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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위해 30차례 북한 찾아간 ‘화해의 사도’ 이승만 목사 별세

아시아계 첫 美장로교 총회장, 골수암으로 … 유골 南·北·美 분산 안장 예정

통일 위해 30차례 북한 찾아간 ‘화해의 사도’ 이승만 목사 별세 기사의 사진
‘화해의 사도’이자 재미 통일·인권 운동가로 헌신한 이승만 목사가 14일 오전 4시30분(현지시간) 미국 애틀란타 에모리대학병원에서 골수암으로 별세했다. 향년 84세.

장례는 16일 애틀란타 현지에서 고인의 유언에 따라 가족장으로 치러지며, 유골은 한국과 미국, 북한 지역에 각각 나뉘어 안장될 예정이다. 유족으로는 부인 이혜선(80) 장로와 1남2녀가 있다.

이 목사는 1931년 평양에서 이태석 목사의 아들로 태어났다. 평양성화신학교를 졸업한 뒤 6·25전쟁이 일어나자 1·4후퇴 때 부모와 여동생 4명을 북한에 남겨두고 남동생과 함께 남한으로 피신했다. 그때 그는 열아홉 살이었다. 굶어죽지 않기 위해 해병대에 입대한 그는 제대한 뒤 서울중앙신학교(현 강남대학교)를 졸업하고 56년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예일대 신학부를 졸업하고, 시카고 신학대 종교사회학 박사 학위를 마쳤다.

60년 목사안수를 받은 그는 켄터키주 루이빌 대학에서 교목으로 사역할 때 당시 마틴 루터 킹 목사를 만나면서 흑인 인권운동에 뛰어들었다. 1978년 북한에 살고 있는 4명의 여동생들과 연락이 닿은 이 목사는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이미 8년 전에 어머니가 사망했고, 아버지 역시 공산당원에 붙잡혀 옥에서 순교했다는 것이었다. 현재 북한에는 4명의 여동생 가운데 2명은 병사했고, 둘째·넷째 여동생이 생존해 있다. 그의 아픈 가족사는 그가 북한을 30차례 넘게 드나들면서 통일·평화·화해 운동에 뛰어들게 만든 원동력이 됐다.

92년에는 미국 33개 교단을 대표하는 미국교회협의회(NCCUSA) 회장을 지내면서 평화와 화해 메신저로 활동했다. 특히 미국 내 소수민족의 인권 수호, 남북한 및 남북 교회 교류 활동을 활발하게 펼쳤다.

2000년 6월, 이 목사는 한국 기독교는 물론 아시아 기독교 역사에 한 획을 그었다. 미국장로교회(PCUSA) 제212차 총회에서 아시아계로서는 최초로 총회장에 선출된 것이다. 미국 장로교로서는 역사상 최초의 동양인 총회장이 탄생한 순간이었다. 2010년에는 그의 ‘화해자’ 공로를 인정받아 PCUSA로부터 ‘톰슨상’을 받았다. 이 상은 교회와 사회를 위해 공헌한 교회 지도자에게 수여되는 상이다.

지난해 골수암이 발병하면서 투병해온 이 목사는 지난달 28일 병세가 갑자기 악화되면서 입원했다. 이 목사의 동생 이승규(대전 대덕장로교회 은퇴) 장로는 15일 국민일보와 통화에서 “임종을 앞두고 ‘내가 할 일을 다한 것 같다. 모두가 사랑으로 지내온 것에 감사하다’는 유언을 남기셨다”고 전했다.

북한교회연구원 원장인 유관지 목사는 “이 목사님은 순교자의 후손으로, 실향민으로 큰 아픔을 지니셨으면서도 ‘화해·평화의 사도’라는 사명을 꿋꿋이 감당해 오신 분”이라며 “이제는 우리가 그의 고귀한 사명을 이어가야 한다”고 말했다.

박재찬 기자 jeep@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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