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시평-윤석헌] 한국금융, 비전은 어디 있는가 기사의 사진
처음 자동차 운전을 할 때 가급적 멀리 보고 운전하라고 배웠다. 가까운 곳을 보고 가면 갈팡질팡 차가 흔들리지만 먼 곳을 보면 차가 안정적으로 운행된다는 것이다. 물론 운전이 어느 정도 숙련되기까지 이게 꼭 쉽지만은 않다. 경제정책의 운용도 같아서 비전 설정이 필요해 보인다.

1995년 하반기 김영삼 대통령 시절 재정경제원이 추진했던 경제 장기구상 프로젝트의 금융반에 참여해 한국금융의 중장기 비전을 집필한 적이 있다. 그때 2020년 한국금융의 비전으로 ‘금융의 전략산업화’를 제시했는데, 어떤 토론자가 ‘지나친 장밋빛’이라고 비판하는 바람에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우리 국민의 수리·정보 능력이 우수하고 당시 막 태동하던 IT 분야와 금융의 결합이 유망해 보여 고부가가치를 창출하는 전략산업화를 제시한 것인데, 이를 몰라주는 토론자가 야속했다.

2015년 벽두에 그때가 생각나는 것은 이제는 필자도 같은 비판을 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2020년이 멀지 않은 지금, 한국금융이 국가의 전략산업이 된다는 비전은 솔직히 실현 가능성이 높지 않다. 아니 또다시 20년이 지나도 쉬울 것 같지는 않다.

그간 한국금융은 1997년 외환위기,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경험했고, 카드 사태와 저축은행 사태를 치렀다. 이런 가운데 노무현정부는 금융허브 추진을 비전으로 제시했고, 이명박정부에서도 여의도와 부산 문현지구를 금융 중심지로 지정하여 비전을 이어갔다. 박근혜정부 들어서도 초기에는 금융권 4대 태스크포스가 출범했고 이어서 금융비전으로 ‘10-10 밸류업’을 제시했다. 금융산업의 부가가치를 10년 내 국내총생산(GDP)의 10% 수준으로 끌어올린다는 것이다. 그러다가 동양사태가 터지고 정보유출 사건이 발생했으며, KB금융 사태로 이어지면서 요즘은 4대 태스크포스와 10-10 밸류업의 자취를 찾기가 쉽지 않다. 정부는 지난 연말 발표한 ‘2015년 경제정책방향’에서 금융을 4대 구조개혁 과제의 하나로 제시하면서 핀테크와 모험자본 활성화를 강조했다. 그러나 이것이 10-10 밸류업을 구체화하는 것인지 아니면 대체하는 것인지 헷갈리면서 한국금융은 비전이 있는지 있다면 무엇인지가 불투명하다.

현 시점에서 한국금융의 비전이 밝아 보이지 않는 까닭은 세 가지 제약과 연관된다. 첫째, 관치·정치금융과 낙하산 등 부적절한 금융산업 개입이 지속되면서 금융의 자율성 확립과 전문성 제고에 걸림돌로 작용한다. 둘째, 재벌그룹의 내부자본시장이 공적 금융시장의 성장·발전을 제한한다. 공적 금융시장에서 재벌그룹 계열 금융사들의 위험부담 및 중개역할도 소극적이다. 셋째, 국민들 보유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압도적으로 높은 것도 금융시장 활성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그런데 이러한 제약들은 해결 방안이 금융의 영역을 넘어서는 데다 간단해 보이지도 않아 금융비전을 어둡게 한다.

한편 오늘날 한국경제 현안 과제의 많은 부분이 금융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는 사실은 금융산업에 도전의 기회를 제공한다. 예컨대, 가계부채 문제 해결, 고령자에 대한 자산관리 서비스 제공, 벤처와 창업기업 지원을 통한 신성장동력 창출, 중소기업 지원 및 대기업과의 견제와 균형 유지 등 금융에 요구되는 경제사회적 역할은 매우 많다. 뿐만 아니라 이러한 역할을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과정에서 금융은 자신의 문제 해결을 스스로 도모할 수도 있다. 중소기업과의 해외 동반 진출은 국제화 문제 해결에 기여할 것이고, 핀테크를 트랜잭션뱅킹과 접목해 기업고객 서비스 확대에 나설 수도 있으며, 소상공인과 중소기업 지원을 통해 내수 활성화에 기여할 수 있고, 금융 소외자들에게 금융서비스를 제공하여 미래 고객으로 확보할 수도 있다. 이렇듯 한국의 금융산업은 현안 과제들에 대한 해법을 마련, 스스로 경쟁력을 높이는 데서 비전을 찾아야 할 것이다.

윤석헌 숭실대 금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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