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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사초롱-박용천] 우울증과 자살 그리고 술

[청사초롱-박용천] 우울증과 자살 그리고 술 기사의 사진
우리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우울한 감정을 직접 말로 표현하지 않는 특징을 갖고 있다. 하지만 최근 5년간 진료실에서 보면 자신이 우울하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는 환자들이 늘고 있다. 이는 아마도 우리 국민들이 매스컴의 영향으로 ‘우울’이라는 단어에 자주 노출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의사들은 환자가 우울하다는 말을 하면 즉각적으로 우울증에 관해 생각하고 자살 관련 사항들도 점검한다.

우울증을 간단히 심리적으로 풀이하면 화가 났을 때 화를 바깥으로 배출하지 못하고 부메랑처럼 자신에게 돌리는 것이다. 처음에는 남을 욕하다가도 “이런 대접을 받는 내가 바보지”라며 자신을 비난하는 것이다. 심한 경우 남을 죽이고 싶을 정도의 미움이 해결 안 되면 자책을 하고 그 분노가 오히려 자신에게 향해 자살이 된다. 그래서 심리적으로 자살과 살인은 적개심의 동등한 표현으로, 다만 방향이 타인 또는 자신으로 향한 것인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교과서적인 계산에 따르면 자살자의 70%는 정신질환에 의한 것이고, 정신질환의 70%는 우울증이었기 때문에 0.7×0.7=0.49 즉 자살자의 절반 정도가 우울증이라는 계산이 나온다. 그래서 높아지는 자살률을 잡기 위해서는 우울증에 대한 연구가 필수적이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고속성장을 했지만 그에 따른 후유증이 생길 수 있는데 그것이 우울증과 자살 발생률 증가일 것이다. 급기야 우리나라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에서 자살률 1위가 되었다. 자살의 원인은 사회, 문화, 경제 등 여러 분야의 많은 요인이 관련되어 있다.

우울증 환자의 절반 이상이 ‘위험 음주’

우리나라의 자살률 증가에는 지금까지 밝혀진 원인들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더 있을 것이라는 게 정신과 의사들의 추측이다. 보건복지부에서도 이러한 심각성을 인식해 우울증임상연구센터를 설립, 우울증에 대한 전반적인 조사를 시행했다. 그 중 2006∼2008년 3년 동안 전국 18개 병원에서 1000여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조사한 자료를 분석한 연구 결과 하나를 소개하면 우리나라 우울증 환자의 51%가 위험 음주를 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위험 음주의 기준은 남자는 1주일에 소주 2병 이상, 여자는 1병 이상 마시는 것이다). 이 수치는 미국의 47.3%, 네덜란드의 19∼22.4%와 비교해 높은 수준이다. 이러한 소견은 우리나라 자살 원인 중 술이 관련되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것을 말해준다.

술은 충동억제를 방해하는 역할을 한다. 즉 맨정신일 때는 죽고 싶은 마음이 있어도 이성적으로 그러한 충동을 억제할 수 있는데 술이 들어가면 이러한 억제가 무너지기 때문에 충동적으로 자살을 기도한다. 그동안 우리나라의 문화는 술에 대해서는 관대했다는 게 정설이다. 술김에 한 행동은 다음날 용서받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이제는 그러한 관용이 자신과 타인에게 해를 끼치기 때문에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 최근 경찰이 주폭을 단속하자 동네 주민들의 생활이 안정되었다고 한다. 타인에게 해를 끼치는 주폭뿐만 아니라 자신을 해코지하는 위험 음주 행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과 대책이 요구된다.

술에 대해 관대한 문화 방치해선 안 돼

미국에서는 공원 등 공공장소에서 술병이 노출되면 경찰이 즉시 단속한다. 그런 단속을 하는 이유는 그동안 음주에 대한 폐해를 많이 경험했기 때문이다. 다행히 우리나라에서도 음주에 대한 문제점을 인식하여 음주 광고를 밤 10시 이전에는 금지하는 등 많은 정책을 펴고 있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 예를 들어 드라마에서는 화가 나면 술을 찾는 행동을 보여준다. 청소년뿐만 아니라 성인들도 화가 나면 자기도 모르게 술 마시는 행동을 모방하게 된다. 사소해 보이는 이런 현상에 대해서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우울증이 자살로 이어지지 않게 하는 방법 중 하나는 술이라는 촉매제를 제거하는 것이다. 우울증과 자살이라는 표면 아래에는 술이라는 보이지 않는 끈이 연결되어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겠다.

박용천 한양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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