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오피니언 > 칼럼 > 청사초롱

[청사초롱-하응백] ‘현대국가 일본’의 조건

[청사초롱-하응백] ‘현대국가 일본’의 조건 기사의 사진
잔인하지 않은 전쟁이 없지만, 근대 이전의 전쟁은 더 잔인했다.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포로건 비전투요원이건 민간인이건 모두 죽였다. 약탈과 강간은 전투원의 사기를 진작시킬 수 있는 방법의 하나였다. 죽은 적군의 시체를 훼손하는 일도 비일비재했다. 목을 베어 매달고 귀나 코를 베어 용맹의 증거로 삼았다. 그것은 룰이 없는 야만의 전쟁이었다. 그처럼 참혹한 전쟁에서 일정한 룰을 정한 것이 바로 적십자 조약이다.

제네바 협약이라고도 부르는 이 조약은 1864년 전쟁 희생자 보호에 관한 최초의 국제적 조약이었으며, 몇 차례의 개정을 통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전쟁 중 부상자, 포로, 전시 민간인 등의 보호를 의무화한 것이 핵심 내용이다. 국가 존망을 다투는 전쟁에서 왜 이런 번거로운 조약을 만들었을까. 그것은 바로 인류사회의 문명적 성숙 때문이다. 이 문명적 성숙의 근본에는 종교와 철학이 있다.

인류 문명 발전의 바탕은 휴머니즘

기독교와 이슬람교 간 충돌이 세계 곳곳에서 평화를 위협하고 있기는 하지만 근본적으로 기독교와 이슬람교는 사랑의 종교다.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라는 것이 그들의 가르침이다. 불교 역시 자비가 가장 큰 가르침이다. 동양의 유교사상 역시 민본주의가 중심이다.

인류는 이들 종교의 가르침과 그리스 시대부터 철학으로 굳어진 자유와 평등 사상에 기초해 휴머니즘이라는 불가침의 사상을 마련했다. 미국 독립선언문과 프랑스 혁명의 모토인 자유 평등 박애 등이 모두 휴머니즘에 기초해 있다. 최남선이 작성한 1919년 기미독립선언문 역시 근본적으로는 휴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이 휴머니즘에 기반을 둔 상식을 보편성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제네바 협약 이후에도 전쟁을 수행하면서 룰을 어긴 국가가 많았다. 20세기 전반기의 독일과 일본이 대표적인 나라다. 아우슈비츠와 난징의 대학살로 그 두 나라의 반휴머니즘적 악명은 극에 달했다. 전쟁이 끝난 후 독일과 일본의 주 정치세력이 이 문제를 보는 시각은 180도로 달랐다. 독일은 과거를 철저히 반성하고 관련 조처를 했지만, 일본은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다. 독일의 자기반성에는 인류 보편성으로의 회귀가 현대 국가의 기본 조건임을 인식했기 때문이다.

일본은 과거 반성해야 문명국 될 수있어

반대로 일본의 주류 정치인들은 그러한 점을 철저하게 인식하지 못했거나 알아도 마치 겉으로는 모른 척하고 있다. 여기에 일본의 전근대성, 비보편성, 반휴머니즘이 놓여 있다. 그것은 몰염치의 다른 말이다.

일본의 양심적 지식인이자 노벨 문학상 수상자인 오에 겐자부로가 1994년 노벨상 수상연설 ‘애매한 일본의 나’에서 마지막을 “특히 세계의 주변에 있는 사람으로 여기서부터 전망할 수 있는 인류 전체의 치유와 화해에 어떻게 품위 있으면서도 한편으로는 휴머니즘적인 공헌을 할 수 있는가를 찾고 싶다고 원하고 있습니다”라고 장식한 이유 중 하나도 바로 일본 휴머니즘의 촉발을 위해서였다.

일본이 문명국이 되고 인류사회에서 진정으로 인정받는 국가가 되려면 일본의 주 정치세력과 다수 국민이 인류가 오랜 희생을 거치면서 찾은 가치인 휴머니즘적 보편성으로 나아가야 한다. 그렇게 될 때 종군 성노예, 과거사, 영토갈등 문제 등이 자연스럽게 풀리면서 일본도 인류사회의 책임 있는 일원으로 받아들여질 것이다.

일본 기성세대가 후세대에 물려줄 것은 기술과 돈을 버는 능력이 아니라, 보편성이라는 인류의 지고불변 가치를 후세대에 확고하게 인식시키는 일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지금 아베 신조 총리를 비롯한 일본의 지도층 인사들과 지식인들이 파렴치한 언동을 자제하고 철저히 자성해야 한다. 그때가 되어서야 일본은 ‘경제 집단’에서 벗어나 비로소 ‘현대 국가’가 된다.

하응백 문학평론가·휴먼앤북스 대표

GoodNews paper ⓒ 국민일보(www.kmib.co.kr), 무단전재 및 수집, 재배포금지

국민일보 신문구독
트위터페이스북구글플러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