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숲길 다시 가보니-임항] 안산 자락길은 북한산과 이어질까 기사의 사진
서울 서대문구 안산 자락길 숲속무대. 구성찬 기자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날씨가 좋은 날 북한산국립공원 비봉능선에서 남쪽을 보면 4대문 밖 북쪽 대부분이 과거에는 산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쪽부터 서쪽으로 북악산, 인왕산, 안산(무악산), 백련산으로 이어지는 산들과 북한산 및 도봉산은 원래 하나의 생태계였다. 주택가와 포장도로가 야금야금 침범해 들어와 팔과 다리가 모두 잘린 모양새가 됐지만, 이 산들은 100년 전만 하더라도 호랑이와 멧돼지의 영역이었다. 황석영의 소설 장길산에 자주 나오는 “인왕산 호랑이가 목멱산(남산) 삽살개 어르듯 하다”는 표현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북한산 서남쪽 끝자락의 은평구 녹번동 통일로 산골고개에 생태연결로 공사가 마무리단계다. 육교 형태의 생태통로는 북한산 둘레길과 백련산을 연결해 사람은 물론 야생동물도 지나다닐 수 있도록 설계됐다. 차도를 건너지 않고도 북한산의 연산(連山)들을 걸어서 갈 수 있게 된다는 게 반갑다. 게다가 서대문구는 안산, 인왕산, 북한산 둘레길과 백련산을 환상(環狀)으로 잇는 16㎞의 ‘안산 중심의 둘레길’을 2017년까지 조성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위해 안산과 인왕산을 잇는 생태연결로도 올해 착공해 2017년 완공할 계획이다.

머지않아 북한산의 연산들을 이어 걸을 수 있을 것이라는 부푼꿈을 안고 지난 6일 안산(鞍山) 자락길과 백련산(白蓮山) 숲길을 가봤다. 2013년말 개통한 안산 자락길은 장애인, 노인, 유아, 임산부가 모두 갈 수 있는 무장애 숲길을 표방하고 있다. 7㎞의 순환형 산책로인 전 구간의 경사도가 9% 미만으로 설계돼 있어서 휠체어를 밀며 완주할 수 있다. 서대문구청, 독립공원, 봉원사, 연세대 등 어디서나 오르거나 내려올 수 있다.

서대문구청 뒤 연희숲속쉼터에서 폭 2m의 나무데크를 따라 동쪽으로 돌기 시작했다. 이곳 데크 주변에는 화살나무, 산철쭉, 회양목, 홍매화를 심어놓았다. 아까시나무가 가장 많지만 산벚나무, 갈참나무, 가죽나무 군락도 눈에 띄었다. 길에서 만난 직장인 조용만(49·상암동)씨는 “지난 한 해 주말마다 자락길을 산책했는데 4월에는 벚꽃, 5월엔 아까시 꽃향기, 6월에는 밤꽃이 좋고, 한여름엔 메타세쿼이아 녹음이 시원하다”고 말했다. 서대문구청의 석우균 홍보팀장은 “지난해의 경우 하루 평균 3000명의 탐방객 가운데 노인이 약 70%에 이른다”고 말했다.

북카페 전망대에 이르니 북한산과 인왕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전망대에서 굽어보는 무악재를 사이에 두고 안산초등학교와 청구아파트 3차를 잇는 곳에 생태통로가 건설될 예정이다. 무악재는 몇 차례 깎아내려 낮아졌지만, 옛날에는 고개가 높고 험준했다. 양옆으로는 밤나무 숲이 무성해서 호랑이가 자주 출몰했다고 한다. 일설에 의하면 조선시대에 이 고개를 넘으려면 여러 사람을 모아서 넘어갔기 때문에 ‘모아재’라고 부르던 것이 모악재, 무악재로 차례로 바뀌었다는 것. 조선 태조가 도읍터를 물색할 때 경기도 관찰사 하륜(河崙)이 무악(안산)을 우백호로 하는 남쪽(지금의 신촌, 연희동 일대)을 적극적으로 주장했으나 터가 좁다는 이유로 결국 인왕산(우백호)과 북악산(주산) 사이로 도읍이 결정됐다.

안산은 산세가 말안장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해발 296m로 남산(262m)보다 더 높다. 안산의 다른 이름인 무악(毋岳)은 어머니의 산이라는 뜻의 모악(母岳)에서 나왔다. 북한산의 인수봉이 어린애를 업고 나가는 모양이므로 그것을 막기 위해 안산을 모악으로 불렀다는 것이다.

금화터널을 지나 반환점을 돌면 시원한 전망을 자랑하는 능안정이 나타난다. 자작나무와 박달나무 조림지가 이어진다. 무악정까지 상수리나무, 산벚나무, 느릅나무 군락이 도열해 있다. 숲속무대로 가는 길에는 메타세쿼이아 숲이 하늘을 찌를 듯 장쾌한 직선미를 선사한다. 목재로 조성된 넓은 숲속무대를 지나면 독일가문비나무, 리기다소나무, 잣나무 조림지가 이어진다. 곧 출발점인 서대문구청이다.

북한산의 연산들은 확대되는 아파트 단지의 전선(前線)과 높이에 압도당하고 있다. 안산 자락길에서 보더라도 산자락 서너 군데에서 아파트 신축공사가 벌어지고 있다. 망가지는 것은 조망만이 아니다. 이들 산은 이리저리 뻗은 샛길들로 인해 파편화되어 이제는 어지간히 작은 포유동물도 그 안에서 살아가기가 어려워졌다. 오는 3월 개통될 산골고개의 생태연결로는 비록 당장 야생동물이 통과할 가능성은 매우 낮아 보이지만, 그래도 일말의 희망을 갖게 만든다.

시인 김광규는 안산에서 모래내길로 갈라져 나간 고은산 산책로에서 힌트를 얻어 시를 썼다. “청설모 두 마리/ 고은산에 살았다/ (…) 통통하게 살이 오른 한 놈은/ 이 나뭇가지에서 저 나뭇가지로 옮겨/ 뛰다가 떨어져/ 살쾡이에게 잡아먹힌 듯/ (…)/ 의주로와 모래내길과 연희로 사이에/ 고층아파트로 둘러싸여/ 비좁은 삼각주처럼 남아있는 산/ 들어올 수도 나갈 수도 없는/ 도심의 작은 산에 갇혀서/ 청설모 한 마리/ 외롭게 산다.”(‘청설모 한 마리’) 북한산 멧돼지들이 이어진 연산들을 오갈 수 있게 되면 민가로 덜 내려올 것 아닌가.

임항 논설위원 hnglim@kmib.co.kr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