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논단-김용희] 우리가 개를 차는 이유 기사의 사진
갑오년의 ‘갑질’을 반성하며 을미년의 ‘을’을 생각하자는 구호로 시작한 새해다. 그러나 나라 곳곳에서 ‘갑질’의 횡포가 연이어 터지고 있다.

최근 ‘개를 훔치는 완벽한 방법’이란 영화를 둘러싸고 대형 영화배급사의 횡포가 다시 논란거리로 떠올랐다. 전국 스크린은 2200개다. 보통 200∼300개 스크린을 차지해야 관객들이 볼 수 있다. ‘개훔방’의 스크린은 50개인데다 시간대마저 이른 아침이나 늦은 밤시간을 배정하고 있다. 극장 관계자들은 좌석 점유율이 낮다고 이유를 대고 있다. 하지만 관계자들의 말과 달리 최근 관객들의 입소문으로 상영 확대 요청이 이루어지고 있는 형편이다. 이에 연예인과 일반인들이 상영관을 빌려 관객들을 부르는 대관 릴레이가 이어지고 있다.

지난여름 전국 2200개 스크린 중에서 관객 1800만명을 기록한 영화 ‘명량’은 1100개 스크린을 갖고 갔고 ‘해적’은 800개 스크린을 갖고 갔다. 대형 배급사가 차지하는 비율은 70∼80%다. 영화계의 수직 계열화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지겨울 정도다. 영화계 일부 인사는 이 같은 독점적 폭력을 없애는 방법으로 한 영화가 400∼500개 이상의 스크린을 못 가지고 가게끔 제도적 규제를 만들어야 된다고 한다.

그러나 한편 생각해보면 갑과 을은 그 안에서 또 다른 갑과 을로 끝없이 분화되고 있다. 이를테면 영화제작 과정에서 제작사는 감독에게 갑이지만 감독은 시나리오 작가와 스태프에게 갑이다. 제작자에 의해 감독의 의도는 끝없이 수정되어야 하고, 감독의 연출과 편집에 의해 시나리오는 또 끝없이 수정된다.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드라마 작가는 김수현씨가 만든 한국방송작가협회에 의해 작가의 권리가 어느 정도 보장되는 반면 한국 시나리오 작가는 매우 열악한 처지다. 몇 해 전 옥탑방에서 굶어죽은 최고은 시나리오 작가의 죽음은 그것을 대변한다. 시나리오 원고료는 10년 전과 달라진 게 없다. 심지어 시나리오 피칭이 제작사에 먹히지 않는다면 감독은 원고료조차 작가에게 줄 수 없다. 이미 감독에게 선보인 원고는 기획 단계에서 함께 감독과 공동 작업했다는 이유로 다른 감독에게 넘길 수도 없다. 시나리오 작가가 1여년 넘게 작업한 원고는 그야말로 공중에 붕 뜬다. 설사 영화가 된다 하더라도 신인 감독일 경우 자신의 크레딧을 위해 원고를 쓴 시나리오 작가의 이름을 영화 엔딩 크레딧에서 빼는 게 다반사다.

스태프들 또한 마찬가지. 노동자로서 최소한의 보장인 4대 보험은 당연히 보장받지 못한다. 투자금이 제대로 안 들어와 영화가 엎어지게 되면 밀린 수당도 받지 못한다. 천만 관객 영화가 된다고 한들 그것은 감독과 투자사의 영광일 뿐이다. 그래서 영화판을 ‘아사리판’이라 말을 한다. 최근 ‘국제시장’ 윤제균 감독이 스태프들에게 4대 보험을 들어주었다는 사실이 전해졌다. 신선했다. 영화판 노동자들의 비인격적 대우는 관습적이라며 당연시하면서 사회 문제에 피켓을 들고 마치 정치사회 문제에 대한 개혁적 인사처럼 시위를 하는 영화감독들을 보면 불편하다.

내가 고등학교 다닐 때 담임은 수시로 우리를 때렸다. 우린 담임이 집에서 부부싸움을 했을 거라고 속으로 욕을 해댔다. 교사에게 매를 맞은 학생은 집으로 가 집에서 키우는 개를 발로 찬다. 개는 화가 나서 동네 꼬마를 보고 짖는다. 꼬마아이는 놀라 울며 엄마에게 매달린다. 엄마는 화가 나 자신의 남편에게 바가지를 긁는다. 남편은 학교에 가서 학생들을 때린다. 그럼 학생은 또 개를 발로 차고.

어쩌면 갑은 을이고, 을은 다시 갑인지 모른다. 을의 인권을 빼앗으면 결국 갑 또한 자신의 모든 것을 잃게 될 것이다. 시나리오 작가가 영화판을 떠나면 감독은 좋은 영화를 만들 소스가 없고 그럼 제작사는 투자를 받을 수 없고 투자를 못 받으면 한국영화는 몰락한다. 대형 배급사가 영화관을 독식하면 한국영화의 다양성과 발전은 기대할 수 없다. 갑을 문제, 똑같은 액션과 똑같은 호러가 반복되는 느낌이다.

김용희 평택대 교수·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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