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영 칼럼] 하고 싶은 말만 한 대통령 기자회견 기사의 사진
결론부터 말하자.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은 하지 않았으면 더 좋았겠다. 적어도 여론의 관점에서는 그렇다는 생각이다. 박 대통령은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밝히는 수준을 넘어 신념을 재확인했다. 그러나 다수 국민들 눈에는 협량한 인식 수준을 드러낸 자리로 받아들였을 가능성이 높다. 국민들이 듣고 싶은 얘기는 없었고, 대통령은 하고 싶은 말만 했다.

인적쇄신 요구에 박 대통령은 공고하게 방어했다. “(비서실장은) 정말 드물게 사심 없는 분” “(비서관 3인을) 의혹만으로 내칠 수 없다”고 확언했다. ‘사심’은 정말 어지간해서 잘 드러나지 않아 실체 파악이 어렵다. 대통령 비서실장을 바꿔야 된다는 여론은 그가 사심이 있다고 해서가 아니다. 청와대의 난맥상을 초래한 장본인이고, 자리에 걸맞은 능력이 부족하다는 사례가 여러 번 확인됐기 때문이다. 비서관 3인의 ‘의혹’ 여부는 엄정한 조사를 거쳐야 판단된다. 객관성이 담보된 기관의 철저한 검증도 없는 상태에서 면죄부를 줬다. 오히려 비서관 3인은 비서실장보다 더 신뢰받고 있는 실세임이 입증됐다. 민정수석의 항명 논란과 관련, “문제를 키우지 않을까 하는 걱정 때문에 사표를 낸 것이라 생각한다”는 희한한 해석을 했다. 윗사람의 지시를 무시한 것이 ‘항명’이 아니라는 확신의 근거는 무엇일까. “의혹만 가지고 특검을 할 수 없다”는 주장은 “의혹이 있기 때문에 특검이 필요하다”는 반박이 가능하다.

이번 기자회견뿐 아니라 평소 박 대통령의 언행을 보면 심리학 용어인 ‘확증편향’에 빠진 듯한 느낌을 받는다. 확증편향이란 자신의 신념과 일치하는 정보나 가치는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은 것은 모두 배척하는 인지적 선입견을 말한다. 있는 그대로의 현실을 제대로 바라보지 못하는 오류를 자주 드러낸다. 이성복의 시 ‘그날’의 한 구절처럼 ‘모두 병들었는데 아무도 아프지 않았다’고 할까.

회견에서 박 대통령은 ‘경제’를 어느 단어보다 잦은 63회나 언급했다. 그만큼 경제 활력이 시급하다는 뜻이다. 지금 우리 경제의 핵심은 개혁이다. 개혁에는 반드시 저항이 따른다. 이를 다독이는 전제는 국민 동의다. 대런 애쓰모글루 MIT 교수와 제임스 로빈슨 하버드대 교수는 공저 ‘국가는 왜 실패하는가’에서 경제적 번영을 이루기 위해서는 적합한 제도가 있어야 하고, 그 제도는 포용적이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때의 포용적이란 국민 다수의 생각, 즉 여론의 반영과 일맥상통한다.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도 여론에 바탕을 둔 국민의 합의가 필수인 셈이다.

여론조사 기관 리얼미터가 지난 5∼9일 조사한 바에 따르면 박 대통령의 지지율은 지난달에 비해 더 낮아졌다. 특히 대구·경북과 새누리당 지지층, 보수성향 등 전통적 우호집단에서의 하락 폭이 컸다는 사실은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신년 기자회견 직후 MBN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에서도 기자회견 내용에 ‘공감하지 못한다’(39.6%)가 ‘공감한다’(33%)보다 높게 나타났다. 여론조사를 맹신하지는 않지만 대통령에 대한 점수가 박하다는 것은 국민의 입장에서는 안타깝다.

공자는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며 백성의 신뢰를 얻는 일이라고 설파했다. 정치의 궁극적 목적은 사람들에게 기쁨과 희망을 주는 데 있다고도 했다. 초나라 섭공(葉公)이 정치를 물었을 때 ‘가까이 있는 사람을 기쁘게 하면 멀리 있는 사람이 찾아온다’(近者悅遠者來)고 화답했다.

전문가들은 국정 3년차인 올해가 박근혜정부에 가장 중요한 시기라고 한다. 집권 초 국정이념을 전파하느라 시간을 보냈다면 이제 그 동력을 극대화할 때라는 설명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시간이 넉넉지 않다. 지금부터라도 공감 능력을 키워 국민의 마음을 얻는 연습을 해야겠다. 그래서 2016년 신년 기자회견 때는 올해와 달리 해명보다는 비전을 많이 제시하고, 기자회견 후 여론조사에서도 후한 점수를 받았으면 좋겠다.

정진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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