 최소 30여년의 병원 경력이 있는 사람들로 구성돼 있다. 또한 의료기관의 질을 평가하는 전문위원들은 자격증을 필수로 갖추고 있다. 한 병원 관계자는 “평가자는 평가를 받는 상대방과 어떻게 합리적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할 것인지, 어떻게 답을 이끌어 낼 수 있는지 등을 충분히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 의료기관 현실에 맞는 평가제도 갖춰야”=병원 관계자들은 저마다 입을 모아 한국 의료기관 현실에 맞는 평가제도가 실시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은 평가항목으로 인해 불이익을 받은 경우도 많다고 한다. 한국의 의료시스템에 걸맞은 평가제도가 시행돼야 한다는 것이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병원마다 환자 구성, 주요 진료과목 등이 다르다. 병원 시스템, 구조상의 특성도 다르다”며 “병원들이 필수로 갖춰야 할 조건 외에도 병원 특성에 맞는 평가항목이 도입돼야 한다”고 말했다.

의료기관인증제는 병원의 질 향상, 환자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한 의료계 관계자는 “한국 의료기관 현실에 맞는 평가제도를 갖춘다면 충분히 실효성 있는 평가제도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의료기관인증평가원의 독립성은 인증평가원장이 독립된 기관 소속이어야 가능하다는 지적도 있다. 현재 의료기관인증평가원의 석승한 원장은 안산시립노인전문병원의 원장이자, 원광대학교 교수이다.

평가를 받는 병원에 소속된 의사가 인증평가원의 원장이라면, 평가기관의 독립성을 담보할 수 없다는 우려 때문이다.

이에 대해 인증평가원 관계자는 “병원 소속의 원장이라고 해서 특정병원에 이익 또는 불이익을 줄 수 없다. 우리는 충분히 중립성을 담보한다”고 말했다.

장윤형 기자 vitamin@kukimedi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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