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국교정상화 50년-1부 애증의 한·일 관계] 日 “개인 청구권 소멸” 앵무새처럼 되풀이 기사의 사진
일본 경찰이 작성한 ‘사할린 조선인 강제징용 명부’, 조선인을 강제 동원한 가네가후치공업 광주공장 모습, 남양군도로 강제 동원된 조선인 노동자들, 파푸아뉴기니에 세워진 강제동원 희생자 추모탑(왼쪽 위부터 시계방향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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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 이후 70년이 지났지만 일제에 의한 강제동원 피해자의 아픔은 현재진행형이다. 우리 법원이 2∼3년 전부터 피해자에게 배상하라는 판결을 잇따라 내놨지만 일본 정부와 기업은 꿈쩍도 않는다. 반면 강제동원의 실상을 보여주는 자료와 옛 명부 등은 계속해서 나오고 있다.

◇법원 배상 명령에도 침묵하는 일본=지난해 10월 서울중앙지법은 한 일본 기업에 15억원을 배상하라는 판결을 내렸다. 해당 기업은 일본 도야마현 도야마시와 도쿄에 본사를 두고 있는 공작기계 제조업체 후지코시. 태평양전쟁 시기 전투기, 군함 등에 들어가는 기계 부속을 대거 생산한 기업이다. 후지코시는 당시 일손이 부족해지자 조선의 10대 소녀 1000여명을 ‘돈을 많이 벌게 해 주겠다’거나 ‘공부를 하게 해 주겠다’고 꾀어 일본으로 데려가 착취했다. 일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0∼12시간 일을 하게 했다. 임금은커녕 식사도 제대로 제공하지 않았다. 소녀들은 귀국 뒤에도 자신을 위안부로 오인하는 시선에 평생 힘겨운 삶을 살았다.

피해자들은 앞서 일본에서 소송을 벌였으나 패소한 뒤 국내 법원에 다시 소송을 냈다. 우리 법원의 판단은 달랐다. 재판부는 “이번 판결로 피해자들이 조금이나마 위로를 받고 여생을 편안히 보내시기를 소망한다”며 “피해자 1인당 8000만∼1억원을 배상하라”고 했다.

그렇지만 후지코시가 순순히 우리 법원의 명령을 따를 것으로 기대하기는 어렵다. 광복 이후 70년간 조선인 강제동원 피해자에게 배상한 일본 기업은 한 곳도 없다. 지난해 9월 광주고등법원은 미쓰비시중공업에 조정안을 제시했지만 거부당했다. 근로정신대 할머니들은 이 회사를 상대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내 1심에서 일부승소한 상황이다. 1심 법원은 피해자 1명당 1억5000만원을 배상하라고 했지만 미쓰비시중공업은 이에 불복해 항소했다.

2012년 대법원이 일본 기업에 배상 책임이 있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한 소송도 최종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 서울고법은 지난해 7월 신일본제철 등에 ‘원고들에게 1억원씩을 지급하라’고 판결했으나 해당 기업은 묵묵부답이다.

일본 기업들이 배상을 거부하는 근거는 ‘한·일 청구권 협정으로 개인 청구권은 소멸됐다’는 것이다. 미쓰비시중공업은 2010년 11월부터 2012년 7월까지 16차례 광주의 피해자 지원 시민단체와 협상을 벌인 적도 있다. 하지만 결국에는 앵무새처럼 ‘개인 청구권 소멸’을 주장하며 배상 요구를 외면했다.

◇강제동원 증거자료 속속 드러나=그동안 조선인을 데려다 강제노역을 시킨 대표적 전범기업으로는 무기 등을 제조한 군수기업이 지목됐다. 미쓰비시, 미쓰이, 스미토모, 일본제철(현 신일본제철), 아소, 북해도탄광기선 등이다. 최근에는 도요타자동차, 니콘, 도시바 등 국내 소비자에게 낯익은 기업도 조선인 노무자를 강제동원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무총리실 산하 ‘대일항쟁기 강제동원 피해조사 및 국외 강제동원 희생자 등 지원위원회’(강제동원 피해조사위)가 최근 작성한 ‘강제징용 기업명단 및 일본 내 강제노역지 현황 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강제동원자를 노무자로 쓴 일본 기업 중 현재 존속하는 기업은 291개다. 이 중 66개 기업이 새롭게 파악됐으며, 도요타자동차 등이 여기에 속한다. 강제노역 작업장은 일본 전역에 4042곳이 있었던 것으로 조사됐다. 국내외 강제동원 규모는 약 782만여명으로 추산됐다. 이 중 일본으로 동원된 노무자는 102만여명(연인원)이다.

사할린 조선인 강제동원과 관련해서도 구체적 피해 규모를 집계할 수 있는 자료가 새롭게 발견됐다. 사할린 강제동원자는 3만명 정도로 추산돼 왔을 뿐 정부는 그동안 공공 데이터를 기반으로 피해 규모를 산출하지 못했다. 일본과 러시아 모두 자료 제공에 소극적이었기 때문이다.

최근 러시아에서 변화가 생겼다. 러시아 국립사할린문서보관소 측이 사할린 강제동원 연구자로서 그간 신뢰 관계를 구축한 방일권 한국외대 교수에게 ‘행정수사서류철’ ‘각종 요시찰인 명부’ ‘시리토리광산 회사직원 명부’ 등 문서를 공개했다. 방 교수 연구팀은 자료 11만건을 열람해 이 가운데 조선인과 관련된 자료 1만건을 복사하거나 필사했다. 조선인 4200여명과 탈출한 조선인 2000여명의 이름과 본적, 생년월일, 용모 특징 등 인적사항 등이 담겨 있는 자료다.

이 자료는 일본 경찰에 의해 작성된 공적 기록물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다. 그동안 근거 부족으로 피해 보상을 받지 못했던 사할린 강제동원 피해자와 유족의 보상 가능성이 커진 것이다. 일본 경찰이 사할린에서 소재를 찾기 위해 작성한 독립운동가 1193명의 명부도 사료적 가치가 클 것으로 보인다. 3·1운동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데 역할을 한 한위건 선생이 이 명단에 포함돼 있다. 아울러 탈출자 2000여명의 존재는 사할린 징용 조선인이 자발적이었다는 일본의 주장을 반박할 수 있는 결정적 증거가 된다.

◇정부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강제동원 문제에서 진척이 가장 더딘 건 유골 봉환이다. 강제노역 과정에서 사망해 일본 땅에 묻혀 있는 유골을 유가족의 품으로 돌려주는 일이다.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은 2004년 12월에 열린 한·일 정상회담에서 강제동원자의 유골 반환을 약속받았다. 정부는 2005∼2010년 일본에 조사단을 보내 노무 동원자 유골 약 2700위를 확인하고 일부를 국내로 들여오는 등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2011년 이후 한·일 관계 경색과 예산 부족 등 이유로 관련 작업이 중단된 상태다.

이와 관련, 일본은 지난해 11월 이와테현의 한 사찰에 있는 유해 12위가 조선인 징용자의 것으로 보인다며 공동조사를 제안했다. 유골 봉환의 물꼬를 다시 틀 수 있다는 점에서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그동안 우리 정부가 이 문제에 소극적이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크다. 관련 예산은 제대로 배정되지 않았고 전담 기구도 없는 형편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국방부의 유해감식단 같은 상시 기구와 전문 인력이 필수적이라고 지적한다. 앞으로 해외에서 봉환될 유골이 상당할 것이라는 점을 감안해 강제동원 희생자만을 위한 추도 공간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제기되고 있다. 장기적으론 만주와 시베리아, 동남아시아, 남양군도 등으로 피해조사 범위를 넓힐 필요성이 있다.

권기석 기자 keys@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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