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유재웅] 대한항공 홍보 실패의 교훈 기사의 사진
조직에서 홍보 담당자들은 독특한 위치에 있다. 이들은 조직 구성원이면서 외부 공중과 관계를 맺는 가교 역할을 담당한다. 세계적인 홍보학자 중 한 사람인 구루닉(Grunig)은 홍보 담당자를 두 가지 유형으로 분류했다. 하나는 홍보 기술자이고, 다른 하나는 문제 해결자 내지 관리자다. 홍보 기술자는 보도자료를 작성하고 배포하는 등 말 그대로 기능적인 일을 수행하는 사람을 일컫는다. 반면에 문제 관리자로서의 홍보 담당자는 공중의 정서를 읽고 문제를 분석하면서 대안을 찾아 해결책을 강구하도록 돕는다.

최근 우리 사회의 여러 조직을 들여다보면 홍보 기술자만 있지, 문제 관리자로서의 홍보 전문가가 존재하는가, 아니 존재할 수 있는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 버릴 수 없다. 가까운 실례가 대한항공의 이른바 ‘땅콩 회항’ 사건이다.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많은 국민들이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어이없는 행태에 분노하는 것과 더불어 대한항공 측의 홍보대응 방식과 내용을 비판했다. 대한항공이 발표한 성명과 광고문 등이 국민정서와 너무나 동떨어져 사태를 수습하기는커녕 성난 민심을 악화시키는 데 일조했기 때문이다. 홍보가 조직과 외부환경의 경계선에 서 있다고 한다면 조현아 사태에서 대한항공의 홍보는 낙제점을 면하기 어렵다.

그렇다면 대한항공의 홍보 실패가 홍보라인의 잘못일까. 세계적으로 홍보팀이 가장 강력하게 움직이는 대표적인 분야가 항공업이다. 항공사는 대형 위기 발생 가능성이 늘 있기 때문에 위기관리에 관한 한 그 어느 조직보다 잘 훈련되어 있고 치밀하게 대응하는 편이다. 대한항공도 예외가 아니다. 더욱이 대한항공이 근래 국민정서를 파고드는 소구력 있는 광고를 만들어내는 역량을 보더라도 이번처럼 어이없는 홍보 대응을 할 구성원들이 아니다.

속단할 일은 아니지만 대한항공의 홍보 실패는 홍보라인보다 회사의 구조적 조직문화에서 찾는 것이 바른 진단이 아닌가 한다. 조직의 홍보 책임자들이 국민정서보다 생사여탈권을 쥐고 있는 조직 상층부의 지시나 의중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때 이번 사태와 같은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발생한다.

조직에 큰 위기가 발생했을 때 제대로 대응한 대표적 사례로 손꼽히는 것이 존슨앤드존슨사의 타이레놀 사건이다. 1982년 미국 시카고에서 존슨앤드존슨이 만든 타이레놀을 먹고 7명이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타이레놀 캡슐에 청산가리가 발견되었다. 미국 전역을 공포로 몰아넣은 전대미문의 사건에 직면한 존슨앤드존슨은 사실을 신속히 공개했고, 소비자 보호 차원에서 미국 전역의 매장에 깔려 있는 타이레놀 전량을 회수하는 결단을 내렸다. 당시 돈으로 1억 달러에 달하는 막대한 손실을 감수했다. 이 사건이 일단락된 다음 미국의 유력 일간지인 워싱턴포스트는 “굴지의 기업이 위기에 어떻게 대처하는지를 잘 보여주었다”며 존슨앤드존슨의 위기 대처를 이례적으로 극찬했다.

존슨앤드존슨의 성공적인 위기극복 요인은 여럿이지만, 결정적인 것으로 거론되는 것이 최고 경영진과 홍보라인 간에 열린 소통채널이 있었다는 점이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은 며칠 전 발표한 신년사에서 기업문화 쇄신과 소통위원회 구성 방침을 밝혔다. 소 잃고 외양간 고치는 격이 되어버렸지만 개선의지 피력은 의미 있는 일이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메시지가 당장의 위기국면을 벗어나기 위한 제스처에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땅콩 회항 사건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또 다른 중요한 교훈 중 하나는 위기극복의 가장 큰 장애가 최고경영진 자신일 수 있다는 점을 경영진 스스로 깨닫는 일이다. 이를 위해 조직의 최고 경영자들은 평소부터 홍보담당자들을 신뢰하고 이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이것이 조직을 살리는 위기극복의 지름길이다.

유재웅 을지대 교수(홍보디자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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