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이흥우] 갈림길에 선 새정치민주연합 기사의 사진
중의원 총선거를 목전에 둔 지난달 초 아베 신조 일본 총리 지지율은 그리 높지 않았다. 제1야당 민주당을 포함한 야당에는 앞섰지만 40%대에 간신히 턱걸이하는 정도였다. ‘아베노믹스’로 돈을 마구 풀어도 경기는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각료들의 불법 정치자금 스캔들로 아베는 코너에 몰렸었다.

각료 18명 가운데 무려 6명이 스캔들에 연루됐다. 이 중 경제산업상, 법무상 두 명이 사퇴하는 등 각료들의 잇단 추문에 자민당 지지율은 추풍낙엽처럼 떨어졌다. 현행 평화헌법을 개정해 일본을 전쟁할 수 있는 보통국가로 만들려는 아베의 우경화에 반발하는 양심세력의 저항 또한 무시 못 할 여론의 호응을 얻고 있었다. 아베와 집권 자민당에 유리한 선거 환경이 결코 아니었다. 이 정도면 의원내각제를 채택하고 있는 영국이나 독일 등 유럽 선진국에선 진작 정권이 바뀌었을 상황이다.

그러나 막상 뚜껑을 열어본 결과 자민당의 압승이었다. 자민당은 총 475석 중 291석을 획득, 모든 중의원 상임위원회에서 위원장과 위원의 과반을 확보할 수 있는 266석을 여유 있게 넘었다. 연정을 구성하고 있는 공명당 의석 35석을 더하면 헌법 개정을 추진할 수 있는 재적 3분의 2(317석) 선도 돌파했다. 2009년 총선에서 무려 308석(당시 총 의석수는 480석)을 차지하며 1기 아베 정권을 무너뜨리고 3년3개월 집권했던 민주당은 73석의 ‘라이트급’ 정당으로 찌그러졌다. 당 대표마저 낙선하는 수모를 겪었다.

유일한 자민당 대안세력으로 기세등등하던 민주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을까. 국민의 믿음을 얻는 데 실패한 게 가장 큰 이유다. 아베와 자민당이 아무리 죽을 쑨들 그래도 민주당보다는 낫다는 일본 국민의 기대감을 깨지 못했다. 아베가 잘해서가 아니라 민주당이 못 미더워 자민당을 선택한 것이다. 일본 국민은 아베 정부를 비판만 할 줄 알았지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 민주당에 등을 돌렸다. 민주당이 제1야당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결과는 정치 무관심으로 나타났다. 지난 총선 투표율이 직전 투표율보다 7% 포인트 떨어진 전후 최저인 52.3%를 기록한 게 그 증거다.

평행이론이랄까. 일본의 정치 상황이 어쩌면 우리와 판박이인지 섬뜩한 생각이 들 정도다. 잇따른 인사 실패와 세월호 참사 이후의 미숙한 정부 대응, ‘정윤회 문건’ 파문 등 박근혜 대통령의 아마추어리즘에 대한 여론은 싸늘한데 새정치민주연합의 존재감은 미미하기 짝이 없다. 새정치연합 지지율(리얼미터 기준)은 지난 3개월간 19.9∼24.2%에 불과하다. 같은 기간 38.9∼43.5%를 기록한 새누리당의 딱 절반 수준이다.

새정치연합은 지난해 7·30재보선 참패 후 환골탈태를 약속했다. 그러나 김한길 안철수 공동대표만 물러났을 뿐 바뀐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외려 고질이 더 도졌다는 분석이 적확하다. 2004년 총선에서 과반 의석을 확보한 열린우리당이 명분도, 실속도 없는 계파싸움과 이념논쟁 등 내부 분열로 속절없이 무너져내린 그 뼈아픈 경험을 하고도 새정치연합은 그때의 과오를 되풀이하고 있다. ‘곱셈정치’를 해도 새누리당을 따라잡을까 말까 한 상황에서 ‘나눗셈정치’를 하니 국민의 사랑을 받을 리 없다.

새정치연합은 비상대책위원장이 대표직을 대행하고 있다. 말 그대로 새정치연합엔 비상시국이다. 비상시에는 난국을 헤쳐 나갈 수 있는 강력한 리더십이 필요하다. 대통령 선거가 1년 남짓 남았으면 모르되 지금은 관리형 대표가 당을 이끌 만큼 여유롭고 한가한 시기가 아니다. 야당이 강해야 나라가 건강하다. 일본 정치가 반면교사다. 야당이 허약하니 아베가 독주 가속 페달을 더 세게 밟는 것이다.

한 달 뒤 새정치연합의 새 대표가 선출된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다. 이번에도 변화와 혁신의 기회를 놓친다면 제1야당에 미래는 없다. 사실상 마지막 기회라는 얘기다.

이흥우 논설위원 hwlee@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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