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 포럼-김일수] 다시 매화를 만나다 기사의 사진
을미년 새해를 맞이했다. 아직은 눈보라가 휘몰아치는 추운 겨울이지만, 머지않아 남쪽으로부터 화신도 날아올 전망이다. 작년 꽃샘바람 매서울 때 필자는 본란에 ‘청계천에서 매화를 만나다’라는 글을 올린 적이 있었다. 정직, 경건과 같은 덕목이 세인들의 관심에서 멀어진 세태를 가로지르며 옛 선인들이 칭송했던 지조와 절개가 그리워 청계천 매화거리에 나갔던 잠깐의 심사를 적은 것이다. 아마 지금쯤 매화소식을 접하기에는 세한이 너무 깊은 듯하지만, 사랑방에서 화선지 위에 매화 한 폭 치기에는 안성맞춤인 때 같기도 하다.

마침 최근 잠시 고향을 지나가는 길에 강릉의 여류시인 공계열님으로부터 ‘매화 이야기’라는 시집 한 권을 받아왔다. “흔들리는 매화가지에서 어머니의 날 부르는 소리가 가파르게 지나간다. … 바람에 매화가지가 가늘게 뒤척일 때마다 매화꽃에서 어머니의 잔기침 소리가 들려오고 희디흰 어머니의 목수건이 환영처럼 어른거린다// 어머니 추우세요 아직은 기동하시기에 너무 이르지요 네 어머니”

영화 ‘국제시장’이 절찬리에 우리네 일상의 기억에서 멀어졌던 아버지상의 열풍을 몰고 온 게 사실이다. 필자도 얼마 전 아내와 함께 그 영화를 보러갔다. 유년기의 전쟁, 청년기의 월남전과 독일유학, 귀국 첫해의 이산가족 상봉 장면들이 오버랩되면서 흐르는 눈물을 어찌할 수 없었다. 영화의 주인공 덕수가 끝자락에 “아버지, 내 약속 잘 지켰지예. 이만하면 내 잘 살았지예. 근데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 하는 독백은 긴 여운을 안겨 주었다. “내 진짜 힘들었거든예”는 이 땅의 아버지들의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며 또한 미래형의 예감을 담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애잔했다.

필자는 그 후 ‘어머니 매화’를 읊조리며 국제시장이 불을 댕겨 준 내 마음의 ‘슬픈 아버지’의 서러움을 조금은 중화시킬 수 있었다. 이 땅의 아버지들이 진짜 힘든 이유는 단칸방에서 반듯한 집 한 칸을 세웠다 치더라도, 직업의 본령에서 말이 통하지 않는 고집불통과 자기집중의 삶의 방식, 또 사생활의 영역에서 회복되지 않은 과거의 아픔 때문에 가족들로부터 겪는 소외 등이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건너뛰었던 사춘기를 늘그막에 외롭게 겪으면서 스스로 힘든, 진짜 문제 많은 노인으로 거울 앞에 서 있는지도 모른다.

국민소득 3만 달러 시대를 눈앞에 둔 오늘 우리들이 세대 간의 차이를 뛰어넘어 공감 속에서 하나의 통합을 이루어 가는 데 꼭 필요한 정서가 있다면, 필자는 저 ‘어머니 매화’를 ‘아버지 매화’로 바꾸어 부를 수 있는 어떤 공감대라고 생각한다. “어머니/아버지 추우세요? 아직은 기동하시기에 너무 이르지요? 네, 아버지/어머니” 라고. 그 교감의 가교를 통해 우리는 산업화 민주화 과정을 숨 가쁘게 지나오면서 잃어버린 가족과 사회공동체의 연대성, 소외된 이웃과 사회적 약자에 대한 포용과 사랑, 신의성실과 정직, 절제와 상생의 미덕을 더욱 치열하게 의식 속으로 내면화해야 한다. 이런 정서적·정신적인 면을 소홀히 한다면, 우리는 언제 또 세월호 참사, 대기업의 ‘갑질’, ‘미생’ 논란, 정치권력의 독주와 헤게모니 싸움 같은 볼썽사나운 장면을 만나게 될지 모른다.

우리 주변에는 ‘국제시장’에서 미처 다루지 못한 그 뒷골목의 숱한 애환과 좌절의 신음소리들이 여전히 흐르고 있다. 행복이 곧 경제라고 속단하는 사람들은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고 외쳤던 우리 청소년들의 상징성 깊은 절규에 한 번 더 귀 기울여 주기 바란다. 노령의 실향민들이 뼛속까지 사무치는 그리움에 토하는 망향가를 깊이 헤아려야 한다. “하필 한가위 저녁에 오셨습니까/ 대동강 찬물에/ 달덩이 띄우시고// 이 막내집 마당에/ 새삼 읍하십니까/ 떨기 채 흔들리고 계십니까”(윤명, ‘과꽃’의 일부)라는 비가가 통일대박을 노래하는 사람들의 뇌리에 큰 공명으로 울렸으면 좋겠다. 성장의 그늘에 갇혀버린 곤고한 전업 시인들에게도 함께 미래를 노래할 수 있는 적극적 문화정책도 펼쳐져야 한다. 희망과 보다 더한 밝음이 새해 우리 모두의 노래가 됐으면 좋겠다.

김일수 고려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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