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남준 선생은 관객의 참여를 무엇보다 중시해  동그라미·코일 굵기만 표시해도 척척 알아” 기사의 사진
백남준의 비디오아트 작품을 30년 가까이 설치·보수해온 이정성씨. 그는 “백남준은 어떻게 하면 관객이 내 작품에 오래 머물까를 고민했다”고 전했다. 학고재 갤러리 제공

이전이미지다음이미지

“백(남준) 선생님은 관객이 작품과 놀기를 원했지요.”

‘백남준(1932∼2006)의 손’으로 불리는 테크니션 이정성(71·아트마스터 대표)씨는 전시장에 설치된 작품을 조작하며 말했다. TV 밑 송신기로 강약을 조절하자 ‘계란에 갇힌 여성’ ‘스키 타는 사람’의 이미지가 수직으로, 수평으로 왜곡된다. 움직이는 속도도 달라진다. ‘풋 스위치(Foot Switch)’라는 작품은 발판 스위치를 누르자 모니터 속 이미지가 순간 사라진다.

서울 종로구 삼청로 학고재갤러리에서 21일부터 세계적 비디오아티스트 백남준 개인전 ‘W3’이 열린다. 작품 설치를 마무리 한 그를 15일 전시장에서 만났다. 이씨는 백남준의 생전 최측근이자 비디오아트 작업 실무를 맡았던 기술디렉터 출신이다. 1988년 서울올림픽을 기념한 백남준의 ‘다다익선’(국립현대미술관 과천관 소장) 제작을 계기로 인연을 맺었다.

“줄 몇 줄과 동그라미, 코일 굵기만 표시해도 알아들었다”는 그가 기억하는 백남준은 관객의 참여를 무엇보다 중시했다. 이번에 95년 리옹 비엔날레에 출품했던 관객 참여형 비디오작품 9개 세트 중 5개가 전시됐다.

모니터 화면이 자신의 손에 의해 이래저래 바뀌는 걸 보며 관객은 브라운관을 캔버스 삼아 전자파동으로 이미지를 만드는 회화, 즉 비디오아트의 개념에 녹아들게 된다. ‘관람자와 예술은 하나’라는 백남준의 예술철학도 체득하게 된다.

3개의 검은 벽면에는 모니터 60대가 다이아몬드 무늬를 이루며 설치돼 있다. 이 작품은 원래 64대로 만들어졌지만 이렇듯 공간에 따라 달라진다. 전체 재생시간 20분가량의 영상을 1초 간격으로 옆 모니터에 전달하는 식이다. 인터넷이 가져올 정보고속도로의 시대를 낙관한 94년 작 ‘W3’이다. W3은 인터넷을 지칭하는 월드와이드웹(world wide web)의 약자다. 작품에는 “내 작품 안에 관람객이 3분간 머물게 하라”는 백남준의 목표의식이 구현돼 있다. 위대한 작가의 작품도 1분을 계속 보기 힘들기 때문이다. 보통의 영상은 1초에 30프레임으로 구성돼 있지만, 이 작품은 5프레임 정도다. 가장 눈이 즐거운 속도라는 계산에서다. 3월 15일까지 열리는 ‘W3’전에는 지난해 학고재상하이 전시에 출품된 작품을 포함해 총 12점이 나왔다. 백남준은 최근 세계 굴지의 화랑인 미국 뉴욕 가고시안 갤러리의 전속작가로 확정됐다. 이씨는“백선생의 장조카 켄 백 하쿠다(65)가 고인을 대리해 지난해 10월 가고시안 갤러리와 전속 계약을 체결했다고 최근 통보해왔다”고 밝혔다.

손영옥 선임기자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