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도포럼-박성래] 2015년은 ‘세계 빛의 해’라는데 기사의 사진
2015년은 유엔이 정한 ‘세계 빛의 해’이다. 1015년 이슬람 과학자 이븐 알 하이삼의 ‘빛의 과학’ 출간 1000년을 기념해 그렇게 정했다. 그는 과학사에서 ‘알하젠’(965∼1040)이란 라틴어식 이름으로 알려져 있는데, 이라크의 항구 바스라 출신이다. 유명한 바다의 탐험자 신드바드와 같은 고향이다. 하지만 알하젠은 실제로는 카이로에서 평생을 지내며 과학자로 성공해 많은 업적을 남겼고, 그의 초상이 이라크의 지폐에 들어가 있을 정도다.

알하젠을 세계적 과학자로 널리 소개하는 일은 좋은 조짐이다. 마침 프랑스 파리에서의 테러가 세계적인 기독교 대 이슬람교 갈등을 대변하는 듯한 시점에서 이슬람 과학자가 세계적인 주목을 받는 일이 종교 간 갈등을 풀어가는 역할을 조금이나마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알하젠과 그가 대표하는 이슬람 과학이 세계적 주목을 받는 것을 보면서 새삼 우리의 과학 전통은 너무 무시당하고 있다는 느낌도 든다.

알하젠의 광학을 대표하는 현상 하나는 ‘바늘구멍 사진기’이다. 중학교 과학 교과서에 나오는 이 원리는 알하젠이 처음 밝혀준 것으로 인정되지만 19세기나 되어서야 분명한 과학 이론으로 확립됐다. 물론 그 전에 이미 서양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알하젠을 거쳐 다빈치(1452∼1519)까지, 그리고 동양에서는 묵자(墨子·BC 470∼391?)와 심괄(沈括·1031∼1095) 등이 이를 주목했다.

그런데 이 사실은 우리의 대표적 실학자인 정약용(1762∼1836)의 글에서도 발견된다. 그의 ‘다산시문집’에 짤막한 글 ‘칠실관화설(漆室觀薛?’이 있는데 “어두운 방에서 경치를 구경한다”는 뜻이다. 방을 깜깜하게 만들고 구멍만 하나를 뚫어 거기 렌즈를 달고 알맞은 거리에 흰 스크린을 설치하면 밖의 아름다운 풍경이 화면에 나타난다. 바로 바늘구멍 사진기의 원리인데, 그는 이 놀라운 풍경이 위와 아래가 뒤집혀 보인다고도 지적했다. 또 이 글의 앞과 뒤에도 애체출화도설( 出火圖說)과 완부청설(碗浮靑說)이 소개돼 있다. 앞의 것은 렌즈( )를 설명하고, 뒤의 경우는 빛의 굴절을 설명한다. 렌즈에는 볼록렌즈와 오목렌즈가 있는데, 볼록렌즈만이 태양빛을 한 점에 모아주어 마른 쑥을 불붙여준다고 설명한다. 그런가하면 대야(碗) 한가운데 푸른 점을 찍어두고 보이지 않는 거리에 서 있을 경우, 거기 물을 한 그릇 부어주면 그 푸른 점이 떠올라 보이게 된다고 지적한다. 광학에 대한 정약용의 깊은 관심을 알 수 있다.

‘바늘구멍 사진기’는 원래 ‘카메라 옵스큐라’란 표현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라틴어로 ‘어둠(obscura)의 방(camera)’이란 뜻인데, 여기에서 카메라가 사진기란 뜻으로 통용됐다. 바늘구멍 사진기 실험은 오늘날 어린이들에게까지 널리 알려진 상식이 되었지만 불과 150년쯤 전까지도 우리 선조들에게는 거의 신기한 일이었음을 알 수 있다. 더 놀라운 것은 그보다 400년 전에 이미 세종은 그런 장치를 만들어 태양 관측을 하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1437년(세종 19) 4월 15일자 ‘세종실록’에는 경회루 북쪽에 동표(銅表)를 만들고, 그 눈금 부분에 영부(影符)를 만들어 달았다는 기록이 있다. 영부란 바로 바늘구멍 사진기였다. 동표는 구리로 만든 태양고도 관측 장치로, 높이가 40자나 되었다. 거의 10미터나 되는 높이 때문에 그 꼭대기의 가로막대 그림자가 사라져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 그림자가 떨어질 만한 위치에 바늘구멍 사진기를 달아 놓으면 그 가로막대의 그림자가 사진기(影符)의 동그란 태양 영상 가운데에 새까만 가로줄로 나타난다. 태양 고도의 정확한 관측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세종대의 과학적 업적 ‘칠정산’(七政算·1442년)은 서울에서의 천체--해와 달 그리고 5행성--위치 계산을 완성한, 당시로서는 세계 첨단의 성과였다. 세종의 카메라가 ‘칠정산’ 완성에 도움을 주었을 것이 분명하다.

‘세계 빛의 해’를 맞아 세종의 카메라 같은 우리 선조들의 노력에도 주목하는 한 해가 되었으면 좋겠다.

박성래 한국외대 과학사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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